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야영] 꽃구경 대신 '전쟁 같은 산행'

민미정 2024. 5. 8.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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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용화산
용화산 정상에서 고탄령으로 가는 길. 산사태로 등산로가 유실된 곳이 많아 위험했다. 위에서 쓸려내려 온 나무 더미를 건너는 김혜연, 한예진씨.

전국 이상기온으로 개화가 늦어졌다. 봄꽃 축제를 준비한 지자체에 비상이 걸렸다는 뉴스가 TV에 계속 나왔다. 그나마 주작-덕룡산에만 진달래 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SNS에는 새벽부터 덕룡산을 줄지어 오르는 영상이 넘쳤다. 그런 곳에서 텐트를 펼쳐 놓고 한가하게 꽃구경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산불방지기간, 입산통제구간도 피해야 했다. 국립공원까지 빼고 나니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아, 잔인한 4월이여!

산세가 멋지기로 소문난 강원도 화천과 춘천의 경계에 위치한 용화산이 어느 날 눈에 띄었다. 용화산의 주봉은 만장봉이며 높이는 877.8m다. 오봉산과 연계 산행하기에도 좋았다. 총 거리가 약 7.3km로, 8km 남짓의 코스를 만들 수 있었다. 1박2일 동안 용화산-오봉산을 연결해서 타기로 했다. 얼마 전 하와이에서 트레킹을 하고 돌아온 한예진과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돌아온 김혜연과 함께 가기로 했다. 요즘 나는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그들과 천천히 걸으며 그들의 여행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런대로 대리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식량은 비화식으로 챙겨 가볍게 떠나기로 했다.

절벽 위 전망대에서 휴식을 취하며 드론으로 담은 풍경. 깎아지른 절벽이 아찔하다. 

월요일 아침, 용화산 들머리인 큰고개 주차장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주차장에는 산행을 준비하는 등산객과 벌써 산행을 마친 등산객이 얽혀 꽤 시끄러웠다. 그 입구에 오래된 듯 너덜너덜해진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겨울철 등산로가 위험하니 입산을 통제합니다' 약간 긴장됐다. 임도에 나뒹구는 거대한 바윗덩어리들도 우리를 멈칫하게 했다. 준비를 마친 등산객이 먼저 출발했다. 우리는 조심스레 그 뒤를 따랐다. 시작부터 된비알이 이어졌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꽃봉오리가 얼어붙을 정도로 춥더니, 금세 여름 날씨로 바뀌었다. 화사한 꽃밭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푸른 잎 하나 없는 살풍경에 씁쓸했다. 그래도 봄이건만. 해외에서 멋진 이국 풍경을 만끽하고 온 두 사람은 더욱 실망스러울 것 같았다.

"꽃도 없고 심심하지?"

"에이~ 우리가 뭐 그런 거 따지나요? 우리끼리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꽃 있는데 가봤자 사람들에 치이고, 마음 불편해요. 여기가 훨씬 나아요!"

둘은 내 마음을 읽은 듯 연신 "맞아! 맞아!"를 외쳤다.

큰바위 주차장~용화산 정상까지 길은 깔끔하고 안전하게 정돈되어 있다. 100명산 인증을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은 덕분이다.

누그러진 분위기에 예진이와 나는 혜연이에게 말장난을 쳤다. 언제나 그렇듯 혜연이는 못 말린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삼박자가 이뤄져야 힘든 오르막을 지루하지 않게 빨리 통과할 수 있다. 능선에 올라서자 새남바위 전망대가 나타났다. 멋진 소나무와 함께 절경이 펼쳐졌다. 드론을 날려 깎아지른 절벽을 훑어보았다. 멀리서 바라보는 바위산이 장관이었다. 먼저 올랐던 등산객이 정상을 찍고 내려오고 있었다. 100명산 인증을 하고 돌아가는 듯했다.

정상에는 제단처럼 잘 꾸며진 정상석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 중 누구도 정상인증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우린 언제나 정상인증을 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해야 할까? 뒤 이어 올라오는 등산객들에게 얼른 자리를 내줬다. 우리는 배후령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향해 출발했다. 정상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 뒤에 붙지 않았다. 대부분 정상인증만 하고 떠나는 듯 했다.

들머리에서 능선까지 오르막의 연속이다. 한예진씨가 안전로프에 의지해 오르고 있다

정상 이후 등산로 '엉망'

길이 심상치 않았다. 용화산 정상까지와는 달리 태풍 같은 것이 휩쓸고 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크고 작은 나무가 꺾이고, 뽑힌 채 비탈길에서 나뒹굴었다. 가지치기라도 한 듯 잔나무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전봇대만 한 나무들을 곡예하듯 넘었다.

"이건 무슨 미션임파서블 적외선 레이저 보안시설 통과하는 것 같아요!"

앞장 선 혜연이가 외쳤다.

