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거장의 물방울과 단색화… ‘초현실’을 마주하다

박동미 기자 2024. 5. 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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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창열·윤형근 개인전
김창열 화백 작고 3주기 전시
캔버스에 떨어진 물방울에 천착
50여 년간 생생한 묘사에 집중
1970~2010년 작품 38점 공개
윤형근 작가, 3년만에 국내 전시
수묵화처럼 오묘한 빛의 단색화
佛 체류 전후 시기 작품 총망라
전시作 27개 국내 첫 공개 화제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영롱함을 넘어서’에서 김창열의 1979년 작 ‘물방울 ENS 203’을 한 관람객이 감상하고 있다. 캔버스에 유채, 182×227.5㎝. 갤러리현대 제공

한국 현대미술 두 거장의 개인전이 동시에 열리고 있어 주목된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과 단색화의 대가 윤형근(1928∼2007)의 회고전. 국내 추상미술에 큰 획을 그은 두 작가는 ‘파리’라는 도시와의 만남이 작품 세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BTS의 RM이 사랑하는 국내 작가로 호명되며 최근 대중적으로도 더욱 강렬하게 각인됐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선보이는 김창열의 ‘영롱함을 넘어서’는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개인 소장자들의 작품이 대거 출품됐으며, PKM갤러리에서 기획한 윤형근의 ‘윤형근/파리/윤형근’ 역시 국내에선 모두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로 구성해 눈길을 끈다.

◇김창열 ‘영롱함을 넘어서’ = 김 작가의 3주기를 맞아 개최하는 전시로, 물방울 그리기에 매진하기 시작한 1970년대의 작품부터 비교적 근작인 2010년의 작품까지 총 38점을 소개한다. 그는 1971년 프랑스 파리에서 우연히 캔버스에 맺혀있던 물방울을 발견한 후, 이에 천착하며 ‘물방울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아간다. 1976년 한 인터뷰에서 ‘발견의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했는데, 당시 꺼칠한 마대에 매달린 크고 작은 ‘물방울의 무리’를 본 그는 이를 ‘하나의 점’ ‘어떤 생명력을 지닌 새로움’ ‘기적’으로 받아들인다. 이후, 50여 년간 수행자처럼 같은 행위를 지속한다. 즉, 하나의 점이자 생명, 그리고 기적인 물방울을 그린 것. 1972년 프랑스에서 먼저 소개된 그의 물방울에 대해 초현실주의 시인인 알랭 보스케는 “최면의 힘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이후, 현실과 초현실 사이, 실재하면서 부재하는, 오묘하고 영롱한 물방울 예술의 여정이 본격화된다.

1976년 첫 국내 전시부터 2020년 생전 마지막 전시가 된 ‘더 패쓰(The Path)’까지, 김 작가와 반세기 가까운 인연을 이어 온 갤러리현대는 이번 전시에서 특히, 변주되고 확장해온 물방울에 집중했다. 실제 물방울이 캔버스 위에 맺힌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1970년대 작품부터, 신문이나 천자문 위에서 글자를 지우기도, 가리기도 하는 ‘살아있는’ 물방울을 실험한 1980년대, 그리고 물방울의 조형적 아름다움에 집중한 근작까지 다채롭게 구성했다. 이는 “물방울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예술의 본질은 일루전(환영)”이라고 규정했던 김 작가의 말처럼, 물방울(일루전)과 표면(현실)의 관계를 통해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무엇’에 조금이나마 다가서는 시도이다. 전시를 기해 그의 아들인 김시몽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명예관장이 쓴 ‘물방울-그 광기 어린 행위에 대하여’에 따르면 김 작가의 반복적 그리기는 시시포스가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린 행위와 같다. 김 관장은 “김 작가 또한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과 존재의 이유를 찾았다고 상상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시는 6월 9일까지.

윤형근의 ‘번트 엄버와 울트라마린’. 한지에 그린 1981년 작(위, 47×63㎝)과 리넨에 그린 2001년 작(97.8×162.5㎝). PKM갤러리 제공

◇윤형근 ‘윤형근/파리/윤형근’ = ‘윤형근의 기록’(2021) 이후 3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전시로, 윤형근 생에 두 번에 걸친 파리 시기와 그 전후에 주목받은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출품된 27점 전체가 국내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것이어서 화제인데, 주로 1980년대 파리 체류 당시 몰두했던 한지 작업, 그리고 2002년 파리 장브롤리 갤러리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들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그림을 ‘천지문(天地門)’이라 명명했으며, 하늘의 빛인 ‘블루’와 땅의 빛인 ‘엄버’(암갈색)로 오묘하고 절제된 ‘검은빛’을 작품에 담아내는 데 천착했다.

국내에서 경매가가 가장 높은 작고 작가 중 한 명이고, 미술 애호가인 RM이 앨범 표지로 활용하면서 젊은 층에도 낯익은 이름이 됐으나, 생전 윤형근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6·25 전쟁 때 옥살이를 했고, 1970년대에는 공산주의자로 낙인이 찍혀 1980년대 프랑스 파리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구도자처럼, 수행하듯 작품 활동에 몰두한다. 자유로운 예술의 도시에서 그는 자신이 탐구해 온 천지문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험했고, 이때 ‘천지문 회화’의 정수라고 할 만한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다. 따라서 파리는 그에게 ‘확신’이라는 영감을 준 도시다.

2002년 두 번째 파리와의 인연. 윤형근은 장브롤리가 제공한 파리 레지던시에 3개월간 머물며 대형 회화들을 그린다. 천지문의 조형 어법에 확신을 갖게 된 그는 보다 크고 힘있게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표현해냈고, 바로 그 작품들을 이번에 만날 수 있다. 회고전과 함께 PKM은 2014년 시작된 윤형근 작업의 아카이브 정리를 곧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올여름부터 순차적으로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전작 도록 내용이 공개된다. 전시는 6월 29일까지.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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