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거짓말 [김현아의 우연한 연결]

한겨레 2024. 5. 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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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앉은 교실 칠판에 ‘부모님’이라는 단어 대신 다른 단어가 쓰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무에게나, 나를 보살펴준 따듯한 손을 가진 어른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일러스트레이션 김우석

김현아 | 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5월, 가정의 달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학교에 있는 내내 이걸 건네줄 생각만 했었는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에서 허겁지겁 꺼낸 노란색 종이는 조금 구겨져 있었다. 아이는 빨리 읽어보라고 발을 굴렀다. ‘어버이날’을 맞이해 학교에서 써온 편지였다. 분홍색과 빨간색, 초록색으로 칠해진 커다란 하트 아래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의 글씨가 제법 또박또박하게 쓰여 있었다.

- 엄마, 아빠에게

저를 돌봐주시고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편지 속엔 선생님이 불러주는 말을 받아 적기라도 했는지, 평소 아이가 쓰지 않는 ‘저’ ‘돌봐’ ‘키워’ ‘감사’ 같은 낯선 단어들이 가득했다. “고마워. 엄마도 사랑해.” 나는 아이를 꼭 껴안아주고 냉장고에 붙여진 아이 사진 옆에 편지를 붙여 두었다.

냉장고에 붙은 편지를 볼 때마다 연필 소리가 요란했던 5월의 교실이 떠올랐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 매해 학교에선 부모님께 편지 쓰기 행사를 진행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선생님이 나눠준 편지지를 앞에 두고 바쁘게 연필을 굴렸다. 순식간에 말소리가 줄어들고 교실 안에 연필 소리가 비처럼 쏟아졌다. 나는 책상과 연필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들이 뭐가 저렇게도 많을까, 생각했다. 집에 가면 당장에라도 볼 수 있는데, 못 한 말들이 얼마나 많길래 저럴까 싶었다. 아이들의 연필이 맹렬하게 종이 위를 가르는 동안 고요히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슬쩍 바라본 짝꿍의 편지지는 벌써 두 줄이 넘어가고 있었다. 바삐 움직이는 짝꿍의 연필을 바라보다 아무것도 쓰지 못한 내 편지지로 시선을 옮겼다.

턱을 괴며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척했다. 내 연필이 느린 탓이 편지를 받아 볼 엄마, 아빠가 없다는 걸, 어떻게 쓴다 한들 함께 사는 할머니는 글자를 몰라 읽을 수 없다는 걸 감추기 위해 내 표정도 태연한 척 거짓말을 했다. 나는 누가 볼까 몸을 잔뜩 웅크리고 편지지를 팔 안에 감추었다. ‘할머니께’를 썼다가 지웠다. 틀린 글자도 없었지만, 지우개로 편지지를 벅벅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쓴 글자는 ‘부모님께’였다. 집에 있는 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지만 받는 사람을 고치지 않았다. 받는 사람부터 거짓말로 시작되는 글로 편지지 한 면을 채워나갔다.

생각해 보면 엄마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거짓말이었다. 열 밤만 자고 온다던 엄마는 32년이 지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네 살과 다섯 살의 경계에 있던 겨울날 아빠는 거짓말처럼 죽은 사람이 되었고 엄마는 열 밤만 자고 올 거라는 거짓말을 남긴 채 내 곁을 떠났다. 엄마가 떠난 뒤 할머니 등에 업혀 깊은 밤을 보낼 때도, 곧 엄마가 올 거라는 할머니 말을 들을 때도, 나는 할머니의 코를 만졌다. 길어지지 않는 할머니 코를 붙잡고 거짓말이 아니구나, 안심했던 여섯 살의 내가 있었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비슷비슷한 글을 쏟아내는 동안 나는 겨우 한 줄을, 겨우 한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썼다.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 시계를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한참을 웅크려 있다 살짝 고개를 들었을 때 대각선에 앉은 친구의 어깨가 보였다. 그 어깨를 타고 뻗어난 팔이 거침없이 편지지 위에서 움직이는 것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단단하고 정직해 보이는 그 뒷모습에 어떤 바람이 내 마음속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보고 싶다, 어디에 있느냐. 잘 사느냐. 언제 오느냐 같은 말 대신 효도할게요. 말 안 들어서 죄송해요.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거짓말로 가득 찬 편지를 재빠르게 접어 봉투에 넣었다. 그 편지가 할머니 손에 들어갔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할머니 손에 들어갔다고 해도 어차피 할머니는 한글을 몰랐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아마 편지봉투를 내밀며 이게 뭐냐고 묻는 할머니께 ‘그냥 학교에서 쓴 거야’ 하며 톡 쏘는 말을 내뱉었겠지. 뜯지도 않은 편지봉투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을지도 모른다. ‘화목’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가정의 달에 나는 유난히도 할머니께 신경질을 부렸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의 교과서를 펼쳤다가 ‘우리 가족’ 챕터에 눈이 갔다. 아이가 삐뚤빼뚤하게 쓴 아버지, 어머니라는 단어와 그 옆에 쓰인 남편과 나의 이름을 보았다. 아이가 있던 교실에도 거짓말을 해야 했던 아이가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할머니나 할아버지, 삼촌이나 이모, 고모, 아니면 아주머니, 아저씨 같은 다른 단어를 쓰고 싶었던 아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마음을 잘 몰라, 늘 ‘우리 가족’이라는 주제 아래 아버지, 어머니, 나, 동생, 형 같은 단어들만 늘어놓는다.

내가 앉아 있던 교실 안에서도 나처럼 거짓말을 한 아이가 있었을 것이다. 연필 끝을 입술에 톡톡 부딪히며 다음 쓸 말을 곱씹던 아이. 맞춤법을 잘 몰라 연필보다 지우개를 더 많이 들었던 아이. 팔꿈치로 짝꿍을 툭툭 치며 장난을 건네던 아이. 모두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중 누군가는 나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었을지도.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에 애써 마음을 숨겨야 했던 아이가 있는 교실을 생각하면 내 마음에 또 한 번 바람이 부는 것 같다. 그 바람의 이름이 서글픔과 쓸쓸함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들이 앉은 교실 칠판에 ‘부모님’이라는 단어 대신 다른 단어가 쓰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무에게나, 나를 보살펴준 따듯한 손을 가진 어른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편지 쓰는 걸 좋아해, 자주 친구들에게 편지를 건넸던 나는 아마 가장 신나게 연필을 굴렸겠지. 거침없이, 빠른 속도로. ‘할머니께’로 시작하여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어떤 점은 속상했고, 짜증내 미안했다는 말, 그런 말들이 쉴 틈 없이 쏟아져 내렸을 것이다. 팔 안에 편지를 감추고 쓰는 일도 없었을 거다. 운동장을 재빠르게 뛰어가는 아이들의 거짓말이 조금씩 줄어들기를. 그 마음이 단단하기를, 진실로 바란다.

꽝, 뒤통수를 내리쳤던 이 글은 목요글방에 참여하고 있는 김수현 저자의 에세이 일부다. 세상의 모오든 교사들에게, 세상의 모오든 교육 현장에 보내고 싶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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