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회장님’은 김범석이 아닌 ‘주식회사 쿠팡’?

이도윤 2024. 5. 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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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대기업들엔 '회장님'이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에선 이런 사람을 '동일인'으로 부릅니다.
대표적인 동일인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입니다. 그 기업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들이죠.

쿠팡의 동일인은 누굴까요. 김범석 의장이 아닌, '주식회사 쿠팡'입니다. 동일인이 뭔지, 왜 쿠팡의 동일인은 사람이 아닌 건지 짚어보겠습니다.

■ '동일인=회장님?'

'동일인', 한 번에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에도 동일인에 대한 명확한 풀이가 없습니다.

동일인은 기업집단 규정에 처음 등장합니다. 공정거래법은 기업집단을 '동일인이 사실상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회사'로 정의합니다.

같은 사람이 지배하는 회사면 같은 집단으로 본다, 즉 '회장님'이 같으면 같은 기업집단이란 겁니다. 삼성전자와 삼성의 이름을 가진 회사들이 겉으론 다른 회사처럼 보이지만 회장님이 같으면 같은 기업집단 소속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가 그래서 나옵니다.

공정위는 동일인을 기준으로 계열사 범위를 정하고, 이 계열사 사이에 주요 거래가 생기면 공시하도록 합니다. 또 기업 규모가 커지면 계열사들이 서로 출자를 하거나, 채무보증을 서는 것도 금지됩니다.

동일인의 배우자나 4촌 이내의 혈족, 3촌 이내의 인척은 '특수관계인'으로 지정돼 별도의 규제를 받습니다. 특수관계인들이 일정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들에는 부당하게 이익을 몰아줘서는 안 됩니다. 이른바 '사익 편취' 규제입니다.

■ 쿠팡의 '동일인'은 주식회사 쿠팡

쿠팡은 2021년 자산 5조 원을 넘어가면서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습니다. 쿠팡의 동일인은 누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는데요. 공정위의 결론은 '김범석 의장'이 아닌, '주식회사 쿠팡'이었습니다.

미국 국적인 김 의장에 한국식 규제들을 가하기 시작하면, 통상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등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후 여기저기서 문제 제기가 이어졌습니다. 김 의장이 사익편취 규제를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그중 하나입니다.

동일인과 그 친인척에 대한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는 동일인이 사람일 때만 적용되서 입니다. 법인에는 배우자나 친인척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 "법인이 동일인 되려면 소유주의 계열사 지분 엄격 제한"

논란이 이어지자, 공정위가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이 기준을 담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오늘(7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는데요.

사실상 기업을 지배하는 '소유주'가 있더라도, 소유주 대신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려면 여러 요건을 충족하도록 했습니다.

먼저, 소유주와 법인 중 누구를 동일인으로 정해도 그 아래의 기업집단이 달라지면 안됩니다. 쿠팡의 동일인을 김범석 의장으로 정할 때와 주식회사 쿠팡으로 정할 때 계열사 수가 같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소유주는 기업집단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회사를 제외한 계열사엔 지분을 한 주도 가질 수 없고 거래 관계에 있어서도 안 됩니다.

소유주의 친인척도 경영활동에서 배제되어야 합니다. 계열사 지분을 가져선 안 되고, 임원으로 올라설 수 없고, 계열사와 채무보증 등 금융 거래가 있어선 안 됩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유주와 친인척이 국내 계열사에 이해관계가 없다면, 지배구조가 이미 투명하기 때문에 별도의 사익편취 규제가 필요 없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쿠팡이 '쏘아 올린 공'인데...쿠팡은 빠져나가나?

'동일인' 논쟁을 촉발한 건 쿠팡인데, 정작 쿠팡은 오늘 발표대로라면 예외 요건들을 다 충족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범석 의장은 국내 계열사에 지분을 갖고 있지 않고, 김 의장의 동생 부부가 쿠팡 계열사에서 보수를 받고 있지만 공정거래법상 임원 직급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제는 '쿠팡이 쏘아 올린 공'이 점점 커질 가능성입니다. 예외 규정은, 반대로 말하면 규정에만 부합하면 언제든 예외로 빠질 수 있단 의미입니다. 쿠팡 외에 다른 기업의 총수들이 동일인 지정을 피하려고 꼼수를 부릴 수 있는 겁니다. 실제로 예외 규정을 모두 충족하는 국내 기업들이 없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공정위는 '규정 준수'가 꼼수가 되긴 어렵단 입장입니다. 소유주나 친인척이 계열사 지분을 가져선 안 되는 등 규정이 까다로워서, 이 규정에 맞춘다는 건 지배구조가 투명하다고 봐야 한단 겁니다.

공정위는 조만간 2024년 대기업집단을 지정할 예정입니다. 쿠팡이 촉발한 동일인 기준이 재벌들의 '우회로'가 될지 '지배구조 투명화'를 유도하는 장치가 될지는 일단 좀 지켜봐야할 겁니다. 다만 일차적인 가늠자는 올해 어떤 기업의 총수가 어떻게 동일인을 피하는지, 어떤 법인이 동일인이 되는지 여부와 함께, 또 공정위는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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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윤 기자 (dobb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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