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與…그래도 뭐라도 하는 게 낫다 [핫이슈]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5. 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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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혁신당 첫 기자회견은 ‘김건희 수사 촉구’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행진하고 있다. 2024.4.11 utzz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요즘 대통령실이 하는 일을 보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것 만큼 정확한 표현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요구했던 대통령 기자회견을 이제서야 하고, 검찰은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사’도 개시한다고 한다. 총선 전에 하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일을 뒤늦게 한다고 하니 곳곳에서 성난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다음 지방선거와 대선까지 염두에 둔다면 가만히 있기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낫기는 하다.
프레임 전환 실패한 김 여사 가방 건
김 여사 명품백 사건은 일찍 사과하고 경위를 제대로 설명했으면 될 일을 두 달을 뭉개다가 지난 1월 대통령 신년 대담에서 처음 언급이 나왔다. 올들어 언론과 여론이 신년 기자회견이 꼭 필요하고, 김 여사 건도 밝히라고 수차례 얘기해서 나온 결과가 고작 녹화 대담과 변명 같은 발언이었다. 목사라는 양반이 벌인 몰카 공작 분노가 가방 수수 못지 않게 큰데도 대통령실과 여당은 신속하고 진정성 있는 해명을 못해 유리한 쪽으로 프레임 전환에 실패했다. 윤석열 대통령 말대로 박절하게 뿌리치지 못한 점을 갖고 김 여사가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과거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미를 부각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야당에 공세 빌미를 계속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국민 불만을 어떻게든 다독여보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전략적 실책이자 이런 것이야말로 대놓고 국민 무시다. 사건이 커지는데도 김 여사는 외부 활동을 삼간 채 총선 승리만 기다렸을 것이다. 이겨서 사건이 수그러들면 그때 외출하길 기대했겠지만 민심은 어리석지 않다. 지금 검찰의 수사 개시 방침에 여야 모두 계산기를 두드리지만 후딱 해치우는 게 살길이다. 대통령 부인이 바깥 활동도 못하고 숨어지내는 것은 극히 비정상적이다.

해병대 예비역 연대가 17일 국회에서 ‘제21대 국회 채상병 특검법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4.17 [김호영기자]
비상식적 대응으로 ‘채상병 특검법’ 자초
지난주 국회를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도 대통령실이 지레 겁먹고 발뺌 하다가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벌이며 총선 승리를 야당에 갖다바쳤다. 해병대 수사단 보고를 받은 뒤 경찰에 이첩을 보류한 과정에서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이런저런 의견을 냈다고 해서 그 자체를 과잉이라고 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징계 대상에 해병대 사단장까지 포함된 것을 두고 만에 하나 대통령이나 국방장관이 재고를 요구했다고 해도 그게 직권남용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하지만 부하 보고에 의견 제시도 못한다면 결재 라인이 있을 필요도 없고, 추후 문제 발생 시 상관 책임도 없게 된다. 윗선의 정당한 의견 개진에 수사단장이 불복해서 경찰에 조사 내용을 이첩하는 것이 군 기강에 더 해로운 것이다. 더욱이 수사 주체가 해병대가 아닌 경찰인 점을 감안하면 수사권 침해나 직권남용이 법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하지만 민주당은 세월호와 이태원 같은 참사를 국면 조성용으로 활용하는데 능했고, 무능한 집권세력은 또 한번 당했다.

이 전 장관을 조사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장이 지난 1월 공석이 됐는데도 총선이 끝나고서야 부랴부랴 지명된 것도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다. 공수처장을 임명해주고 ‘할테면 해보라’가 아니라 오히려 수사 대상자를 외국에 내보내니 국민 상식과 동떨어진 게 당연하다. 그 난리를 치르고 나서야 공수처장 후보 인사청문회가 이제야 열린다고 하니 외양간 수리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채 상병 건은 무대응한다고 해서 독이 오른 다수 의석 야당이 포기하고 넘길 사안이 절대 아니다. 야당도 꺼낸 명분이 있는데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7일 “(채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정국에 상당히 파란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이 행사되면 야당은 차기 국회에서 또 상정할테니 ‘이태원 특별법’처럼 조건부 합의라도 해서 매듭을 지어야 한다.

국민 눈높이는 검찰이 보는 것과 다르다
검찰 출신인 윤 대통령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 총선에서 처절하게 체험했겠지만 정치는 원칙과 이성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김준혁, 양문석 민주당 후보가 흠이 많아도 당선되는 게 정치다. 채상병과 김 여사 특검에 국민 과반이 찬성할 정도다. 총선 전 민의를 제대로 수용 못해 패배한 점을 인정한다면 여당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 ‘소 읽고 외양간 고치기’가 될지라도 다음 선거를 위해 사고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 야당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해봐도 신통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특검 무용론’이 여론으로 응축될 때까지 별 수 없다. 총선 패배로 짊어질 멍에나 천형 같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개별 특검법 상위법에 특검 시행은 검경 및 공수처 수사가 끝난 뒤 할 수 있다는 요건을 명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이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이 또한 패자의 굴레다.
윤 대통령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오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연다고 대통령실이 6일 밝혔다. 사진은 기자회견 장소인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 2024.5.6 z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尹 기자회견에 정치생명 걸어야…국민신뢰 얻을 기회로
이제 남은 방법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윤 대통령 기자회견이다. 전문가를 동원해서라도 치밀하게 준비하고 연습해야 한다. 자기 변명이나 업적 홍보로 간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윤 대통령은 이번 기자회견에 정치생명을 건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잘못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한 사과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뭐를, 어떻게 실수해서 이렇게 됐고, 향후엔 이렇게 바꿔가겠다고 명확히 해야 한다. 2년 간 업적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구체적인 숫자들과 효과를 내세워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특검법 대상에 오른 이슈들도 가감없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절박함과 진정성과 함께 개선 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 많은 국민은 무작정 잘 하겠다는 말은 ‘립싱크’로 여겨 감동도 없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하이브와 분쟁으로 얼마 전 기자회견을 한 민희진 어도브 대표 영상도 꼭 한번 보기 바란다. 민씨에 대한 비난도 많지만 말 한마디한마디에 절실함과 함께 구체적인 근거와 논리가 배어 있다. 기자회견을 통해 민씨는 두터운 지지층과 팬심을 쌓았다. 윤 대통령도 그런 절박하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기자회견에 임해야 한다. 과거 그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국민 심금을 울렸듯이 이번에 잘만 하면 정치 국면을 반전시킬 계기가 될 수 있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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