[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국제유가의 안정을 바라며…

정양범 매경비즈 기자(jung.oungbum@mkinternet.com) 2024. 5. 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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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50m, 길이 4km, 서울 강남에서 동서로 뻗은 10차선 간선도로는 테헤란로(路)이다. 그 곳은 금융 및 무역의 메카이다. 그 길은 원래 ‘삼릉로’였으나, 1977년 이란 팔레비 왕조 시절, 테헤란 시장의 서울 방문으로 ‘테헤란로’라 개명되었다. 동시에 이란에도 ‘서울로(路)’가 생겼다. 팔레비 국왕의 이란은 대표적 친미 국가였고, 그 영향으로 이스라엘과는 1953년에, 우리나라와는 1962년에 수교하였다. 당시 이란은 미니스커트와 청바지가 유행한 서구적으로 개방된 나라였으나, 그런 사조는 1979년에 갑자기 유턴하였다.

왕정의 부패와 지나친 서구적 세속화에 반발하여 이슬람혁명이 일어났다. 왕정은 폐지되고,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신정(神政)국가 즉, 이슬람 공화국이 호메이니에 의해 수립되었다. 호메이니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570~632)의 후손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혁명 직후 반미, 반 이스라엘 기조를 천명하여 그들을 ‘악마’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의 이란은 호메이니가 되찾은 이슬람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중동 판세를 흔들고 있다. 요동치는 국제유가, 아랍에서 핵무기와 무기 경쟁, 중국과 러시아의 중동 접근,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아랍권의 재편성 움직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무력충돌 등은 최근 이란이 야기하거나 은밀히 주도하여 벌어진 상황이다. 얽히고 설킨 중동 문제를 파악하려면 그곳의 복잡한 역사, 특히 이슬람 국가의 자존심과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무함마드는 610년,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신의 첫 계시를 받았다. 가브리엘은 무함마드에게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읊으라”고 주문했다. 이는 ‘신의 이름으로 신의 뜻을 전파하라”는 의미였다. 그들은 알라신이 아주 특별한 사람만 예언자로 선택하여 그에게 ‘올바르게 사는 법’을 알려준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예언자가 나타나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계시종교’라 분류한다. 무함마드는 아라비아반도 일대에 퍼져 있던 다신교 사상을 배척하고, 아랍민족을 유일신 종교인 ‘이슬람’으로 빠르게 통합하였다. ‘이슬람’이란 ‘신에게 복종한다’는 의미이다. 무함마드는 ‘움마’라는 신앙 및 생활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여 이슬람국가를 세웠으니 국가의 주권은 신에게 있고, 신의 계시를 기록한 꾸란(Quran)은 헌법과 마찬가지이다.

632년 무함마드가 고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의 후계자 즉, 칼리파(Khalifa) 선출을 두고 의견이 갈렸다. 칼리파는 종교와 정치를 모두 아우르는 지도자이다. 무함마드의 혈족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시아파’이고, 혈족이 아니더라도 국가를 통치할 능력과 신앙이 뛰어난 사람이 투표를 통해 후계자로 선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수니파’이다. 그로부터 이슬람 사회는 그 두 종파로 분열되었다. 현재 이슬람 인구의 90% 이상은 수니파이고, 국가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하여 파키스탄, 튀르키에 등 대부분의 아랍 국가이다. 시아파 국가로는 이슬람 혁명으로 수립된 이란과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등이다. 무함마드 사후, 1대에서 4대 칼리파는 모두 수니파에서 나왔고, 활발한 정복 및 포교로 국가인 동시에 이슬람공동체를 굳건히 다졌다.

초기 칼리파들의 리더십 아래 이슬람제국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등주의에 입각하여 능력에 따른 발탁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이때가 이슬람의 황금기였다. 그 후 이슬람제국이 지리적으로 방대해지자 지방왕조의 군주인 술탄이 출현했다. 술탄은 정치와 종교, 양수겸장의 지도자는 아니었지만, 점차 칼리파를 능가하는 권력을 갖게 되니 칼리파는 종교지도자로만 의미 축소되었다.

