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수 칼럼] 한국 보수, `수구 꼴통` 되는 순간 망한다

박양수 2024. 5. 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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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수 디지털콘텐츠국장

여당 108석과 거대 야당 192석, 총선 민의는 예리했다. 그리고 절묘했다. 민심은 4·10 총선을 통해 겸손함을 상실한 권력의 오만함을 매섭게 꾸짖었다. 정권의 작은 실수 하나조차 놓치지 않았다. 국민이 왜 구(舊)권력인 문재인 정부를 내쳤는지, 윤석열 정부를 뽑아준 건 결코 '최선의 지도자'여서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것이다.

여권은 총선 참패 '책임론' 공방에 연일 시끄럽다. 하지만, 지금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 필요한 건 책임 공방이 아닌 자기 성찰의 시간이다. 진정한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때다.

보수와 진보는 항상 대척점에 서 있진 않다. 해방 이후 수많은 정치·경제·사회적 위기가 있었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던 건 보수와 진보가 모두 제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역대 정권을 거치며 한국 정치는 '민주-독재' 구도에서 '보수-혁신'을 거쳐 '보수-진보'의 구도로 바뀌어왔다.

보수와 진보가 분열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90년의 보수대연합(3당 합당)이다. 민정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서 민자당을 만들자 당시 야당인 평민당과 재야운동권은 '민주-반민주' 대결 구도가 '보수-혁신'으로 바뀌게 되는 걸 우려했다. 그래서 6·25전쟁의 상흔 속에 반공(反共)을 국시로 한 정권 아래서 좌파의 이미지가 강한 '혁신' 대신 진보라는 명칭을 사용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려 했다.

사실 보수는 진보보다 수세적 입장에 놓여 있다. 우선 탈냉전 시대에 '보수=반공'의 논리를 더 이상 지켜가기 어려워졌다. 경제성장의 정체와 극심한 양극화로 '성장'의 효용성도 더 이상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1980년대 전두환 시대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권위주의 정부를 거쳐온 50대와 60대에겐 보수보다는 진보의 가치가 훨씬 친근하게 느껴질 법하다.

그렇다고 진보주의가 보수주의를 대체하기엔 약점이 수두룩하다. '입으로만 진보', '말로만 진보'라는 비아냥과 비판은 한국 진보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안 없는 비판'과 '대한민국 정체성의 부정'은 그렇다치더라도 북한 정치체제에 대한 옹호는 대다수 국민정서와 괴리돼 있다. 일부 진보 세력의 경우 '친북'을 넘어 '종북'에 매몰돼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존립을 위협할 소지가 엿보인다.

보수를 낡고 경직된 논리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보수의 진정한 무기는 수용성이다. 실제로 역대 보수 정권들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하게 진보의 가치를 수용하며 진화해왔다.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은 공산화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박정희 정부의 '은행 국유화'는 사회주의 정책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 힘들어졌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구분도 시대 착오적이다. 보수와 진보는 단지 대북정책이나 한미동맹과 같은 이슈를 제외하면 이념과 정책 차이가 미미해졌다. 그런데도 여야 간에 극단적인 정치대결을 벌이는 건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이번 총선도 정책 공약이나 비전을 둘러싼 경쟁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증오와 복수의 다짐으로 점철되는 선거 행태를 되풀이했다.

민심이 가장 싫어하는 건 오만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총선은 참패한 여당과 승리한 야당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다. 패자는 자신의 오만함을 돌아봐야 할 것이고, 승자는 자만심에 들뜨지 말고 보다 더 겸손한 자세로 국민의 뜻을 살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가는 길은 정반대다. 총선 압승을 배경으로 '운동권 셀프 특혜법'이란 지적을 받는 민주유공자법, '남는 쌀 의무수매법' 등 포퓰리즘 성향의 법안들을 완력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일방통행식 입법 폭주가 총선 민심이란 착각에 빠진 듯하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독선과 오만은 이미 심판받았다.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 없다면 남은 임기도 고난의 연속일 것이다. 보수의 확고한 신념과 진보의 각종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도 중요하다. 그런 가운데 내 삶의 행복에 큰 가치를 두는 젊은 세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보수'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보수가 '수구 꼴통'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디지털콘텐츠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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