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나라 비상금' 끌어쓴 정부...사전 집행, 위법 소지"

김성은 기자 2024. 5. 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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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보건복지부 예비비 1254억원 주요 편성 내역/그래픽=윤선정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의료개혁 홍보를 위해 수 십억원 규모의 예비비를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예비비는 통상 재난·재해 등에 직면해 정부가 다음 연도 예산 편성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경비다. 야당에선 보건복지부가 정식으로 예산을 배정받기도 전에 홍보비를 사전 집행했다며 국가재정법 위반 의혹까지 제기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복지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6일 국무회의에서 기획재정부가 제출한 의료공백 해소 지원 예산으로 총 1254억원의 예비비 편성안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같은달 8일 복지부로 예산을 배정했으며 이 중 90억원이 홍보비로 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비비란 쉽게 말해 정부의 비상금이다. 국가재정법 제 22조에 따르면 정부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 또는 예산초과지출에 충당하기 위해 일반회계 예산총액의 100분의 1 이내의 금액을 예비비로 세입세출예산에 계상(계산하여 올림)할 수 있다.

예비비는 사용처에 제한이 없는 일반예비비와 재난·재해 대응 등에 활용하는 목적예비비로 나뉜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예비비는 총 4조6000억원이었으며 이 중 일반 예비비는 1조8000억원, 목적예비비는 2조8000억원이었다. 코로나19(COVID-19)가 확산됐던 2019년 예비비는 9조7000억원이 편성돼 소상공인 피해지원, 방역, 백신 구입비 등으로 쓰였다.

복지부는 1254억원의 예비비 중 580억원은 교수·전임의 등 당직 근무와 비상진료인력의 인건비 지원으로, 393억원은 국립중앙의료원·지방의료원 등 지역 내 공공의료기관 의료진의 평일 연장 진료 및 주말·휴일 진료 지원에, 68억원은 응급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해 경증·비응급환자의 지역응급의료센터 및 재역응급의료기관 이송 전담인력 등에 편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90억원이 배정된 홍보비가 '예상할 수 없는 지출'에 해당할 수 있는지 여부다. 예비비는 통상 예산의 편성이나 심의 당시 예측할 수 없다는 '예측불가능성', 다음 연도 예산 편성이나 심의를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시급성', 확정된 예산으로는 충당할 수 없는 불가피한 초과지출에 충당하기 위해 쓰인다는 '불가피성', 이미 확보된 예산을 활용한 후 부족분에 대해 사용해야 한다는 '보충성'을 요건으로 한다.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2023.10.13. suncho21@newsis.com /사진=조성봉


한정애 의원실 관계자는 "정책홍보는 예산의 성격상 예산 편성 당시 예측할 수 없는 사업으로 보기 어렵다"며 "건전재정을 이유로 민생예산을 삭감한 윤석열 정권이 스스로 만든 의료재난의 대응을 목적으로 예비비를 편성한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홍보비로 배정받은 90억원 중 유튜버 및 인플루언서와 콘텐츠 협업에 10억원을, 의료 개혁 내용을 담은 유튜브 영상 및 카드뉴스를 확산하는데 10억5000만원을 편성했다. 홍보물은 '의대 정원 증원이 타협될 수 없는 이유' '의대 정원 확대 왜 2000명?' 등의 내용과 '의료개혁 4대 과제' '시니어의사·지역 공공의료기관 매칭 사업 카드뉴스' 등의 내용을 다뤘다.

한 의원 측은 홍보비 집행 과정에서 위법 소지가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각 중앙관서의 장은 세출예산으로 배정되기 전에는 예산 집행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3월8일 예산 배정 전인 2월13일부터 유튜브, 열차 역사, 극장, 아파트 등을 대상으로 홍보비를 사전집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 의원실에 따르면 예산배정 이전에 집행된 광고 금액만 22억원이 넘었다.

한정애 의원은 "건전재정을 이유로 민생 추가경정예산(추경)도 반대하는 윤석열 정권이 총선용 마구잡이식 의대 증원을 추진하면서 국가재정법까지 위반했다"며 "더 이상의 국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증원 추진은 중단하고 국민의힘은 신속한 국회 차원의 '공론화 특별위원회' 구성에 협조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예비비 용처를 둘러싼 논란은 과거에도 반복적으로 있어 온 만큼 검증 등 견제 기능을 좀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2015년 당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해 편성된 예비비 상당 부분을 홍보비로 쓴 뒤 사용 내역조차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또 같은해 고용노동부가 당시 '노동개혁 홍보를 위한 상생의 노사문화 구축 사업비' 명목으로 50억원이 넘는 예비비를 끌어 써 도마 위에 올랐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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