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100세시대, 청소년기 금융교육 필수 … 올바른 투자 가치관 심어줘야"

신하연 2024. 5. 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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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양정중학교 교사
한국에선 돈 이야기 금기시… 선진국보다 금융교육 태부족
교사 6년차에 대학원 진학… 금융문맹 줄이고자 고군분투
양정중학교 김나영 교사.

세종대왕 덕분에 한국에서는 글자를 읽고 쓸 줄 모르는 문맹(文盲)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돈의 관리방식을 모르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금융문맹'은 어떨까. 금융문맹이 많은 사회는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낮출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성장 기반이 약화될 가능성도 높다.

한국은 옛부터 부모와 자식 간의 '돈' 얘기를 금기시하는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정규 교육과정에서의 경제와 금융교육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서울 양정중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김나영(45·사진) 교사. 그는 이런 환경에서 '금융문맹'을 줄이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학교나 정부의 지원은 없다. 업무 시간외 개인 시간을 쪼개 노력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김 교사는 "늘 아이들을 통해 저 스스로도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1년 시작한 교사 생활은 그렇게 23년이 흘렀다.

그는 "100세 시대에 제대로 살아가려면 청소년기 금융교육이 필수적이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투자에 대한 가치관을 키워줘야겠단 생각을 했다"고 강조했다. 어릴 때 금융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다시 부모가 됐을 때 제대로 된 금융지식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선순환'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김 교사는 이젠 유명 경제교육 전문가 반열에 올라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KDEI), 서울시교육청 등에서 경제·금융 교육 자료 개발 및 교재 집필에 참여했다. 기재부 '청소년 경제교실', 보험연수원 '장보고경제스쿨', 서울 중구청 '슬금슬금 경제스쿨' 등을 통해 학교 밖 경제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 받아 지난 2019년 대한민국경제교육 대상인 '경제교육단체협의회 회장상'을 받기도 했다.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학창시절 선생님의 영향 때문이다. 김 교사는 "고등학교 3학년때 경제 과목을 처음 배웠는데 선생님이 너무 좋으셨고 경제 이론이 재밌었다"며 "그동안 문맥없이 그냥 문제로만 접해왔던 수학 이론이 실제로 경제에서 굉장히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중·고등학생들이 수학 과목을 공식만 외우고 푸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의사결정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김 교사는 "학창시절 교육을 받을 때는 주입식 강의가 대부분이었는데 중학교에 와보니 학생들이 에너지도 넘치고, 가만히 앉아서 강의만 들으면 졸리기만 하니 관심사를 가지고 뭔가 하게 해야겠다고 느꼈다"며 "교수방법을 더 배우고 싶어 교사 시작하고 6년차에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과교육을 전공한 모교인 이화여대에서 경제교육 석사를 졸업한 후 행동경제학 박사까지 수료했다.

김 교사가 2009년부터 현재까지 운영 중인 경제 동아리 '실험경제반'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것도 대학원 시절이었다. 그는 "어떤 경제원리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된다는 것을 시뮬레이션 하는 실험경제를 교실에 적용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교실에서 역할을 주고 데이터들을 시뮬레이션 하면서 이론을 찾아가는, 예를 들어 교복이 왜 비싼지를 확인하기 위해 독과점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인 담합, 담합이 붕괴되는 게임이론 등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최근 금리인상 시기에는 기준금리가 연 0.25%인 상황과 5%인 상황을 가정해 예금금리나 대출금리를 제시해주고, 은행과 기업, 가계 측면에서 유동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아이들이 직접 결정해보도록 했다.

김 교사는 "학생에 따라 대출금리를 고려해 주식투자에 '빚투'를 하기도 하고, 배당은 없는지 묻는 학생도 있었다"며 "같은 내용이라도 학기마다 학생들에 의해 보완이 되거나 매번 달라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각자 기업 역할을 맡고, 모의 투자계획서를 발표해 다른 기업(학생)으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내는 강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정규수업에서 시간이 부족한 부분은 실험경제 동아리를 통해 심화 학습을 이어가는 식이다.

김 교사는 "실험경제반에서 함께 공부한 학생들과 함께 본인이 사용분야별로 한도를 정해놓고 소비를 조절하는 카드에 대한 특허를 내보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체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졸업 후 창업을 한 제자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지난 2월에는 '경제수학, 위기의 편의점을 살려라'라는 청소년용 경제도서를 펴내기도 했다. 김 교사는 "그간 실험경제반을 운영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들에 픽션을 가미해 경제소설로 담아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청소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최강의 실험경제반 아이들', '세계시민이 된 실험경제반 아이들' 역시 이같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들이다.

김 교사는 15년간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코로나19 시기를 기점으로 금융교육에 대한 인식 변화를 특히 체감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코로나 직후 유동성이 급증하면서 미디어를 통해 투자에 대해 접할 일이 많아졌고, 금융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뿐 아니라 학생들도 직접 투자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정규과정에서 나오는 딱딱한 이론보다 실생활에서 적용 가능한 금융 교육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중학교 3학년 내내 사회과목 중 금융 부분은 전체 4차시 분량에 불과하다. 고등학교 통합 사회 과목에서도 그나마 한 두시간 밖에 되지 않는 금융 파트가 중학교 과정과 겹친다는 게 김 교사의 설명이다.

지난 2010년 금감원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초·중·고 금융교육 표준안'을 제정하고 2020년에 개정해 학교 금융교육에서 다뤄야 하는 내용을 제안했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이에 맞춘 활동지와 표준교재를 만드는 데도 김 교사가 참여했다. 하지만 표준안이 가이드라인 성격에 그치다보니 교육과정 개편에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

반면 해외 선진국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회성 교육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학교 정규 교과목으로 금융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은 2014년 이후 모든 주에서 경제 교육을 표준 교육과정에 포함, 2018년 기준 22개 주에서 고등학생에게 졸업 필수과목으로 경제수업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고 영국은 2014년 이후 중등교육기관의 교육과정에 경제·금융교육을 넣었다.

호주도 2008년부터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금융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결정했고 캐나다는 정규 교육과정에 금융과 소비생활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운영 중이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의 경우 교과과정에 개인 재무설계도 포함돼 있다.

김 교사는 "주식은 위험하고 채권은 안전하다, 또는 수익성·안정성·유동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만 교과 과정에 들어있다 보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선 가정에서 경제 습관을 잘 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규 교과과정에 금융교육 시간이 확보되고, 특히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교사 역시도 본인의 재무 설계나 자산관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교사에 대한 금융교육을 강화해주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도 잘 가르쳐줘야겠다는 인식이 생길 것"이라고 전했다.

개인적인 목표를 묻자 김 교사는 "주변에서 '무얼 위해서 이렇게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아이들하고 같이 성장하다보면 또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그냥 이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은퇴 후에는 너무 무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은 꾸준히 쓰고 싶다"고 덧붙였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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