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물처럼 산다는 것

관리자 2024. 5. 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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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물의 계절이다.

산속 계곡물은 힘차게 넘쳐 흐르고, 봄비는 갓 심은 농작물의 생명수가 된다.

물로 가득 찬 저수지는 모내기에 필요한 물을 내어 주기도 하고, 밭에 심은 작물에게는 든든한 힘이 되기도 한다.

물(水)은 농업 국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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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사회 민심 향방 물에 달려
쉬지 않는 황하의 강줄기 보며
공자, 후학이 뜻 이어줄것 확신
노자, 아래로 흐르는 겸손 설파
손자병법선 유연한 변화 강조
내 안에는 어떤 모습이 있을까

봄은 물의 계절이다. 산속 계곡물은 힘차게 넘쳐 흐르고, 봄비는 갓 심은 농작물의 생명수가 된다. 물로 가득 찬 저수지는 모내기에 필요한 물을 내어 주기도 하고, 밭에 심은 작물에게는 든든한 힘이 되기도 한다. 물(水)은 농업 국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상이었다. 강물에 물이 넘치면 수백만명이 빠져 죽었고, 대지에 물이 모자라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농업사회에서 국가의 존망과 민심의 향방은 치수(治水)에 달려 있었다. 하(夏)나라를 세운 우(禹) 임금도 8년 동안 치수의 공을 인정받아 천자(天子)가 되었다. 가뭄이 들어 비가 안 오면 제왕들은 기우제를 지내며 비가 내리기를 빌고 또 빌었다. 물이 인간 생활에 끼치는 큰 영향만큼 동양의 철학자들은 물을 비유하여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였고, 우주의 진리를 설파했다.

공자는 황하에 가서 흘러가는 물을 보며 이렇게 외쳤다. “흘러가는 물이여!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不舍晝夜, 불사주야)!” 공자는 자신이 못 이룬 정치적 이상이 후학들을 통해 계승될 것임을 물을 통해서 확신했다. 내 생에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후세가 물처럼 이어져 내 꿈을 계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렇게 꿈을 만들고, 꿈을 이루며 발전해왔다. 얼음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얼지 않듯이, 세상은 한번에 바뀌지 않는다. 흐르는 물처럼 쉬지 않고 흐르면서 세상은 바뀌고 진화한다.

노자는 물처럼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말한다. ‘가장 아름다운 삶은 물처럼 사는 것이다(上善若水, 상선약수). 물은 모든 만물을 키워주고도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남들이 싫어하는 아래로 흐르기 때문이다.’ 물처럼 산다는 것은 겸손과 낮춤으로 사는 것이다. 낳았으나 소유하지 않고, 길렀으나 주재하지 않고, 주었으나 드러내지 않는 물의 속성이야말로 인간이 배워야 할 삶의 자세다. 부드럽고 약한 물이 강하고 센 바위를 날려 보내듯이. 인생도 부드러움으로 사는 사람이 강한 사람을 제압할 수 있다. 거센 폭풍에 아름드리나무는 뿌리째 뽑혀 나가지만, 부드러운 풀은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는다.

맹자는 샘이 깊은 물은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굴하지 않고 먼 바다로 흘러간다고 말한다. ‘샘이 깊은 물은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른다. 웅덩이에 갇히면 웅덩이를 다 채운 후에 다시 흐르나니(盈科而後進, 영과이후진), 그리하여 먼 바다로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샘이 깊지 않은 물은 칠팔월 장마에 큰비가 내려 도랑을 가득 채우더라도 해가 나면 마르는 것이 한순간이다.’ 내공이 강할수록 오래간다. 근본과 내공이 없으면 한순간에 왔다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손자병법’의 물은 유연함이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주장하지 않고 유연하게 변화하는 물의 모습은 승리하는 군대의 모습과 닮았다. ‘물은 고정된 자신의 모습이 없다(水無常形, 수무상형). 흐르는 지형에 따라 그저 모습을 바꿀 뿐이다. 이기는 군대도 고정된 모습이 없다(兵無常形, 병무상형). 적의 상황에 따라 전략을 자유롭게 바꿔 승리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변화를 인정하고 상황에 가장 적합한 모습으로 적응한 자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변하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지나간 시대만 그리워하다가 결국 생존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물에는 참 많은 모습이 있다. 쉬지 않고 흐르는 역사성, 아래로 흐르는 겸손함, 채우고 흐르는 내공,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함. 내 안에는 어떤 물의 모습이 있는지 질문해본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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