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물이 목까지 차올랐다”…온마을 침수된 경남 합천 양산마을

최상일 기자 2024. 5. 8. 09: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마을에 물 들이쳐…55명 긴박하게 탈출
전자제품·이불·옷가지 모두 흙범벅돼 ‘망연자실’
비닐하우스도 잠겨 출하 코앞 토마토 등 수확 불가
인근 고속국도 공사 위해 쌓은 둑이 강물 막아 범람
“명백한 인재”…주민들 “지난해에도 비슷한 피해” 분통
7일 경남 합천군 대양면 양산마을 노인정에 가재도구와 어르신들이 쓰던 배게 등이 흙범벅이 된 채 나뒹굴고 있다. 이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주민들.

“죽을 뻔 했습니다.”

7일 찾은 경남 합천군 대양면 양산마을. 한 주민은 아찔했던 이틀 전날밤 상황을 설명하며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양산마을 일대는 어린이날인 5일 밤 11시40분께 온 마을이 물에 잠겼다. “마을이 물에 잠기고 있다”는 신고를 잇따라 접수한 소방당국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가 이미 침수된 상태로 차량 진입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15명의 주민은 자력으로 탈출했지만, 40명의 주민들은 소방대원들이 업거나 보트를 이용해 구조했다.

자력으로 탈출 했다는 한 주민은 “불과 1~2분 사이에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한 할머니는 ‘순식간에 물이 목까지 올라왔다’고 하더라”면서 “그나마 사람이 안죽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강락 양산마을 이장이 노인정 샷시 문에 남아있는 물이 차올랐던 지난 밤의 흔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농민 정규연씨가 침수 피해를 입은 하우스 앞에서 성인 키 높이 만큼 물이 차올랐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장마철도 아닌 5월 때아닌 물난리로 졸지에 이재민이 된 주민들은 인근 복지회관 등으로 긴급 대피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다. 

한밤중에 급히 대피했던 주민들은 물 빠진 마을 상황을 보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냉장고·텔레비젼 등 가전제품과 집기들은 모두 널브러졌고, 이불이며 옷가지·침대 매트리스도 모두 흙탕물에 젖어 만신창이가 됐다. 마을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쉬었을 노인정 거실에는 밥솥과 전기포트가 흙범벅이돼 나뒹굴고 있었다. 노인정 샷시문에는 성인 허리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던 흔적이 선명했다.

농작물 피해도 심각했다. 약 2300평(7600㎡) 규모의 대형 딸기 하우스와 1660평(5489㎡) 규모의 토마토 하우스에 5일 자정 무렵부터 물이 들어차 반나절 넘게 침수되는 피해를 봤다. 수확을 앞둔 딸기·토마토가 흙탕물을 뒤집어써 수확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엄청난 수압에 하우스 철골도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하우스 옆 창고에 있던 대형 철골 구조물도 하우스 옆까지 떠밀려와 나뒹굴었다.

침수 피해를 본 양산마을의 한 딸기 비닐하우스에 진흙탕물을 뒤집어 쓴 딸기와 농기자재가 뒤엉켜 나뒹굴고 있다.
농민 정규연씨가 물에 장시간 잠겨 수확이 힘들어진 토마토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농장주 정규연씨(59·대양면)는 “12시40분께 현장을 확인하러 나왔더니 엄청난 양의 물이 들이쳐 하우스가 모두 침수됐을 뿐 아니라 외국인 근로자들이 하우스 지붕에서 핸드폰 불빛을 흔들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며 “사람이 안다쳐 천만다행이지만, 땀흘려 키워 수확을 코앞에 둔 농작물이 못쓰게돼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탄식했다. 정씨 농장의 딸기는 6월말까지 계속 수확할 예정이었으며, 토마토는 출하를 불과 3~4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강수량을 확인한 주민들은 분통을 터트려야 했다.

경남도에 따르면 5일 24시 기준 합천군 강우량은 59.6㎜로 경남 평균인 86.1㎜보다도 적었다. 이런 심각한 침수 피해가 날 강우량은 아니라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서 수십년 넘게 살았지만 고작 이정도 비로 마을에 물이 들어찬 건 처음”이라고 했다. 인재의 가능성이 대두되는 대목이다.

주민들은 그러면서 “고속국도 건설 공사를 하면서 하천에 둑을 쌓아 만든 임시도로(가도)가 원인”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제방이 물의 흐름을 막아 범람했다는 것이다. 한 주민은 “하천을 막아놓고 작은 구멍(배수로)만 몇개 뚫어놓으니 물이 안넘치고 배기겠느냐”면서 “명백한 인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강락 양산마을 이장(오른쪽)이 멀리 뒤편으로 보이는 고속국도 공사현장을 배경으로 이번 침수 피해의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피해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 이강락 양산마을 이장은 “믿기 어렵지만 작년 5월5일 똑같은 시간대에도 물이 역류해 비닐하우스가 잠기는 등 피해가 있었다”면서 “한번 식겁을 했으면 공사 주체나 행정에서 충분히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규연씨도 “지난해 피해 이후 계속 대책 마련을 요구해왔는데, 결국 이리 됐다”며 “속에 천불이 난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양산마을을 방문해 피해 복구 상황을 점검하고 피해 주택을 찾아 철저한 피해 조사를 약속하면서 주민들을 위로했다. 박 지사는 또 이러한 유속 방해 사례가 더 있는지 모든 공사 현장에 대해 조사하고, 유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경남도는 이재민들을 합천군 친환경문화센터에서 보호하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먼저 정확한 손해사정을 지원하고, 이후 신속히 복구할 방침이다.

농협이 양산마을에 긴급 지원한 이동세탁차량.

농협과 대한적십자사 등도 발빠른 지원에 나섰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6일 양산마을 피해현장을 찾아 농민과 주민을 위로했고, 구호키트와 생필품, 세탁차량을 긴급 지원하는 한편 피해 확인 후에는 복구 일손돕기, 도배·장판 교체 등 이재민들의 일상복귀를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다. 대한적십자사 경남지사는 이동급식차량으로 주민들에게 급식을 제공하고, 향후 이재민들대상으로 심리 지원도 이어갈 예정이다.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