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에 눈살 찌푸릴 때, 몽골에는 재앙이 닥쳤다

이오성 기자 2024. 5. 8.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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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황사는 봄철의 불청객이지만, 몽골 사람에게는 죽음 같은 공포다. 사막화로 황사 발생은 더욱 늘고 있다. 지난겨울에는 끔찍한 재앙이 몽골을 덮쳤다.
몽골 바양노르 지역에 몰아닥친 모래폭풍의 모습. 사람과 가축이 큰 피해를 입는다. ⓒ푸른아시아 제공

황사가 심상치 않다. 올봄 서울에서만 벌써 7일이나 황사가 관측됐다, 1991~2020년 3~4월 평균 황사 발생 일수가 각각 2.2일, 3.1일인 것과 비교하면 평년 수준을 뛰어넘었다. 더욱이 올해는 5월 중순까지 황사가 덮칠 것으로 예측됐다. 황사는 보통 5월 이후 가을까지 잘 발생하지 않는다. 지난해 황사 발생 횟수 역시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많았다.

황사 발생 뉴스는 대개 이렇게 설명하고 만다. ‘발원지 상황이 악화해 황사 발생 빈도가 늘어났다’라고. 여기서 ‘발원지’는 중국과 몽골의 사막이다. 최근 들어서는 몽골발 황사 발생 횟수가 점점 늘고 있다. 2015년 몽골의 황사 발생 일수는 1960년과 비교하면 거의 3배 증가했다.

황사라고 다 같은 황사가 아니다. 몽골의 황사는 상상을 초월한다. 높이 100m 넘게 치솟는 거대한 모래폭풍이다. 초속 수십m에 달하는 태풍급 모래바람이 닥치면 사람과 가축이 떼죽음을 당한다. 2021년 봄에는 600명이 실종되고 10명이 사망하는 초강력 모래폭풍이 일기도 했다. 이 모래폭풍이 편서풍을 타고 수천㎞를 날아가 약 24시간 만에 한반도에 도착해 황사가 되는 것이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황사는 야외 활동에 지장을 주는 불청객이지만, 몽골 사람에게는 죽음 같은 공포다.

발원지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이야기일까. 모래땅, 즉 사막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사막화의 첫 번째 원인은 온난화다. 1906~2005년 100년간 전 세계 평균기온이 0.74℃ 상승하는 동안 몽골은 1940~2010년 70년간 2.1℃ 상승했다. 이는 곧 그 지역이 건조해진다는 뜻이다. 사막이 늘면서 숲이 사라지고, 황폐화된 땅은 햇빛을 그대로 흡수해 온난화를 더욱 가속화한다.

또 다른 원인은 목축이다. 몽골은 유목민의 나라다. 인구가 330만명인데, 사육 가축 수는 8500만 마리에 달한다. 2018년 기준 목축업 종사자가 전체 인구의 26.79%에 이를 정도로 중요한 산업이다. 가축이 많으니 목초지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몽골 캐시미어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염소 사육 두수가 늘어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염소는 발굽이 날카로워 어린 싹을 짓밟는 데다, 식욕이 왕성해 뿌리·이끼·씨앗까지 모조리 먹어치운다. 염소가 늘어날수록 몽골 땅은 점점 사막화한다.

무분별한 광산 개발도 사막화에 한몫한다. 몽골은 석탄·구리·우라늄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한 ‘세계 10대 자원부국’이다. 취약한 운송 인프라 탓에 광물자원 대다수를 중국에 헐값으로 수출하는 형편이다. 이 과정에서 목초지 파괴, 수자원 고갈 문제가 심각해졌다. 몽골의 광산 개발에는 한국 기업도 참여하고 있다.

2022년 푸른아시아 자료에 따르면 온난화, 과도한 목축업, 광산 개발로 몽골 면적의 76.9%가 사막화되었다. 산림 면적은 전체의 8% 이하로 줄어들었고, 호수와 연못 1166개, 강 887개, 개천 2096개, 온천 60개가 사라졌다. 그 결과 봄철 모래폭풍이 더욱 자주 발생하고 있다.

조드가 닥치면 가축이 떼죽음을 당한다. 위는 2016년 몽골의 조드 피해 모습. ⓒEPA

지난겨울 몽골에 닥친 극심한 ‘조드’

올봄 황사의 잦은 발생은 이미 예견됐다. 국내에 황사가 처음 발생한 3월17일 기상청은 “최근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몽골 동쪽 지역의 눈 덮임이 적어져 언제든지 황사가 발생할 수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발원지의 모래 알갱이 상태가 바람에 의해 충분히 뜰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몽골 현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4월24일 푸른아시아 몽골지부장인 신기호 신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푸른아시아는 사막화 방지를 위해 숲을 조성하는 기후대응 NGO다. 신기호 지부장은 “지난주에 온 세상이 노랬는데, 오늘은 폭설이 내렸다. 올봄 몽골은 폭설과 황사가 번갈아 닥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쌓인 눈이 녹으면서 저지대에는 침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황사·폭설·홍수가 한꺼번에 닥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들불’도 몽골 상황을 악화시킨다. 산지가 거의 없는 몽골에서는 산불이 아니라 들불이 난다. 현재 몽골 동쪽 지역에 발생한 들불로 야생동물이 타죽고, 가뜩이나 부족한 목초지가 황폐해지고 있다. 대기가 점점 건조해지고, 사막화는 더욱 가속화하는 악순환이다. 2010년부터 몽골 현지에서 숲 조성 사업을 벌여온 신기호 지부장은 “모래폭풍 발생 횟수가 점점 느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지난겨울에는 끔찍한 ‘조드’가 몽골을 덮쳤다. 조드는 몽골어로 ‘재앙’이라는 뜻인데, 겨울에 몰아닥치는 극심한 한파와 폭설을 말한다. 조드가 닥치면 기온이 영하 40~50℃로 떨어지면서 가축이 떼죽음을 당한다. 이번에는 몽골 국토의 80%가 조드의 영향권에 들었고, 가축 630만 마리가 폐사된 것으로 파악됐다. 푸른아시아 관계자는 “조드 피해를 수습하느라 몽골 정부의 인허가 절차가 매우 늦어지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 한국 정부는 몽골 피해 대응을 위해 2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조드가 점점 자주,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강도로 닥친다는 것이다. 2010년 최악의 조드 때는 몽골 전체 가축의 10%가 넘는 약 600만 마리가 폐사했다. 2016년과 2017년에는 2년 연속 조드가 발생했다. 조드가 늘어나는 원인 역시 기후변화로 설명된다.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두던 제트기류가 지구온난화로 불안정해지면서 한기가 남하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몽골은 여름철 인기 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한 여행사에 따르면, 올해 2분기에 출발하는 몽골 패키지 여행 예약률은 전년 동기 대비 98% 증가했다. 푸르른 초원과 찬란한 은하수를 보려는 2030 세대의 여행 수요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여름철 아름다운 몽골의 얼굴 뒤에는 기후위기로 신음하는 또 다른 얼굴이 가려져 있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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