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원·인간 ‘갑을역전 300년’… 둘은 공존할 수 있을까[영화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 리뷰]
‘혹성탈출’ 3부작 잇는 작품
원조 리더인 시저 사후 배경
인류 문명은 까마득한 과거
똑똑한 유인원의 시대 도래
‘인간 사냥’ 유인원 군단 맞선
어린 유인원 노아 여정 그려
위기 겪고 조력자 만나 성장
전형적인 ‘영웅 서사 스토리’
진일보한 ‘퍼포먼스 캡처 기술’
다양한 캐릭터 생명 불어넣어
“뭐 인간이 말을 한다고? 에이 설마….”
유인원은 말을 하고, 인간은 말을 잃어버렸다. 유인원은 똑똑하고, 인간은 냄새나고 멍청하다. 8일 개봉한 영화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연출 웨스 볼)에서 인간과 유인원의 관계는 완전히 역전돼 있다. ‘시저’(앤디 서키스)가 이끄는 유인원들의 승리로 막을 내린 ‘혹성탈출’ 3부작 이후 약 300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풀숲에 파묻힌 빌딩들처럼 인류가 지배했던 문명의 시대는 까마득한 과거로 전락했고, 유인원의 시대가 도래했다. “뭉치면 강하다”던 참된 리더 ‘시저’가 죽은 뒤, 다양한 유인원 부족이 살아가는 가운데, 유인원들은 권력과 욕망 때문에 분열과 파멸을 자초했던 인간의 전철을 밟아나갈 수도, 새로운 세상을 열 수도 있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 구조를 띤다. 주인공 ‘노아’(오언 티그)는 위기를 겪고, 조력자를 만난 뒤 조금씩 성장하며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난다. 똑똑하고 용맹하지만, 자신의 터전 외 세상은 모르는 어린 유인원인 노아는 부족이 다른 유인원들에게 공격당하고, 가족과 친구들이 사로잡히면서 금기시됐던 터널 너머 바깥세상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말을 할 줄 아는 똑똑한 인간 ‘메이’(프레이아 앨런)와 정신적 스승인 오랑우탄 ‘라카’(피터 메이컨)를 만나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이 문명을 이끌었던 시대가 있었고, 유인원들의 시조 격인 시저는 인간과 유인원이 어울려 사는 것을 지향했다는 사실은 노아를 변화시킨다. 이전까지 ‘우물 안 유인원’이었던 노아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고, 자신의 가족을 되찾고 잃어버린 집을 재건하려고 한다.
노아는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유인원 왕국을 건설한 ‘프록시무스’(케빈 듀랜드)와 충돌한다. 프록시무스는 인간을 사냥하며 인류를 없애버리려고 하지만, 한편으론 로마 제국을 신봉하며 누구보다 인간을 닮으려고 애쓰는 유인원이다. ‘뭉치면 강하다’는 시저의 뜻을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로 교묘하게 바꿔 왕국의 작동원리로 활용하는 그는 언뜻 보면 사이비 교주 같다. 프록시무스는 인류가 파멸하기 전 모든 기술과 정보를 보관했던 ‘지식 창고’를 열고 싶어 한다. 즉각적인 ‘진화’를 위해. 인간을 배척하는 프록시무스는 어쩌면 가장 인간이 되길 열망하는 캐릭터다.
노아와 메이는 힘을 합쳐 이를 저지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유인원과 인간의 화합을 의미하진 않는다. 각자 생각이 다르기 때문. 메이는 지식 창고에 있는 것은 ‘인간의 것’이었다며 유인원에게 주느니 물에 잠기는 쪽을 택한다. 인간과 유인원의 공존을 잠시나마 꿈꿨던 노아는 인간이 만든 세상이 아닌 새로운 세상, 자신들의 새로운 집을 만들 거라고 선언한다.
유인원의 시대로 시작하며 조금 변형했지만, 결국 새로운 ‘혹성탈출’ 시리즈도 인간과 유인원이 함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며, 두 세계의 충돌을 예고한다.
인간과 유인원의 갑을 관계가 뒤바뀜에 따라 오는 재미가 있다. 우리가 동물원 우리의 침팬지들이 말을 하는 걸 믿지 못하듯, 유인원들은 인간이 말을 하는 것에 놀란다. 인간은 더럽고, 냄새나며, 무엇보다 멍청하다고 여기기 때문. 노아는 다른 인간과 달리 똑똑한 메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마치 유인원 같아요.”
유인원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다. 1500개의 컷 중에서 1470개의 컷이 모두 시각특수효과(VFX) 기술로 탄생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컴퓨터그래픽(CG)으로 이뤄졌단 얘기다. 인간과 유인원이 공존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화면 내에선 실제 인간과 CG로 만든 유인원들이 성공적으로 공존한다. ‘혹성탈출’ 3부작에서 ‘모션 캡처’ 기술을 활용해 ‘시저’를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들을 현실감 있게 묘사했던 세계적인 VFX 스튜디오 웨타FX(Weta FX)는 이번 영화에선 한층 발전된 ‘퍼포먼스 캡처’ 기술을 통해 유인원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모션 캡처 슈트에 더해 페이스 카메라 등이 활용됐다. 유인원들이 물에 젖거나 침을 흘려 털의 질감이 조금씩 바뀌는 섬세한 표현을 위해 ‘아바타 : 물의 길’에서 쓰였던 기술이 활용됐다.
인간 문명의 잔재와 자연이 뒤섞인 공간적 배경은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극단적인 롱-숏으로 말을 탄 유인원들이 풀이 뒤덮인 빌딩 숲을 지나 다리를 건너는 생경한 풍경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해안가에 도시를 건설하고, 다른 유인원 부족과 인간을 지배하려고 하는 프록시무스의 왕국은 찰턴 헤스턴 주연의 원조 ‘혹성탈출’의 마지막 장면이 연상된다. 목재와 통나무를 묶은 4층 높이의 대형 건축물을 제작해 유인원들의 터전인 세트장을 완성했고, 8개월간 호주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광활한 대자연과 사라진 대도시의 모습을 담아냈다.
‘혹성탈출’ 3부작의 영웅 ‘시저’란 이름을 로마의 카이사르에서 따왔듯, 이번 작품의 ‘노아’는 성서의 노아처럼 물난리에서 부족의 생존을 이끌며 새로운 시대를 연다. 볼 감독은 7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단순히 이어지는 4편이 아니라 새로운 장을 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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