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72. 원주 동아서관

권혜민 2024. 5. 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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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이사이 녹여낸 따뜻한 마음 우리동네 서점 할아버지
50년 넘는 역사 자랑 원주 대표 서점
김제갑·아들 김기홍 2대 째 운영 중
헌책방 운영 경험 기반 1965년 개장
1968년 이름 변경 일산동 현 자리 이전
가족과 더불어 이웃 나눔 활동 활발
1994~2000년 학생 48명 수업료 부담
2001년 ‘동아서관 장학회’ 설립
29년간 1130명·6억1900만원 지원
일평생 지역사회 환원 앞장 신념 눈길
3월 공로 인정 국민추천포상 ‘대통령상’
▲ 원주 동아서관 입구

“이번 주 토요일 12시에 동아서관 앞에서 만나자~”

원주 동아서관은 원주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70·80년 세대에게는 익숙한 장소다. 자유상가 시계탑과 더불어 방과 후 ‘만남의 장소’로 꽤나 이름을 떨쳤다.

동아서관은 1대 대표인 김제갑(83) 동아서관 장학회 이사장에 이어 아들 김기홍 강원특별자치도 도의원까지 2대째 운영 중인 원주 대표 서점이다.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에는 원주에서 학창시설을 보낸 많은 이들의 추억이 담겼다.

동아서관은 1965년 중앙동에서 ‘선문사’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3년 후인 1968년 길 건너편 일산동 현재 자리로 이전하며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김제갑 이사장이 원주에 서점을 연 것은 젊은 20대 시절 서울 낙원동에서 6촌 매형의 고서방(헌책방)을 맡아 운영한 경험이 큰 바탕이 됐다.


김 이사장의 고향은 경북 영주지만, 원주는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이사장이 오랜 기간 서점을 운영하며 꾸준히 해온 것이 있다. 바로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 활동이다.

부부는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부인 정옥자(80)씨도 남편을 적극 지지하며 함께했다.

시작은 쌀이었다.

원주 시내 17개 동사무소 동장들의 추천을 받아 경제사정이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의 쌀’을 후원했다. 횡성에 있는 정미소에서 쌀을 구입해 트럭 한대에 가득 실어 전달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양로원에 생강차와 떡을 만들어 갖다 주고, 고아원에 책, 참고서 등을 후원했다. 아이들이 바닷가로 놀러갈 수 있는 경비도 지원했다.

신문 배달로 생활비를 벌던 소년소녀가장 방한복 후원 등 크고 작은 나눔들을 지속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 1994년 사재를 출연, 학생들의 수업료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2000년까지 7년간 지역 고등학생 48명의 수업료 전액을 지원해줬다.

▲ 김제갑(사진 앞줄 가운데) 동아서관 장학회 이사장과 부인 정옥자(사진 왼쪽)씨, 동아서관과 장학회 운영을 돕고 있는 가족 정연철, 정연조씨.

이 같은 선행을 지속하다, 원주고교 교장을 지낸 지인의 제안으로 지난 2001년 재단법인 동아서관장학회를 설립,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취지로 학생들의 수업료를 더욱 확대 지원했다.

장학회는 김 이사장의 사재로 운영됐다. 장학회 설립 해인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지역 고교생 160명의 연 수업료 전액을 지원했다. 2012년에는 장학생 선발 인원을 증원, 총 29명에게 50만원씩 지급하는 등 매년 수혜인원을 늘렸다.

지난해 3월 원주교육지원청에서 열린 제29회 장학금 수여식은 수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날 10개 고교, 540명의 고교생들에게 각 50만원씩 총 2억 7000만원의 장학금이 돌아갔다.

김 이사장은 “꿈과 희망을 갖고 학업에 더욱 매진해 후회 없는 멋진 학창시절을 보내고, 지역과 국가의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며 학생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다.

지난해 활동을 끝으로 장학회는 청산됐다. 고령인 김 이사장의 건강상 이유로 더 이상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장학회는 2001년 설립 후 29년간 무려 1130명의 학생들에게 총 6억 1900만원을 지원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김 이사장 부부는 “워낙 학생들이 많아 일일이 기억하기 어렵다”면서도 수년 전 원주 지역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의사를 떠올렸다. 김 이사장의 건강 상태가 수혈을 받아야 할 정도로 위급해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을 때였다. 당시 응급실 근무를 하던 의사가 낯이 익는다며 김 이사장의 이름을 물어왔다. 김 이사장이 이름을 말해주자 자신을 동아서관 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았던 학생이었다고 소개했다고 한다.

부인 정옥자씨는 남편을 “덤덤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김 이사장은 국제라이온스협회 강원지구 원주클럽에서 활동하던 60대 시절, 강원지구 총재로 추대됐다. 지역의 한 신용협동조합(신협)이 심각한 경영위기에 있던 시기, 역시 지인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사장도 맡았다.

약 9년간 무보수로 일하며 조합의 경영 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내 일처럼 발 벗고 뛰었다. 김 이사장은 당시 지인들의 소개 소개로 사람들을 만나 조합 가입을 간곡하게 부탁했던 이야기도 풀어놨다. 교회에 자신 소유의 땅도 기부(헌납)했다.

“벌었으니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일평생 봉사와 나눔에 앞장섰지만 김 이사장은 자신의 선행을 주변에 자랑하지도, 드러내지도 않는다. 여전히 부부의 선행을 모르는 지인들도 많다. 그런 김 이사장은 그저 “운이 따랐다”고 덤덤히 말한다.

▲ 김제갑(사진 왼쪽 세번째) 원주 동아서관 장학회 이사장이 지난 3월 대통령 표창 수상 후 가족들과 찍은 사진. 본지 DB.

이 같은 헌신으로 김 대표는 2024년 3월 제13기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로 선정,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국민이 직접 뽑는 포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특별했다. 그에게 붙은 이름은 ‘29년간 어려운 학생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 준 서점 할아버지’다.

이 같은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김기홍 도의원 역시 지난 2012년 도의원 당선 후 2018년까지 의정비를 지역에 환원하고, 아버지가 설립한 장학회에 장학금을 기탁하는 등 대를 이은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동아서관은 지난 3월 1층에서 2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점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김 이사장의 땀과 손때, 원주시민의 추억이 담긴 이곳이 지나온 시간 이상 오래도록 동네 터줏대감으로 자리해주길 기대한다. 권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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