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보” vs “소통”…베일 벗는 회의록, ‘2000명 증원’ 근거 나오나

강윤서 기자 2024. 5. 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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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법원에 ‘의대 증원 규모’ 논의 회의록 제출 예정
보정심 참여위원 “정부, 2000명 숫자 일방적 통보”
“증원 관련 자료, 기자들 없을 때 배부 후 다시 수거”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5월2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제41차 회의를 개최하며 비상진료체계 운영현황, 의사 집단행동 현황, 의료개혁 정책 토론회 추진현황 등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법정 다툼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정부는 법원이 제출을 요구한 '2000명 증원' 근거 산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불신'을 쏟아낸다. 법원 판단에 따라 정부와 의료계 한 쪽의 의대 증원 추진 또는 반대 '명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정부에 오는 10일까지 정책 결정의 근거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법원이 요청한 자료는 증원 규모의 과학적 근거 자료와 현장실사를 비롯한 조사 자료, 의대 정원 배정심사위원회의 대학별 배분 관련 회의록 등이다.

의대 증원이 논의된 세 가지 주요 회의체 중 정부가 회의록 제출을 확정한 것은 단 1개다. 세 회의체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교육부 소관 의대정원배정심사위원회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일대일로 참여한 의료현안협의체다. 정부는 이 중 정부·공급자·수요자·전문가로 구성된 보정심의 회의록을 제출할 방침이다. 보정심은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2000명 증원을 결정한 기구로 복지부가 회의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보정심에 참여한 일부 전문가는 당시 회의가 정부의 일방적 '통보' 수준에 불과했다며 증원 규모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익명을 요구한 보정심 민간위원인 A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두 차례(2023년 8월과 11월) 진행된 보정심 회의에서 의사인력 증원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2000명 숫자는 올해 2월6일 회의 때 처음 공개된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당시 (2월6일자) 회의는 오후 2시에 시작했지만 곧바로 오후 3시에 (조규홍) 복지부 장관의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다"며 "20명 이상의 참여위원이 참석한 회의에서 1시간 만에 (증원 규모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을 진행하기엔 물리적으로 어려웠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지적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보정심 개최 전 위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의견수렴을 하는 등 지속적인 소통을 추진했다"고 반박한 바 있다. 또 "(당시) 회의에서는 의대증원 필요성과 적정 규모에 대한 차분하고 충실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반박에 대해 A씨는 "말도 안 된다"며 "정부가 사전에 회의 안건에 대한 자료를 보내줬지만 증원 관련 내용은 빠져 있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의대 증원 관련 내용은) 회의 시작 후 기자들이 빠진 뒤에야 배부했고 이후 다시 수거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증원 규모에 대한 자료를 수거한 이유에 대해선 "밝힌 바 없다"고 말했다.

4월11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와 보호자가 인큐베이터 안의 신생아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 '보정심 회의록' 존재 여부도 의심

의료계는 정부가 법원에 제출 예정인 보정심 회의록의 존재 여부에도 의구심을 드러낸다.  

회의에 참석했던 A씨는 "회의에서 오간 발언 내용을 정리해서 전체 참여자에게 회람을 하는 등 회의록의 (형식·절차적 요건을 갖추기 위한) 상식적인 과정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회의 녹취록을 풀어서 회의 내용을 정리할텐데 (해당 녹취록을) 회의록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이날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는 회의록 미작성 의혹과 관련해 복지부의 조규홍 장관과 박민수 차관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이 변호사는 "조 장관과 박 차관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7조 제2항에 따라 보정심의 회의록을 작성할 법적 의무 및 전자기록생산시스템을 통해 이 회의록을 생산·등록해 관리할 법적 의무가 있다"며 "정당한 이유없이 그 직무를 유기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과 의대생 1만3000여 명 등의 소송대리인으로 정부의 의대 증원배분 처분에 대해 집행정지신청 등 행정·민사소송을 제기해왔다.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회의록은 회의의 명칭·개최 기관·일시와 장소·참석자 및 배석자 명단·진행 순서·상정 안건·발언 요지·결정 사항 및 표결 내용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 

반면 정부는 보정심 회의록 존재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반박에 나섰다. 정부는 공공기록물관리법상 작성 의무가 있는 각종 회의체에 대해선 모두 회의록을 작성했다는 입장이다.

박 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후 브리핑에서 "공공기록물 관리법에 따라 '보건의료기본법'에 근거를 둔 보정심과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 회의에 대해서는 회의록을 작성·보관하고 있다"며 "서울고등법원의 요청에 따라 회의록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러한 논의 과정을 숨길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앞으로도 각계와 의대 증원 등 의료개혁을 논의하는 데 있어 회의록 기록에 대한 법정 의무를 준수하고 논의 과정을 국민께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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