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당권 도전 왜 안 되는데?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인재 내치면 3년 후 정권 놓친다
청년 정치인들이 국민의힘 미래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의 복귀설이 모락모락 정도가 아니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분위기다. 첫목회(매주 첫 목요일에 만난다는 3040세대 국민의힘 총선 후보 모임) 이재영 간사(강동을)가 6일 한 전 위원장의 당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 재미있는 말을 했다.
“3주 전보다는 2주 전이 높았고, 2주 전보다는 일주일 전이 높았고, 갈수록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개인적인 감(感)일 수도 있지만 첫목회 멤버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대변했을 것 같다. 한 전 위원장을 지지해서가 아니라도 “그럴 것 같다”, “아니면 다른 대안이 있나?”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수는 있다. 이 간사의 분석이 또 재미있다.
홍준표가 한 전 위원장 불러내나
“홍준표 대구시장이 한 전 위원장의 재등장을 위한 멍석을 깔아줬다. 한동훈 위원장이 당분간 쉴 줄 알았다. 그런 기조도 보였는데 가만히 놔두질 않고 있다. (홍 시장이) 가만히 놔두지 않으니 참지 못하게 된 것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전 위원장의 손발을 묶고 제동을 걸겠다고 쏘아붙인 말이 오히려 한 전 위원장을 도발한 셈이 됐다.
“전략도 메시지도 없는 오로지 철부지 정치 초년생 하나가 셀카나 찍으면서 나 홀로 대권 놀이나 한 것이다. 내가 이 당에 있는 한 그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그처럼 매몰차게 패장 한 위원장을 몰아세웠다.
“조용히 본인에게 다가올 특검에 대처할 준비나 해라.”
“지난해 12월 비대위원장은 선거 경험 많은 사람이 해야지 한동훈은 안 된다고 이미 말했다. 그런데도 들어오는 거 보고 황교안처럼 선거 말아먹고 퇴출당할 것으로 봤다.”
이게 한 전 위원장을 향한 홍 시장의 ‘악담 어록’이다. 검사 선배, 당 대표(‘비대위원장은 대표가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나설지도 모르지만) 선배가 하는 말로는 너무 천박하고 모질었다. 비하의 의미로 쓰이는 ‘구태 검사’의 생짜가 그대로 묻어나는 화법이다. 검사 때부터 그랬는지, 그 이전에 이미 그런 습관이 있었던 건지, ‘이죽거리기’로 한몫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검사한테 걸렸으면 피의자들 정말 고생깨나 했을 것 같다.
이렇게 독설과 악담으로 마구 짓이겨대는 데 자극 안 받을 사람이 있을까?
“그래? 그러면 당원, 나아가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야지.”
이게 당연한 반응이다. 정치에 뜻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한다. 이런 말 듣고도 반응을 안 하는 사람이라면 정치할 생각은 애초에 접을 일이다.
21대 총선에서, 그 이전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대참패를 당하고도, 그 선거를 지휘했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을 애걸복걸하다시피 비대위원장으로 모신 정당은 어느 당이더라? 그런데 이번엔 삼고초려는커녕 오히려 멀리하려는 분위기를 보이는 것은 또 무슨 변덕인지 모르겠다. 홍 시장 같은 사람은 길길이 악담이나 퍼붓고―.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어서?
인재 내치면 3년 후 정권 놓친다
말은 바로 하자. 홍 시장이 지난 총선에서 당을 위해 어떤 기여를 했나? 자치단체장은 선거에 개입할 수 없으니 어쩌겠느냐고 할 것인가? 아무 도움도 못 줬다면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도 유보해야 옳다. 한 위원장은 비록 패장이 됐지만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총선에 진 것이 정말 한 위원장의 셀카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는가? 홍 시장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셀카 요청을 받아본 적이나 있는가?
지금 자유우파 정당과 정치세력이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패배 의식’이다.
“우리는 3년 후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을까? 좌파의 저 기세를 무슨 재주로 이겨.”
