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비대위’ 뻔한 결말 피할까[시평]

2024. 5. 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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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국민의힘 ‘만년 2당’ 전락 우려
갈수록 이념적 왜소화·극우화
지역적으론 ‘TK 자민련’ 위험
잦은 비대위 자체가 무능 상징
새로운 보수 위한 터전 넓혀야
無明 깨뜨릴 전면 재구성 절실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일 출범했다. 국민의힘에 이준석 대표 이후 선출된 정상적(?)인 지도부는 김기현 체제 하나였다. 황우여 체제는 임기 만 2년의 윤석열 대통령에게 5번째 여당 지도부이자 4번째 비상대책위원회다.

2000년 이후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비대위는 모두 13번 있었는데, 2016년 탄핵 후 지금까지 비대위가 6번으로 최근으로 올수록 집중되는 양상이다. 지난 8년 동안의 비대위 6번 가운데 윤 대통령 때 4번이나 등장한다. 물론 탄핵 이후 등장했던 전당대회 선출 절차를 거친 4번의 지도부 중에서 임기를 온전히 마친 경우도 없었다.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 참패로 2개의 불명예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것은 여당으로서의 사상 첫 총선 대패이자 ‘새누리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이라는 서로 다른 정당 이름으로의 총선 3연패다.

국민의힘은 ‘지는 데 익숙해진 정당’이 됐다. 이제 총선에서는 ‘만년 2당(permanent minority)’으로 전락한 모양새다. ‘어쩌다 대선 승리’를 기대하는 정당으로 결국 2022년의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지형의 근본적 변화 때문이다.

첫째, 보수 가치가 시간이 지나면서 ‘비주류화·왜소화·극우화’했다. 보수의 가치는 변화가 없었는데 국민적 기준이 왼쪽으로 이동한 셈이다. 20대가 진보는 아니라지만 60대도 더 이상 보수가 아니다. 악화하는 경제·사회적 양극화 속에 소수의 자산가를 대변한다는 보수의 부정적 이미지는 강화된다. 2030세대를 기반으로 한 보수 세대교체의 기대를 높이는 대목이다.

둘째, 보수의 지역적 축소다. ‘수도권 포기당’이라 해도 더는 놀라지 않는다. 수도권에서 이길 생각이 없는 듯하고, PK도 더는 보수의 텃밭은 아니어서 ‘영남 자민련’을 넘어 ‘TK 자민련’으로 간다. ‘영남 보수’는 물론 2030과 함께하는 ‘수도권 보수’의 등장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지금 국민의힘은 최악이다. 바닥을 뚫고 지하로 들어선 상황이다. ‘왜 자신들이 존재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정당’이 되고 말았다. 당선된 게 다행인 ‘샐러리맨 정당’이다. “지금은 당이 죽어가는 데도 용기없는 자들이 고개만 숙인다”는 자조는 염치도 없고 용기도 없는 ‘공동묘지의 평화’같은 당을 상징한다.

결국, 여러 차례 반복된 국민의힘 비대위는 당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황우여 비대위원장이 “당 정체성의 재정립과 여야 협치”를 말하며 “국민이 됐다 할 때까지 쇄신해 재창당을 넘어선 혁신”을 다짐하지만, 그 끝이 걱정되는 이유다.

악순환의 위기에 비대위라는,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의 일반적 대응으로는 국민의힘의 근본 문제에 맞설 수 없다. 지난 8년 동안 비대위는 6번 등장했지만, 당명은 총선 때마다 바뀌었고 동시에 보수 진영의 유동성과 원심력은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안고 있는 근본 문제는 ‘당의 역동성과 자생력 그리고 책임성’이다. ‘대통령과의 수직적 관계’는 당의 자율성과 독자성 결여의 다른 표현이고, 반복되는 비대위 역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외부 위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제 갓 출범한 황우여 비대위의 역할은 너무도 분명하다. ‘보수 정당의 한 줄기를 공식적으로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보수 정치의 출발이 가능하도록 넓은 터전을 만드는 일이다.

이때 조선 중기의 고승 청허 휴정의 가르침은 함축적이다. 스님은 “말을 배우는 사람들은 말할 때는 문득 깨친 듯하지만, 실제로 경계에 부닥치면 아득하게 되니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난다”고 했다. 따라서 “생사를 막아내려 한다면 화두를 ‘탁!’하고 한번 깨뜨려야 비로소 생사의 경계를 부술 수 있다”고 했다. 말과 생각으로 아는 것은 현장·실제와는 다르고, 무명(無明)과 무지 그리고 어둠을 완전히 깨뜨려야만 문제의 근본이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이다.

황우여 비대위는 검기가 칠통(漆桶) 같은 새까만 중생(보수)의 무명을 깨뜨리는 ‘탁’ 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보수 생사의 경계를 허물어뜨릴 수가 있다. 국민의힘을 폭지일파(爆地一破)하라!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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