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21개월 만의 대통령 기자회견 성공하려면

윤태곤 정치칼럼니스트 2024. 5. 8.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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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명품 백·의대 증원…
정답 어렵고 좋은 반응도 어려워
단 하면 안 될 말들은 있다
“국민들께서 잘 모르셔서”
“그래도 국정 방향은 옳았다”…
이 말들은 제발 대통령 아니라
국민들 입에서 나오게 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임 민정수석에 임명한 김주현 전 법무차관을 소개하기 위해 브리핑실에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총선 참패로부터 십여 일 후인 지난달 22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은 정진석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 인사를 직접 발표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브리핑장으로 나와 정 비서실장을 소개하고 5분여 동안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대답하고 퇴장했다. 특별하거나 민감한 공방이 진행된 것도 아니었다. 그 직후 여러 언론들은 일제히 속보로 “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것은 2022년 11월 18일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 이후 1년 5개월 만에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8월 17일 취임 100일 이후 기자회견을 열지 않았다. 2023년 신년에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 올해 2월에 KBS와 단독 대담 녹화 방송이 있었지만 ‘공식’ ‘공개’ 석상에서 기자와 질의응답을 진행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박한 계산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통령이 기자들한테 질문받았다는 것이 ‘정진석 신임 비서실장 발표’보다 오히려 더 큰 뉴스가 됐다. 이런 보도가 쏟아진 탓인지 모르겠지만 윤 대통령은 그날 오후에도 직접 브리핑장으로 나와 홍철호 신임 정무수석을 다시 직접 소개하고 질문을 두 개 더 받았다.

그 500여 일 동안 공개적 문답이 없었을 뿐이지 국민들이 윤 대통령의 말을 못 들었던 것은 아니다. 당장 총선 직전인 4월 1일에도 무려 51분간 의료개혁대국민담화문 발표가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부산 엑스포 유치 불발 담화도 있었고 각종 행사 연설, 국무회의 모두 발언 등을 통해 대통령의 생각은 국민들에게 충분히 전달됐다. 굳이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은 내용도 적지 않았다. 이른바 윤석열-한동훈 갈등 와중에서 특히 그랬다. 주로 ‘~라고 전해졌다’는 형식으로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바보같이 뒤통수를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사람을 너무 의심하지 않고 썼던 나의 잘못인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같은 대통령의 발언들이 날것 그대로 속속 보도됐다.

미주알고주알 끝에 고성과 감정싸움으로 중단된 도어스테핑도, 500여 일간의 공식 기자회견 중단도, 장황한 발언의 일방적 전달도, 개인적 감정이 여과 없이 담긴 발언이 특정 기자를 통해 지속적으로 전달된 것도 국민을 향한 대통령의 정상적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오랫동안 바닥을 기는 대통령 지지율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비정상적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원인의 하나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정상화돼야 한다. 내일(9일) 진행되는 기자회견은 달라져야 한다.

섭섭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번 기자회견은 높은 점수를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 기자회견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외교안보, 민생 문제, 첨예한 사회갈등에 대해 대통령이라고 완벽한 정답과 비책(祕策)을 갖고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대통령의 발언을 이해가 아니라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정치적 반대파들이 늘 국민 절반 가까이 되는 법이다. 언론은 이미 드러나 있는 정부의 약한 고리뿐 아니라 현장에서 노출되는 대통령의 빈틈을 파고들 준비를 한 채 기자회견에 임하기 마련이다.

1년 9개월여 만에 기자회견에 나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처지는 더 어렵다. 출제가 확실한 예상 문제만 해도 ‘채 상병 관련 의혹’에 대한 대통령실의 개입 여부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 명품백 수수 등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의과대학 증원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법, 감감무소식인 특별감찰관 설치 문제, 후임 총리 인선과 개각 문제 등 줄줄이다.

정답을 준비하기도 어렵고 어떻게 대답하더라도 국민 다수에게서 좋은 반응이 나오기 힘든 문제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안 해야 한다. “국민들께서 잘 모르셔서”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전 정부에는 더 문제가 많았지만” 같은 말만은 피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들 화를 더 돋우지 않을 수 있다.

대신 “미안하다” “잘못했다” “변하겠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그래도 이제 싸우려 하진 않네” “이제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말하는구나”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방향은 옳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라도 꾹 참아야 한다. 대통령 입에서가 아니라 국민들 입에서 그 말이 나온다면 21개월 만의 기자회견은 대성공이다.

윤태곤 정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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