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게 흐른 김도영의 시간, 비로소 ‘제2의 이종범’을 입증하다

김양희 기자 2024. 5. 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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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KIA 타이거즈 김도영. 연합뉴스

2021년 8월23일. 야구팬들의 관심은 기아(KIA) 타이거즈의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에 쏠렸다. ‘5툴 플레이어’ 야수와 ‘파이어볼러’ 투수 사이의 고민에서 기아는 전자를 택했다. ‘제2의 이종범’으로 불린 광주 동성고 출신의 김도영이었다. 선택받지 못한 광주 진흥고 출신의 문동주는 2차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다.

김도영의 고교 3학년 시절 성적은 타율 0.451(82타수 37안타), 1홈런 18도루. OPS(출루율+장타율)는 1.128에 이르렀다. 2학년 때도 주전 유격수로 뛰면서 타율 0.457(92타수 42안타), 1홈런 22도루를 기록했던 그였다. 당시 기아가 김도영을 택한 이유는 이랬다. “정확한 타격 콘택트 능력은 물론 빠른 발, 안정적 수비력까지 갖춘 ‘완성형 내야수’다. 공격과 수비, 주루 모든 면에서 수준급 기량을 보유했고, 입단 후 팀 내야 수비와 타선 강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선수다.”

프로 1~2년 차 김도영은 프로 적응과 함께 부상 등에 시달리며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작년에는 발가락 부상 탓에 시즌 초반을 거르면서 84경기만 출전했다. 대부분 24살 이하 선수로 구성된 항저우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에도 뽑히지 못했다. 같은 기간 문동주가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 구속(시속 160.1㎞)을 찍고, 금메달을 딴 항저우아시안게임 에이스로 활약한 것과 여러모로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24시즌 초반, 김도영은 기아가 기대하던 “팀 내야 수비와 타선 강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3루수로 출전하면서 7일 현재 타율 0.329, 11홈런 14도루 27타점을 기록 중이다. 출루율이 0.371, 장타율이 0.616에 이른다.

특히 4월 성적이 눈부시다. 개막달(3월)에는 타율이 0.154(26타수 4안타)에 불과했으나 4월에는 타율 0.385(104타수 40안타) 10홈런 14도루로 반등했다. 월간 ‘10(홈런)-10(도루)’ 클럽도 KBO리그 최초로 가입했다. 강한 힘과 빠른 발,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여차하면 시즌 3할-30홈런-30도루 기록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선수가 3할-30홈런-30도루를 달성한 것은 2000년 박재홍(당시 현대 유니콘스 소속)이 마지막이다. 타이거즈 선수로는 이종범(1997년), 홍현우(1999년)가 3할-30홈런-30도루를 완성해냈다.

KIA 타이거즈 김도영. 연합뉴스

김도영의 도약은 홈런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프로 데뷔해 3개, 지난해 7개의 홈런을 쳐냈던 그는 올해 35경기에서 11홈런을 때려냈다. 오프 시즌 동안 특별히 벌크업을 한 것도 아닌데 정확한 콘택트 능력을 바탕으로 공을 담장 밖으로 넘겨버린다.

박용택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김도영의 ‘하이 피니시’에 주목한다. 박 해설위원은 “김도영은 몸 스피드가 워낙 좋아서 그동안 하드 히트가 많이 나왔는데 발사각은 너무 낮았다. 이범호 감독이 김도영에게 무조건 공을 띄우라고 말했다고 하던데, 올려치면서 스트라이드 하는 앞발(왼발)에 여유가 생겼다. 방망이가 작년보다 공의 아래쪽에 접근하면서 타격 마지막 때는 귀 위로 넘어간다. 스윙의 각 자체가 좋아졌다”고 했다.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 또한 발사각을 이유로 든다. “타격폼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타구 스피드와 맞물려 타구질과 발사각이 잘 만들어지면서 홈런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해설위원은 “치고 달리는 재능이 원래 남달랐던 선수인데 프로 3년 차가 되면서 자신감이 더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더불어 “최정이 타자 친화적인 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어 가장 유력한 홈런왕 후보지만 김도영은 타고난 배트 스피드와 힘으로 다크호스가 될 것도 같다”고 했다.

김도영은 부상으로 올 시즌 준비를 늦게 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일본과 결승전에서 연장 10회초 때 1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감행하다가 왼쪽 엄지 인대 파열과 골절을 당했기 때문. 승부 근성이 부른 안타까운 부상이었다. 이후 수술과 재활에 4개월이 소요된다는 진단이 있었으나 엄청난 회복력을 보이면서 개막전부터 출전할 수 있었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이종범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김도영은 조용하게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고 했다. ‘제2의 이종범’이라는 엄청난 무게감을 안고 18살에 출발했던 프로 생활. 스무살에 이르러 김도영은 왜 자신이 그렇게 불렸는지 서서히 입증해내고 있다.

재능은 사라지지 않고 언제든 드러난다. 필요한 것은 다만 시간일 뿐이다. 드러낼 시간과 끌어갈 시간. 발톱 다 자란 아기 호랑이, 김도영의 시간이 비로소 왔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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