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 새로운 통합의 정치를 기대한다

양지훈 변호사 2024. 5. 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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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시간이 얼마간 지난 후에야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도입됐다가 폐지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성공한 '여론 동원 정치'로서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행정부가 온라인 게시판을 매개로 직접 시민을 동원하는 형태의 정치는 정당을 배제하고 직접민주주의의 외형을 둘러쓴 포퓰리즘으로 나아갈 수 있어 우려되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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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변호사

진실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시간이 얼마간 지난 후에야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도입됐다가 폐지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성공한 '여론 동원 정치'로서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보였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지향하는 온라인 게시판은 30일 동안 20만명 이상 추천한 청원엔 정부 및 청와대 책임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억울하거나 선정적인 이야깃거리는 줄곧 언론보도의 대상이 돼 큰 화제가 됐고 보도의 대상이 되는 순간 다시 청원에 동의하는 시민이 늘어나는 순환의 고리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20만명 이상 요건을 채운 베스트 청원게시글을 현시점에서 다시 일별해보면 이 '게시판 정치'의 문제를 명백히 보여준다. 2021년 6월에 베스트 청원글로 선정된 글들을 살펴보면 이런 글들이 발견된다. '한강 실종 대학생 고 ×××군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반국가, 반민족적 판결을 내린 ××× 판사의 탄핵을 요구합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 독도 일본 땅 표기강행 시 올림픽 불참 선언해야 합니다' 등등. 이 게시글의 제목만 보고도 불과 3년이 지난 현재의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당시 청원이 얼마나 부적절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 정부 출범 후 4년 동안의 청원을 분석해보면 정치분야의 청원이 전체의 16% 이상 차지해 가장 많았다. 전체 국민청원 동의 수가 가장 많았던 상위 5개 청원 중 3개 역시 정치분야였는데 당시 1·2순위는 텔레그램 성폭력과 관련한 청원이고 3순위는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약 180만명), 4·5순위는 각각 '문재인 대통령님을 응원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촉구합니다'(각각 150만명 내외)였다(2021년 8월17일자 연합뉴스 보도).

청원게시판의 순기능으론 기존 제도적 해결에 기댈 수 없거나 부당한 힘에 의해 좌절한 청원인의 요구가 집단적 관심에 힘입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게시판은 상위 청원의 내용에서 보듯이 시민들의 과도한 정치적 정념을 생산하고 그 갈등을 조장하는 부작용이 더 컸다고 본다.

무엇보다 입법-집행(행정)-사법 3권분립의 헌법 원리에 비춰볼 때 청와대 청원게시글이 이에 반하는 내용으로 다수 채워진 현상은 우려할 만한 것이었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로서 국가를 대표하지만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지위를 가질 뿐이며(헌법 제66조) 사법부와 입법부는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함으로써 긴장관계를 갖는다. 그럼에도 당시 청와대 게시글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특히 '반국가, 반민족적 판결을 내린 ××× 판사의 탄핵을 요구'하는 글이나 '대통령 탄핵 요구' 글은 3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거나 과도한 정치적 갈등을 초래한 대표적 사례로 보인다(당시 이 청원글에 청와대나 부처의 담당자가 답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청와대 게시판에 누군가 글을 올리고 수십만 명의 시민이 이에 동의하는 것은 어딘가 섬뜩한 모습이다. 청와대는 정부의 일부 기능을 담당할 뿐이다. 집행부(행정부)의 모든 기능을 청와대가 담당한다면 다른 부처의 기능은 형해화하는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행정부가 온라인 게시판을 매개로 직접 시민을 동원하는 형태의 정치는 정당을 배제하고 직접민주주의의 외형을 둘러쓴 포퓰리즘으로 나아갈 수 있어 우려되는 지점이었다.

과거 제도에 대한 반성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것은 정치가 곧장 여론에 의해 좌우돼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과잉대표되는 열혈 지지층의 과도한 열정은 정당과 제도를 통해 적절히 통합돼야 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국회에 바라는 희망 역시 단순하다. 시민을 통합하는 정치,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고 서로 대화하는 정치가 그것이다.

양지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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