"딴~딴~딴따 딴~딴~딴따 띠로리~ 띠로리~"

전망 좋은 암릉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뒤따르던 예진이와 나는 멈춰 서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미션임파서블 BGM을 불렀다. '아차!' 하는 순간 옆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긴장되는 순간에도 우리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혜연이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언니!! 장난치지 말고 조심히 건너와요! 예진이 너도!!"

결국 혜연이에게 혼이 나고 말았다. "넵!" 우리는 다시 긴장모드로 돌아와 나머지 장애물을 무사히 건넜다. 길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이어지는 비탈길은 산사태로 유실된 곳이 많았다. 바위에 박아 놓은 안전봉조차 휩쓸려 쓰러지거나 흔들렸다. 까딱 잘못했다가 바위와 함께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길이 계속 이런 식이라면 안전을 위해 원점회귀해야 한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다녀와서 체력이 셰르파 급으로 업그레이드된 혜연이가 정찰을 나가기로 했다. 잠시 후 바로 앞 봉우리에 올라선 혜연이가 보였다.

이튿날 아침. 보온 재킷을 입고 산행을 해야 할 정도로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김 셰르파!! 지금 적진의 동향은 어떤가!!??"

긴장된 분위기를 풀려고 장난스레 물었다.

"이 앞으로도 길은 똑같은데요?"

혜연이가 심각하게 대답했다.

예진이에게 지금 이 정도의 길이 갈 만한지 물었다. 혜연이와는 오지를 많이 다녔던 터라 걱정이 없었다. 예진이만 괜찮다면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언니들이랑 오랜만에 산행인데 갈 때까지 가보죠!!"

"그래 좋아~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보자~!!"

혜연이는 위험구간이 없는지 살피며 앞장섰다. 위쪽부터 통째로 쓸려 내려간 경사면이 나왔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시그널을 달아 둔 나무가 아래로 고꾸라져 휩쓸린 탓에 등산로가 모호해졌다. 혜연이가 이리저리 길의 흔적을 찾았다. 나도 시그널이 달린 나무가 미끄러진 흔적을 따라 올라갔다. 널브러진 잔해들 사이로 희미한 돌계단을 발견했다.

용화산 정상에서 고탄령으로 이어지는 암릉 구간. 경관이 시원하게 펼쳐진 능선 위, 봄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등산로다!"

계단이 이어진 길을 가늠해서 아래쪽에 있는 혜연이에게 대략적인 방향을 알려주었다. 미로처럼 얽힌 경사면에서 무사히 탈출하고 나서야 안전한 등산로가 나타났다. 이후로도 우리는 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나무와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배낭이 걸리지 않도록 허리를 숙여야 했다. 아, 그런데 어떤 나무 밑에선 몸이 빠져나오질 못했다. 앞에서 예진이가 소리를 질렀다.

"언니! 조금만 더 숙여요! 조금만 더요!"

끄응, 배낭을 가볍게 챙겼는데, 촬영장비가 들어가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나는 버티지 못하고 나무 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 상태에서 재빨리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냈다. 거대한 나무 밑 그늘 속에서 피어 있던 야생화를 찍었다.

"오케이! 자연스러웠어, 나는 야생화를 찍고 싶었어!"

"언니! 비굴하게 무릎 꿇은 거 하나도 티 안 났어요!"

혜연이가 놀렸다.

"예진이가 같은 말을 할 땐 그냥 웃어넘기겠는데, 왜 혜연이가 얘기하니까 진짜 비굴해진 느낌이지?"

내 몸개그가 웃겼던 모양이다. 덕분에 분위기가 누그러진 것 같아 나는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

"언니, 저 날아가지 않겠죠?"

만장봉의 항공뷰.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만장봉은 용화산의 주봉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산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걸까? 복구되는 데 상당히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많은 등산객이 정상만 찍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의욕이 충만한 등산객이 여기에 발을 들인다면 안전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셋이 오랜만에 만나 쉬엄쉬엄 걸으며 여행이야기를 하면서 장애물까지 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배후령까지 가려던 계획을 접고 텐트 3동을 칠 수 있는 공터가 나올 때까지만 걷기로 했다. 이 상태로 어둠속에서 걸었다가 다칠 것 같았다. 앞서가던 혜연이가 적당한 야영지를 발견했다. 살풍경 속 공터에 각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설치했다. 살벌하게 'ㄱ'자로 꺾인 나무를 가리키며 예진이가 걱정스레 말했다.

"언니, 저 나무, 바람에 꺾인 걸까요? 오늘 제 텐트가 날아가진 않겠죠?"

"하루 종일 바람 한 톨 없어서 푹푹 쪘는데 무슨 소리야~ 별 걱정을 다하네!"

나는 타박하면서도 예진이의 손에서 가이라인을 빼앗아 나무에 단단히 묶었다.

"그래도 네 마음 편하라고 요거 하나는 고정해 둘게."