호메이니가 혁명에 성공한 1979년에 구 소련이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이에 중동지역의 무장 무슬림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 구 소련에 게릴라전으로 대항하였다. 수니파와 시아파 불문하고 같은 이슬람국가가 이교도에 의해 침략당하는 것을 앉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전통적 생각이다. 이 점을 미국이 가끔 잊어버리니 문제가 자꾸 반복된다. 오사마 빈 라덴도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활동한 무장 게릴라 중의 하나였다.

다음 해 1980년에는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발발했다. 명분은 국경 분쟁이지만, 시아파의 혁명으로 정권전복의 위험을 느낀 사담 후세인이 일으킨 반혁명 전쟁이었다. 이 때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했다. 어제의 친구 이란은 미국의 적이 되었고, 오늘의 친구 후세인을 후일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여 제거했다. 1984년부터 미국은 이란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40년 간 경제적으로 제재(Sanctions) 중이다. 1990 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였다. 이에 왕정 붕괴 위협을 느낀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파병을 요청하였고, 미군과 연합군 약 80만명이 개입하여 걸프전을 종료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이 아닌 이교도 국가의 군사 개입은 아랍 이슬람권의 반발심에 다시 불을 당겼다. 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더욱 활발해진 ‘지하드’(칼을 잡는 것이라는 뜻)는 결국 2001년의 911테러로 이어졌다. 뒤 이은 미국의 아프간과 이라크 침공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과 후세인의 제거 등은 이슬람 공동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교도가 이슬람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아랍 이슬람 국가들은 13세기 이민족 몽골의 침략을 ‘그들이 알라 신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당한 벌’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그 후 이교도의 침략에는 단합하여 대항하는 이슬람의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팔레스타인 공격은 다시 이슬람 공동체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위험한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세계 원유 매장량의 57%는 중동과 북 아프리카 등 이슬람권에 있다. 이란이 통제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원유 수송량의 90%가 지나는 길목이다. 이란은 세계 원유 매장량 4위의 산유국이고, 원유수출이 전체 수출의 60%를 차지하니 경제는 원유에 의존한다. 지난 40년 간 지속된 미국의 제재 속에서 이란은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빠져나가려 한다. 이란산 원유는 타국산으로 둔갑하여 저렴하게 중국으로 우회 수출되고, 지정학적으로 절묘한 위치를 활용하여 러시아와 인도를 끌어들여 자기편으로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아파의 종주국으로서 중국의 중재로 수니파 맹주 사우디와 관계 개선하여 미국과 사우디의 소원한 틈새를 더욱 악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또 팔레비 왕조 때 미국에서 연구용으로 제공받은 원자로를 이용하고 발전시켜 우라늄을 농축해 가지고 있으니 이미 핵 보유국이다.

현재 이스라엘과 싸우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는 태생은 수니파이지만, 시아파 이란의 지원 아래 버티고 있다. 이란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을 지원하여 중동의 불안을 지속적으로 조장하고 있다. 그 속셈은 국제 유가를 상승시켜 반사이익을 얻자는 것에 있다.

지금 중동의 정치적 주도권은 이란이 쥐고 흔들고 있다. 미국과 서방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이해하고 풀어줘야 한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전면전(全面戰)을 치룰 의향이 없다는 점은 그간의 행동에서 충분히 나타났다. 자국 땅에서의 전쟁은 피하면서, 하마스 등을 앞세운 대리전으로 미국과 서방에 새로운 해법 제시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관계에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 우리나라의 중동 산 석유의존도는 70%이다. 우리 경제에 국제유가의 안정은 필수이다. 이슬람에 대한 기존의 선입관에서 벗어나 유연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슬람의 자존심과 그들의 정치, 종교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 대학생들의 시위는 그런 유연한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다.

[진의환 매경 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전)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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