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만평부터 소녀시대까지…‘아찔 각선미’ 타령 100년

이유진 기자 2024. 5. 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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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바디올로지] 21 _다리, 각선미
꼭 60년 전인 1964년 탄생한 미니스커트는 영국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만든 획기적인 의복이었다. 사진은 퀀트의 작품들. 위키미디어 코먼스

각선미는 한국 언론의 대표적인 몸 담론이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1990년 1월1일부터 2024년 5월6일까지 ‘각선미’를 검색한 결과 중앙일간지, 지역일간지, 경제지, 스포츠지, 전문지(주간지), 인터넷신문에서 보도된 기사는 총 9만4054건이었다. 절대다수가 연예인 각선미 보도였다. ‘뉴스’가 새로운 소식을 가리키는 거라면, 연예인 각선미 이야기는 이미 뉴스가 아니다. 늘 똑같은 형태의 기사를 다리 주인 이름만 바꿔도 각선미 기사는 썼다 하면 대중의 눈길을 끈다는 뜻이다. 카인즈 분석 결과 2013년 ‘각선미’와 가장 밀접한 키워드는 ‘네티즌’ ‘누리꾼’이었다. “누리꾼들, ‘○○○ 각선미 그저 부러워’” 같은 기사가 양산됐기 때문이다.

2009년 7월 방송법이 개정되고 종합편성 채널이 생기면서 연예 관련 콘텐츠가 대폭 늘었고, 뉴스 소비가 인터넷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페이지뷰 늘리기를 위한 선정 보도가 줄을 이었다. 언론사 돈벌이에 여성의 몸이 동원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폭증한 게 문제다. 1990년 한 해 21건이던 ‘각선미 기사’는 2013년 1만8557건으로 연간 최대를 기록했다. 23년 만에 88266.67% 증가한 셈이다. 늘씬한 다리 이미지와 담론의 폭격 속에 우리는 매일 살아간다.

한국의 남성 지식인들이 흠모했던 여성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아름다운 다리로 유명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1920~30년대, 서양 미인의 각선미를 칭찬하는 기사가 신문에 등장한 게 시작이었다. 독일 출신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 등 신문에 실린 서구 여성 스타의 각선미에 대한 칭송은 조선 지식인들의 열등감과 부러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개항 이후 근대적 아름다움의 추구를 분석한 책 ‘예쁜 여자 만들기’의 저자 이영아는 당시 지식인들이 여성의 아름다운 몸에 집착했다고 지적한다. “아름다운 여성은 우리가 성취해야 할 문명화의 한 부분이었다.”

각 민족의 신체적 특질을 위계화하는 우생학, 체질인류학이 인기를 끌던 때다. 짧고 굵은 여성의 다리는 열등한 조선 민족의 상징처럼 보였다. 1929년 이미 신문은 미인의 조건이 얼굴에서 다리로 옮겨갔다고 보도했다. 조선 여성의 다리가 예쁘지 않은 것은 흰쌀밥을 먹는 식습관, 낙후된 생활방식인 좌식 문화 탓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우월한 신체’는 식민 지배에 적극 포섭되거나, 독립을 위해 저항하는 양쪽 세력이 모두 함께 지향한 목표이자 근대적 국가 수립의 필수 조건이었다. 여성의 다리는 서구인들처럼 곧고 길어야 했다.

1930년대 안석영의 만문만화. 여성선전시대가 오면(2) 1930년 1월12일 ‘조선일보’.

1920~30년대 여성 복식의 위생을 강조하면서 치마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했고, 맨다리를 드러낼 수 없었던 여성들은 구두에 실크 스타킹과 양말을 신었다. 근대적 소비자 주체로 등장한 여성들은 백화점에서 스타킹을 비롯해 각종 물건을 사들였다. 하지만 소비자로서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의 몸이 서구 미인 같지 않아선지 조선의 용렬한 남성 지식인들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꼈다.

1930년대 화백 안석영(안석주, 1901~50)의 대표적인 만문만화(만평)를 보면, 얼굴 없는 조선 여자들의 짧고 굵은 ‘무다리’가 말을 한다. “나는 신경질입니다. 이것을 이해해주어야 해요.” “나는 문화주택만 지어주는 이면 일흔 살도 괜찮아요. 피아노 한 채만 사주면.” 못생긴 주제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며 욕심 많은 여성에 대한 비난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정치적 레토릭이다.