날이 금세 어두워졌다. 혜연이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와 우리의 작은 마당에 꽂고 랜턴을 걸었다. 그러자 야영장 분위기가 서바이벌 콘셉트로 바뀌었다. 우리는 춘천역에서 포장해 온 꼬마 김밥과 달달한 양념치킨으로 허기를 달랬다. 디저트는 혜연이의 히말라야 여행기였다. 그녀의 여행 이야기에 한껏 취한 우리는 셋이 함께 백패킹 해외원정을 떠나기로 약속했다. 그러고선 각자 텐트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캄캄한 새벽, 시끄러운 바람소리에 눈을 떴다. 텐트가 쉴 새 없이 요동쳤다. 예진이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김혜연, 한예진씨가 산행을 마치고 담소를 나누면서 진달래 밭을 지나고 있다. 능선 아래쪽엔 봄 기운이 가득했다. 

'오늘 저 날아가진 않겠죠?' '오늘 저 날아가진 않겠죠?' '오늘 저 날아가진 않겠죠?'

몸을 일으켜 텐트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날아가지 않고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두 텐트는 바람에 흔들렸지만 무사했다.

'나무도 빼곡하고, 절벽도 아닌데 괜찮겠지….'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바람은 여전했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인기척을 들은 예진이가 텐트 속에서 소리쳤다.

"언니! 저 날아갈 뻔 했어요!!!"

혜연이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용화산 정상에서 배후령으로 이어진 등산로가 많이 훼손된 탓에 운행 시간이 지체됐다. 능선을 타다가 나온 공터에서 야영을 했다.

"그래도 가이라인이 잘 버티고 있어. 안 날아가~."

혜연이도 펙 다운을 하지 않아서 밤새 텐트 벽을 몸으로 누르며 버텼다고 했다.

"이봐 이봐, 이래서 우리는 자연 앞에서 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해."

너스레를 떨며 얘기했다.

"언니 그건 제가 해야 할 소리거든요!?"

예진이가 웃으며 소리쳤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오봉산은 다음에 가고 겸손하게 하산해서 춘천 닭갈비나 먹으러 갈까?"

"좋아요!"

전날 수고한 탓에 눈에 보이는 고생길을 또 걸을 생각이 없었다.

하산길 내내 찬바람 불었고 장애물이 발을 붙들었다. 산행이 끝나갈 무렵 아름드리 핑크빛 진달래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다. 진달래가 아니라 '심달래'였다.

민미정 깨알 팁

아무도 묻지 않아도 알려주고 싶은 정보

고산병 안 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요즘 히말라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고산 무경험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바로 고산병이다.

내가 처음으로 고산증세를 느꼈던 때는 네팔 쿰부 추쿵리를 오르던 중이었고, 해발 5,000m 지점에서였다. 당시 나는 심한 두통과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고선 즉시 하산해 안정을 취했다. 그 이후 뚜렷한 고산증세를 겪은 일이 없다. 약간의 두통만 있었는데, 산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고산병에 대한 조언을 구하면 경험보다는 상식선에서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수준이다.

이번에 네팔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다녀온 김혜연은 함께 일본 알프스를 갈 때마다 해발 2,000m 지점에서 심한 고산병을 앓았다.

그녀는 겁먹고 포기할 만도 한데, 작년엔 미국 존뮤어 트레일에서 해발 3,400m를 극복하고 돌아왔다. 이번엔 5,300m까지 거뜬하게 넘었다. 그녀의 고산병 극복기를 들어봤다.

민미정

고산병 걸리면 주로 어떤 증상이 나타나지?

김혜연

두통, 식욕저하, 손발 저림, 무기력증이 가장 뚜렷한 것 같아.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산행 중 증상이 나타나면 어떻게 대처해?

일단 걸음을 멈추고 깊게 심호흡을 해. 조금씩 물을 마시기도 하고. 컨디션이 돌아오면 다시 천천히 걷는 거지. 허기가 느껴지면, 왜 흔히 당 떨어진다고들 하잖아? 이때가 되면 이미 체력을 회복하기가 힘든 것 같아. 체력이 고갈되기 전에 틈틈이 행동식을 먹어. 입맛이 없을 때 에너지 젤이나 젤리, 사탕류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그럼 고산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을까?

한 번에 고도를 높여야 할 때는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걸어. 호흡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정도로 말이지. 체온 조절과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 땀이 나면 체온 변화에 큰 영향을 주니까 귀찮더라도 옷을 자주 입고 벗고 하는 편이야.

고산병 약도 준비하고?

응. 만약을 위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처방 받아서 준비하거나, 증상이 가벼울 때 복용할 타이레놀도 함께 준비했어.

좋은 정보 알려줘서 고마워!

고산병이 모두에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체력, 컨디션, 환경 등 변수가 상당히 많다. 그러니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대처 하느냐에 따라 어느 곳에서건 안전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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