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한단 이미지…어휘력 향상 부담

김은진 기자 2024. 5. 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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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유수’ 인터뷰로 뜬 KIA 필승계투조 곽도규
KIA 좌완 곽도규가 지난 3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광주 | 김은진 기자


인터뷰 화제돼 단어 선택 부담 커져
취미가 독서? 절대 아냐
멘털 관리서 한 장 읽는게 루틴
난 미드 ‘워킹 데드’ 마니아


영어 잘하는 비결?
지명 안될까 고3때 ‘제2의 인생’ 준비…
사실 부모님께도 말 못한 비밀


KIA 호명 순간? ‘살았다’ 생각만
결국 워홀 아닌 스캠으로 호주행
웃기기도 신기하기도


좌완 곽도규(20·KIA)는 2004년생이다. 공주고를 졸업하고 지난해 KIA에 입단했다. 2년차인 올해 필승계투조로 뛰고 있다.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이범호 감독이 “좌완이지만 좌·우 타자 관계 없이 1이닝 이상 책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투수다. 실제 곽도규는 형들과 함께 KIA의 허리를 전천후로 막아내고 있다. 19경기에 등판해 15이닝을 던지고 1승 5홀드 평균자책 2.40을 기록 중이다.

곽도규가 좀 더 유명해진 것은 인터뷰 때문이다. 인터뷰를 어디서 많이 해본 것도 아닌데, 빼어난 언변으로 속이 꽉 찬 소리만 골라 했던 방송 인터뷰 몇 번에 팬들이 풍덩 빠져들었다. 갑자기 나타나 야구를 잘 하더니 말도 잘 하는 곽도규의 ‘실체’를 지난 주말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만나 파헤쳤다.

영어 잘하는 스무 살 투수, 고3 때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공부를 많이 한다는데 사실이냐”고 먼저 물었다. 곽도규는 “마운드 위에서 그 어떤 것도 부담스럽지 않은데 (갑자기 생긴) 그 이미지가 부담스럽다. 요즘엔 뭔가 공부를 잘 해야 할 것 같고 매번 인터뷰마다 새로운 어휘력을 뽐내야 할 것 같다”며 “책은 하루에 딱 한 페이지씩만 읽는다. 멘털에 관한 책인데, 경기 들어가기 전에 딱 한 페이지씩만 읽고 들어가면 침착해지는 것 같아 그 것을 루틴으로 만들었다. 공부는 영어 공부를 작년에 꾸준히 하다가 올해는 귀찮아서 안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곽도규가 영어를 잘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외국인 선수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호주 전지훈련에서도 능숙하게 현지 생활을 하는 모습이 KIA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의 목격담으로 전해진다. 외국에서 살았던 것도 아닌데, ‘작년에’ 1년 공부하고 대화를 자연스럽게 한다고? 어떻게 된 걸까.

곽도규는 “고3 때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사실 부모님도 모르신다. 보시면 놀라실 수도 있어 인터뷰 같은 데서도 영원히 말하지 않으려고 했었다”며 비밀을 털어놓았다.

공주고 3학년 때 슬럼프를 겪었던 곽도규는 갑자기 미래에 대한 확신이 생기질 않았다.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운동 외에 다른 준비를 열심히 했다. 그것이 영어 공부였다.

곽도규는 “내가 사랑하는 야구로 꼭 성공하고 싶었는데 3학년 올라갈 때 기량에도 마음에도 슬럼프가 왔다. 이러다 프로에 못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명을 못 받으면 부모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할 줄 아는 게 달리 없으니 방법을 고민하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다. 비자 준비부터 호주에 어떻게 가서 어떤 일부터 시작할지 방대한 계획을 세워놨었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었다”며 “그동안은 외국인 선수들한테 야구 배우고 싶어 영어 공부했다고 말했는데 그것보다는, 사실은 인생이 잘 안 풀리면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하니까 영어부터 공부했다”고 말했다.

3학년 내내 영어 학습 애플리케이션으로 매일 열심히 공부했다. 호주에 가서 돈을 벌고 생존하기 위한 공부였으니 문법, 독해가 아닌 회화를 맹렬히 팠다. 영어 공부로 제2의 길을 준비하면서도 야구를 놓지는 않았다. 합숙 중에 휴가를 받아도 집에는 운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혼자 숙소에 남아 운동을 하고 남는 시간에 영어 공부를 했다. 엄마를 보고 나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부상은 없었다. 별 일도 없었다. 팔 각도를 조정하면서 슬럼프에서 빠져나왔고 이후 기량이 다시 상승하면서 곽도규는 드래프트에서 KIA에 5라운드(전체 42순위)로 지명됐다. 지명됐던 순간에 대해 곽도규는 “행복하거나 좋다기보다는 다행이다,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2월, KIA는 호주 캔버라로 스프링캠프를 떠났다. 곽도규는 “최악의 상황에 갈 거라고 생각했던 호주를 유망주로 평가받으면서 스프링캠프로 가게 되니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3 때 혼자 그냥 예민했었다는 생각이 들어 웃기기도 하다”고 했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고3 곽도규는 지금 KIA의 1군 투수다.