6·25 전쟁이 터졌고 여성은 구국을 위한 상징적인 노동 패션인 ‘몸빼’(일바지)를 입어야 했다. 1960년대가 되자 변화의 물결이 해일처럼 밀어닥쳤다. 미니스커트 유행이 온 것이다. 꼭 60년 전인 1964년 탄생한 미니스커트는 영국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만든 획기적인 의복이었다. 퀀트는 자신처럼 달리면서 일하는 여성에게 자유를 주고자 이 옷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짧은 치마는 ‘날씬한 다리’를 향한 욕망과 강박을 자극했다. 1965년 말라깽이 모델 트위기가 미니스커트를 입어 옷과 함께 마른 몸의 세계적 유행을 이끌었고 한국에선 1967년 가수 윤복희가 이 옷을 처음 입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1983년 6월1일 동아일보에 실린 여경 각선미 검사 사진. 네이버 화면 갈무리

미니스커트 입기를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항의와 탈주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1970년대 무릎 위 17㎝ 이상 올라가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은 경찰의 단속 대상이 됐다. 황당하게도 미니스커트 단속을 하던 국가는 여자경찰관을 뽑으면서 지원자들의 각선미 검사를 했다. 치마 제복을 입혔을 때 드러나는 다리가 아름다운 여경을 원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여성의 몸을 단속하는 동시에 여성의 각선미를 권력 홍보의 도구로 이용했다.

1970~80년대 이상적인 각선미는 좀 더 상세히 계량화했다. 전문가들은 ‘이상적인 각선미 사이즈’는 허벅지가 15.2~17.8㎝, 장딴지는 12.7~15.2㎝라는 등 정교하고 세부적인 미의 기준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르러 한국 여성의 각선미 관리는 더욱 사회적인 것이 되었다. 연예인, 스튜어디스는 물론이고 탁구, 테니스, 배드민턴, 여자 육상선수의 각선미 품평이 줄을 이었다. 탁구선수 현정화, 홍차옥이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각선미 장외 경연’을 벌였다며 언론은 보도에 열을 올렸다. 여성 선수에게 미니스커트를 입힌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선수의 기량보다 여성으로서 몸을 대상화하고 관음적 시선을 유도하는 행위였다. 스포츠상업주의와 성차별이 결합했고 언론은 “탁구선수가 되려면 각선미를 다듬으라”고 부채질했다. 실제 낮에 연습하고, 밤에 맥주병으로 다리를 문지르는 여성 운동 선수도 적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극적인 외모 변신은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생존 치트키’가 된다. 언론의 각선미 보도 가운데서도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 바로 성형 수술이다. 각선미 성형수술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1929년 신문에 보도된 이후 다리 미용 성형은 언론의 단골 아이템이었다. 2000년 이후 고주파를 이용한 신경차단술인 ‘종아리 퇴축술’의 심각한 부작용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다리는 얼굴 성형보다 한층 더 어렵고 섬세한 관리의 대상으로 변화한다. 각선미는 주사, 수술과 더불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정성을 들이고 가꿔야 하는 신체 일부가 되었다. 최신 과학적 결과로 구성된 식단을 실천하고 종종 마사지로 다리 붓기를 관리하는 부자, 미끈한 다리의 주인공은 우월한 유전자는 물론이고 돈과 시간 등 모든 것을 갖춘 자다.

일본과 한국에서 ‘미각 그룹’으로 유명했던 걸그룹 소녀시대.

이제 각선미는 더 이상 우월한 인종의 상징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의 케이 팝 스타들은 백인들 못지않은 큰 키에 긴 다리로 세계인들의 관심을 끈다. 사람들은 ‘걸그룹 다리 만들기’ 책을 사고, 지방을 흡입하는 ‘걸그룹 주사’를 맞아 다리를 가늘게 한다. 100년간 ‘각선미 담론’이 빌드업해온 내용은 분명하다.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오랜 시간 앉거나 서서 노동해온 다리보다 오랜 기간 자본과 과학 기술로 관리된 매끈한 다리가 더 나은 신체라는 뜻이다.

하지만 ‘다리의 세계’를 이동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 여성 지인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두꺼운 허벅지를 저주했지만 풋살을 하게 되면서 불만이 사라졌다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경기장에서 그는 말다리를 가진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인물 ‘켄타우로스’로 일컬어진다. 경기장에서 우다다다 드리블하는 튼튼한 다리야말로 동료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다리였다. ‘굴러라 구르님’ 채널을 운영하는 김지우씨는 인터뷰집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를 통해 휠체어 탄 여자들의 여행과 운동 이야기를 전했다. 길고 늘씬하지 않지만 세상에는 더 멋진 다리,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여자들의 다리가 있다. 다른 몸, 더 다양한 다리를 인정하는 시대가 말발굽 소리를 내면서 더 힘차게 달려오길 바란다.

※참고자료: 미는 얼굴로부터 다리의 미로(1929년 7월18일 조선일보), 여성선전시대가 오면(2)(1930년 1월12일 조선일보), 규중의 조선 여성은 각선미가 왜 없나(1931년 9월29일 동아일보),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최지혜 지음, 혜화1117 펴냄), ‘민중의 발’ 될 수 있을까(1983년 6월1일 동아일보), 현대사회의 외모 가꾸기에 관한 연구: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여성중앙의 분석을 바탕으로(맹유진, 2014 건국대 박사학위 논문) 탁구최강전 ‘각선미 장외 경연’(1993년 2월21일, 조선일보),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김지우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이유진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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