이렇게 미리 지고 들어가는 정당에 기회가 주어질 리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물론이려니와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를 보라. 온갖 비리 부패 혐의를 받고 있거나 2심에서까지 유죄를 선고받은 형사피고인들이 대한민국의 입법권을 틀어쥐게 되었다며 기고만장한 모습을 국민의힘 사람들이라고 못 볼 리가 없다. 이·조 세력은 입법권 농단(자기들이 잘 쓰는 용어)을 통해 자신들은 물론 추종자들까지도 초법적 존재로 만들 기세다. 이 대표의 점지를 받아 민주당의 차기 원내대표로 뽑힌 박찬대 의원은 입법 여의봉을 휘둘러 상대를 다 옭아 넣고 자기들 쪽은 다 풀어내겠노라고 기염을 토하고 있지 않은가.
홍 시장이 차기 대선을 노리는 것이야 뭐라고 할 까닭이 없다. 출마하고 싶으면 해야지. 그렇지만 혼자 뛰어서는 승산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당내에서 잠재적 경쟁자를 미리 잘라내 버리면 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길이 아주 순탄할 것이라고 여겨 정치 선배로서의 품격이고 뭐고 아랑곳없이 천박한 말을 마구 쏟아내는지도 모르지만 이야말로 악수 중의 악수다. 멋있는 경쟁을 통한 시너지 효과 없이는 당선 후보를 내지 못한다. 경쟁하는 과정에 인물을 키우고 부각해야 하는 것이다.
홍 시장은 당 내외에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다. 그럴수록 상호 존중과 격려를 통해 경쟁자와 윈-윈함으로써 정권 재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게 리더다운 자세가 아닐까? 자꾸 험한 비난의 말을 쏟아내고 윤석열 대통령과 사이를 이간시키려고나 하면 혼자 망하거나 공멸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검사 시절로 돌아간 듯 경쟁 상대를 형사 피의자 취급하는 ‘교만한 언사’가 새 시대, 새 세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 리 없다.
청년 정치인들이 국민의힘 미래
한 전 위원장이 당권에 도전 못할 이유가 있는가? 스스로는 총선 패배가 전적으로 자신의 탓이라고 했지만, 중간평가라는 측면에서는 윤 대통령의 탓, 정당 대결이란 점에서는 국민의힘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 모두의 탓이기도 했다. 패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로운 리더십을 가진 정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인재를 키우는 게 정당의 핵심 책무 중 하나다. 3년 후를 생각한다면 이런 인재를 버린다는 건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자유 우파 정당과 정치세력을 이끌어갈 힘은 첫목회 멤버들처럼 젊은 인재들에게서 나온다. 지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한 번은 하자. 김병준 비대위 시절의 조직강화특위는 젊은 인재를 충원하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다.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정치지망생 여럿이 지역 당원협의회 위원장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들에게서 우파 정당의 희망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총선 때가 되자 유력자들이 그 자리를 빼앗아 버렸다. 싹을 잘라 버린 것이다. 그게 당시 보수정당의 한계였다.
이번엔 달랐다. 젊고 활력 넘치는 후보들이 대거 공천을 따냈다. 더 큰 변화는 낙선에도 주저앉지 않고 벌떡 일어나 미래를 준비할 태세를 갖추는 모습에서 목격된다. 이들이 국민의힘의 미래다. 당의 유력자·실력자라는 사람들은 이들을 위해 자리를 깔아주고 길을 열어주는 선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 고참들이 계속 좋은 자리에 앉아 대접받겠다고 버티는 한 우파 정당에 미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도 용기 있는 젊은 당원들이야말로 정권의 버팀목이고 정권 재창출을 이뤄낼 리더군(群) 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정부의 힘은 거대 야당의 선의(그런 게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여당과 지지자들의 신뢰에서 나온다. 여권의 스타 정치인 만들기에도 인색하지 않을 것이 요구된다. 그런 사람(혹은 사람들)이야말로 현직 대통령의 강력한 정치적 자산이자 버팀목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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