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강쇠·옹녀가 빙의한 줄...애욕의 판다커플 [수요동물원]

정지섭 기자 2024. 5. 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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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금슬 과시하며 다섯차례 출산했던 바이윈-가오가오
그 손자뻘 되는 수컷 ‘윈찬’ 이르면 올 여름 재반입
2012년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머물던 바이윈과 가오가오가 사람이 옆에 있는데도 짝짓기 모드로 돌입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DoxieMom19 Youtube

우리에겐 프로야구 파드리스팀의 김하성 선수가 뛰는 곳으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이 태평양 연안의 아름다운 도시에서 얼마 전 들려온 소식에 지역사회가 떠들썩했어요. 미국과 중국 관계가 까칠해지면서 반세기만에 명맥이 끊길뻔한 판다 외교가 샌디에이고에서 명맥을 잇게 됐다는 소식이죠. 미국과 중국이 외교 관계를 맺기 7년 전인 1972년 중국이 판다 한 쌍을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에 쾌척하며 시작된 판다외교는 작년 11월 임대차계약 종료로 워싱턴의 판다들이 중국으로 보내지면서 종언을 고하는가 싶었더니 계속 진행이 결정된 거죠. 2019년 4월 판다들을 중국으로 보내며 텅빈 채 남아있던 샌디에이고 동물원 판다우리는 곧 주인을 맞을 참입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머물던 시절의 판다 커플 바이윈과 가오가오./San Diego Zoo

샌디에이고는 단순히 판다가 온다는 사실에 들뜬것만은 아닙니다. 동물원이 지난달 보도자료를 통해 새로 입주할 판다의 혈통을 밝혔거든요. 20여 년간 샌디에이고 판다우리를 사랑과 정열의 에너지로 뜨겁게 녹였던 전설의 커플의 후예가 당도하기로 했답니다. 동물원 발표에 따르면 이르면 올 여름쯤 샌디에이고에 들어올 판다의 신상은 다섯살 수컷 윈찬(雲川)과 네살 암컷 신바오(新寶)입니다. 근친혼을 막고 건강한 유전자를 얻기 위해 중국 측이 고르고 고른 한쌍일테지요. 그런데 이 커플 중 윈찬은 샌디에이고와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간택된 듯해요. 녀석의 어미인 진진(珍珍)이 2007년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났거든요. 진진의 어미와 아비, 그러니까 윈찬의 할미와 할아비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암컷 바이윈(白雲)과 수컷 가오가오(高高)입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머무는 동안 여섯마리의 새끼를 낳은 판다 바이윈./San Diego Zoo

미·중 판다외교로 동물원에 판다우리가 만들어진 도시는 모두 네 곳입니다. 수도 워싱턴DC와 올림픽이 열렸던 남부 대도시 애틀란타, 엘비스 프리슬리의 진한 흔적이 남아있는 동남부 음악도시 멤피스, 그리고 샌디에이고입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동쪽에 세 곳이 몰려있고, 서쪽 끝 샌디에이고 한 곳이 있는 형국이죠. 메이저리그 스타일로 표현하자면 동부지구에 세 팀, 서부지구에 한 팀이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판다의 존재 이유를 ‘종족 번식’에 국한한다면 서부지구의 한 팀의 성적이 두드러졌답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15년간 짝을 이루며 무려 다섯마리의 새끼를 생산한 바이윈과 가오가오의 기록은 미국을 떠나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판다는 여느 짐승에 비해 흘레붙는데 관심이 통 없는데다 임신이 가능한 발정주기도 아주 짧거든요. 그래서 이들의 폭풍금슬은 아직까지도 불가사의 전설로 전해져요.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처음 판다가 도착하던 1996년으로 시계바퀴를 휘리릭 돌려봅니다.

샌디에이도 동물원에서 총 여섯번의 출산을 한 판다 바이윈./San Diego Zoo

중국의 대미판다외교가 시작된지 24년을 맞이하던 이 해.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동물원으로 유명한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판다 한쌍이 들어옵니다. 쓰촨성 판다 보호센터에서 태어난 여덟살 암컷 바이윈, 그리고 한 살 연하로 자연에서 생포된 시시(石石)였어요. 판다 기질은 이름에 걸맞는 법일까요? 시시는 도통 암컷 앞에서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돌덩이였습니다. 어떻게든 흘레를 붙여보려고 해도 실패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샌디에이고에 신방을 튼지 3년차이던 1999년 둘 사이에 암컷 후아메이(華美)가 태어났어요. 암수의 자연번식이 아닌 인공수정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얻어냈죠. 인간이 개입한거죠. 후아메이는 미국에서 태어난 판다 새끼 중에 성체로 성장해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첫번째 사례가 됐죠. 이만해도 대단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멸종위기에 처한 종족의 대를 이어가려면 한 마리로만 만족하기는 아쉬웠죠. 암컷앞에선 돌덩이가 되는 시시는 게다가 실제 나이도 알려진 것보다 노쇠하다는 판단이 나와 2세 번식이 힘들 것이라는 나왔고요. 판다를 돌보는 동물원 관계자는 결단을 내렸어요.