이의리가 롤모델인 곽도규의 야구 일지

곽도규는 야구 일지를 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6년간 매일 꼬박꼬박 그날의 훈련과 경기를 하면서 느낀 점을 적어놓았다. 지금도 야구 일지는 쓰고 있다. 학교 때와는 달리, 지금은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대충 쓴다.

곽도규는 “야구 일지를 다시 보는 의미는 크게 없는 것 같다. 그냥 안 좋은 감정은 최대한 안 쓰고, 좀 왜곡되더라도 오늘의 피칭은 좋았다고 쓴다. 작년에 같이 뛰었던 숀 앤더슨이 ‘그냥 입 밖으로 내뱉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다 어색할 정도로 그냥 막 쓴다. 내 속마음과 감정을 낙서로 털어놓는 데에 의미를 둔다. 요즘은 경기 때 상황에 억압되지 않고 어떤 식으로 집중했다는 내용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피곤해도 매일 그걸로 하루를 정리하는 습관을 익히다 보니 다음 등판을 위해 좋은 준비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곽도규의 롤모델은 멀리 있지 않다. 2년 차이 팀 선배 이의리(22·KIA)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한 달간 미국 시애틀의 드라이브라인 센터에 구단 지원으로 함께 파견 훈련을 다녀오면서 또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곽도규는 “매일 경기가 있다 보니 우천취소될 수도 있고 등판 간격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그런 상황에 맞게 조절해가며 자신의 루틴을 지키는 게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작년 의리 형을 보면 어떤 상황이 와도 자기가 해야 할 운동은 정해져 있었고 꼭 지켜서 했다. 저걸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 시애틀에 같이 가게 돼서 다 따라다녔다”며 “뭔가를 의리 형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의리 형은 태블릿PC로 스프레드시트에 1년치 스케줄을 미리 만들어 놓고 매일 정리를 한다. 이제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냥 의리 형처럼만 하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기운이 된다”고 말했다.

우승할 때까지 계속 1군에서 던지고파

지난해 고졸 신인 곽도규는 스트레스투성이었다. 막 입단해 모든 상황에 스스로 눈치를 보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올해 곽도규는 자신에게 후해진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느끼고 있다.

곽도규는 “사람이 한 단계씩 성장하지 한 번에 확 성장할 수가 없는데, 작년에는 10개 중 9개를 잘 해도 1개 아쉬움에 하루 종일 박혀 있었다. 그 정도의 레벨이 아닌데도 그랬다. 나를 믿어주자고 생각해도 잘 안됐는데, 정재훈 (투수) 코치님이 얘기해주셨다.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두 가지 있다고, 야구에 더 목숨 걸고 뼈 빠지게 해야 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너무 목숨을 걸어서 조금은 편하게 해도 되는 선수가 있다고. ‘너는 그냥 인생에서 야구에 딱 한 발만 담가두라고 하셨다’. 쉴 때는 좀 야구 생각에서 벗어나라고 하셨다. 그 변화가 올해 가장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듣다 보니 청산유수지만, 곽도규는 불과 2년차다. 사실상 이제 1군에서 처음 뛰고 있는 곽도규는 “안 다치고 계속 1군에 있는 게 목표인데, 그러려면 지금처럼 계속 필승조에 있어야 1군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좌·우 관계 없이 다 잡을 수 있는 투수라는 이미지를 좀 더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우승을 향해 달리는 올해 KIA에서 막내 곽도규의 목표점도 같다. 곽도규는 “집중하면 소리를 아예 못 듣는 편이다. 그런데도 요즘에는 마운드에 올라갈 때 팬들이 좋아해주시는 게 느껴져서 야구장 나오는 게 보람차다. 이 경기에 내가 함께하고 있는 것 같고, 우승할 때까지 계속 여기(1군에) 같이 있고 싶다”고 말했다.

2004년생 곽도규는 아이돌을 잘 모른다. 몰라서 안 좋아한다. 책을 많이 본다고 알려졌지만 취미가 독서는 절대 아니라고 한다. 스릴러나 액션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한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를 좋아하는 곽도규는 “시리즈 끝까지 다 본 사람에게 정말 호감을 갖는다”고 말했다. 워킹데드는 무려 11시즌까지 나와 있다.

광주|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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