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서 또 '이별 통보' 연인 살해…시민 불안감
이별을 요구한 연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또 발생했습니다.
아직 범행 동기 등이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대낮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여성을 상대로 벌어진 흉악범죄인 데다, 피의자가 수능 만점자 출신의 명문대 의대생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시민들의 충격이 큽니다.
오늘(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6일 서초구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근처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20대 남성 최 모(25)를 긴급체포했습니다.
경찰은 "옥상에서 남성이 투신하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해 A 씨를 끌어냈는데, 이후 약이 든 가방 등을 두고 왔다는 최 씨의 말에 현장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숨져있는 피해자를 발견했습니다.
최 씨는 경찰 조사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는 말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범행 2시간 전 경기 화성의 한 대형마트에서 흉기를 미리 구입하고 피해자를 불러내는 등 범행을 미리 준비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특히 최 씨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고, 서울 명문대 의대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 SNS 등에는 그에 대한 신상정보가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또한 범행 장소가 지난 2016년 5월 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에서 불과 500여m 떨어진 곳이라는 점에서 마침 사건 8주기를 앞두고 흉악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다시 상기시킨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노래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살해당하면서 한국 사회의 여성 대상 폭력과 혐오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른 계기가 됐습니다.
경찰은 전날 최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법원은 오늘 오후 3시 30분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구속 여부를 심리할 예정입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 범죄는 해마다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는 경기도 화성에서 역시 2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하고 그의 어머니도 다치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원지검은 지난달 그를 구속기소하면서 이름(김레아·26) 등 신상과 머그샷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작년 7월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옛 연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A(31) 씨는 앞선 폭행과 스토킹 범죄로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받고도 피해자를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지난해 3월에는 30대 남성들이 각각 서울 금천구와 경기 안산시에서 사귀던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입사 동기인 여성을 351회에 걸쳐 스토킹하고 결국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흉기로 살해한 전주환(333)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습니다.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또다시 발생한 흉악범죄에 시민들은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직장인 손 모(27·여) 씨는 군대에 있던 전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자 '탈영하겠다'는 위협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 "휴가 나와서 고향을 찾아갈 테니 얼굴만 한번 봐달라고 하더라. 어머니께서 신변에 이상이 생길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헤어지면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들어본 여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이별할 때 방검복을 입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여성 대상 범죄는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서울에 사는 여성 직장인 이 모(30) 씨도 "전 남자친구가 심하게 일상을 통제하려고 하고 술을 마시면 폭력적 성향을 보여 헤어진 경험이 있다"며 "대낮에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또 발생하니 '안전지대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김 모(25·여) 씨는 "강남역·신당역 살인 사건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분개했지만 사건이 계속 잇따르니 이제는 무력감이 든다"며 "가방에 호신 스프레이도 갖고 다니고 휴대전화에 이런저런 어플도 설치했지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교제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2019년 9천823명에서 2022년 1만2천828명으로 3년 새 30.6% 증가했습니다.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에 대한 정부 공식 통계는 없습니다.
다만 한국여성의전화는 언론 보도 사건 등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이 최소 138명에 이른다고 발표했습니다.
사흘에 한명 꼴입니다.
자녀나 부모 등 주변인 피해자 수를 포함하면 최소 568명입니다.
전문가들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데이트 폭력 범죄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함께 이들 범죄에 대한 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교제 살인의 경우 가해자가 평소 지닌 가부장적 사고와 여성 차별적 인식이 큰 영향을 준다"며 "피해 여성이 가해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증거가 충분히 있다면 (공권력이) 사전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넓게 열어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인 장윤미 변호사는 "남녀 관계에 그럴 수 있다고 간과하고 넘어갈 일이 더 이상 아니다. 인식 전환도 필요하지만 예방책이라는 것을 아주 촘촘하게 만든다는 게 쉽지는 않다"며 "결국 엄벌에 처하고 양형기준을 높이는 것이 대안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수원지검 홈페이지 갈무리,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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