샌디에이고에서 머물면서 다섯마리 새끼의 아비가 된 판다 가오가오./San Diego Zoo

이들을 강제 이혼시킨거죠. 시시가 퇴출돼 공석이 된 서방 자리에 앉힐 새 수컷을 스카우트해 2003년 샌디에이고로 데려옵니다. 녀석이 당시 열 세살이던 수컷 가오가오였어요. 부푼 기대를 갖고 데려왔지만, 동물원 측의 걱정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90년 생으로 바이윈보다 한 살 연상이지만, 오히려 체구는 수컷인데 바이윈보다 더 왜소했죠. 게다가 태어난 뒤 지금까지 번식철에 암컷과 짝을 지어본 일이 없는 오리지날 순수 동정웅(童貞熊)이라는 사실도 적잖은 불안요소였고요. 그저 믿을 건 ‘높이, 더 높이’라는 뜻을 가진 녀석의 이름이었어요. 암컷 앞에서 돌덩이가 되곤 했던 직전 서방과 달리 이번에는 수컷 노릇을 제대로 하며 번식 가능성을 드높일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을 따름이었죠. 이렇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 상황에서 두 암수가 처음으로 상대방을 마주한 날. 판다우리에서는 그야말로 치지직 불꽃이 튀었답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다섯마리 새끼의 아비가 된 판다 가오가오./San Diego Zoo

공교롭게도 가오가오가 우리에 들어섬과 동시에 바이윈이 발정 증상을 보였어요. 생전 처음으로 풍겨오는 암컷의 체취에 흥분한 가오가오는 별안간 물구나무 포지션을 취합니다. 발정기 수컷이 자신의 체취를 강하게 풍기기 위해 하는 특유의 자세에요. 한번도 흘레를 붙지 않았음에도, 수컷의 본능이 폭발한거죠. 둘은 서로를 강렬하게 탐색하더니 코를 부볐습니다. 그 코를 시작으로 서로의 신체접촉면은 급속히 확대됩니다. 두 암수는 미 대륙 서태평양 연안도시에 또 하나의 만리장성을 쌓습니다. 그르렁거리고 끄으으 울부짖고 캥캥 약을 올리고 우어어어 포효합니다.

1996년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왔던 판다 시시. 수컷으로서의 번식 능력과 의욕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판다 가오가오로 교체된 뒤 광저우동물원으로 보내졌다.

지금껏 판다 우리에서 전혀 들어본적이 없는 교성과 괴성과 곡성이 어우러졌다고 동물원 관계자들은 훗날 회상했어요. 둘의 부둥킴은 애욕의 화신으로 이름난 변강쇠와 옹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트리스탄과 이졸데... 어느 인간 캐릭터를 갖다붙여도 부족했습니다. 이들이 판다의 몸뚱아리에 빙의된 듯 했죠. 그렇게 첫만남부터 불꽃이 튀었던 이 암수 커플 사이에서 그 해 암컷 메이셩(美星)이 태어난 것을 시작으로 2년 뒤인 2005년 암컷 수린(蘇琳), 2007년 암컷 젠젠, 2009년 수컷 윈지(雲子), 2012년 수컷 샤오리우(小禮物)까지 총 다섯마리 새끼를 낳았습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이 반입을 발표한 다섯살 수컷 판다 윈촨. 이곳에서 살면서 번식을 했던 판다의 후손이다./San Diego Zoo

바이윈과 가오가오는 중장년에 접어들면서 번식일선에서 물러나는 순간까지도 여느 판다들과는 차원이 다른 애정모드를 과시합니다. 특히 막내인 샤오리우가 태어나던 2012년에는 바로 지척에 사람이 있는데도 괘념치 않고 한몸이 돼 뒹구는 모습이 유튜브에 생생하게 포착되기까지 했어요. 이 폭풍금슬의 혈통을 이어받은 3세가 샌디에이고로 재입성했으니 새끼를 숨풍숨풍 생산하던 그 화려했던 시절의 귀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가오가오에게 서방 자리를 넘겨주고 강제 이혼당한 시시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 해 가오가오와 반강제로 바통터치를 한 뒤 광저우 동물원에서 여생을 지내다 2008년 눈을 감았습니다. 퇴출 전 바이윈과의 사이에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암컷 후아메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지금까지 총 10마리의 새끼를 낳았답니다. 수컷으로선 굴욕적인 삶을 살았을지언정 자신의 씨가 곳곳에 퍼져 번성하는 모습을 보면 시시의 삶이 그리 헛되지만은 않았을 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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