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마전 선관위 ‘재설립’ 서두를 때다[포럼]

2024. 5. 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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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다른 경쟁에 비해 운동경기의 결과에 더 쉽게 승복할까? 평탄한 운동장에서 정해진 경기규칙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이다.

심판의 공정한 경기 진행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바로 이 역할 때문에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특별한 지위와 권한을 누린다.

하지만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하게 선거관리를 하라고 부여한 이 지위와 권한을 선관위의 수많은 간부가 남용해 온 사실이 지난달 30일 감사원이 발표한 채용 비리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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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왜 사람들은 다른 경쟁에 비해 운동경기의 결과에 더 쉽게 승복할까? 평탄한 운동장에서 정해진 경기규칙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이다. 즉, 공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선수의 개인적 여건에서 비롯한 유불리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경기장 안에서만큼은 같은 조건에서 겨룬다고 믿기 때문이다. 심판의 공정한 경기 진행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거라는 게임도 운동경기와 마찬가지로 결과가 수용되기 위해서는 엄격하고 공정한 경기규칙의 집행이 중요하다. 그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이다. 바로 이 역할 때문에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특별한 지위와 권한을 누린다. 하지만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하게 선거관리를 하라고 부여한 이 지위와 권한을 선관위의 수많은 간부가 남용해 온 사실이 지난달 30일 감사원이 발표한 채용 비리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지난해 7월부터 선관위 고위직 자녀의 특혜 채용 감사를 진행했던 감사원은 부당 채용에 관여한 혐의로 전·현직 직원 27명을 4월 29일 대검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비위 혐의에 대한 추가 확인이 필요해 수사 참고 자료를 송부한 22명을 더하면 감사원이 검찰에 넘긴 선관위 직원은 49명이나 된다. 그 명단엔 선관위 자체 고발 등으로 경찰과 검찰 수사를 받았던 중앙선관위 김세환 전 사무총장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도 포함됐다. 박찬진 전 사무총장은 수사 참고 대상자로 검찰에 넘겨졌다.

감사원은 2013년 이후 치러진 지방선관위와 중앙선관위의 경력채용 전수조사 결과, 사실상 모든 회차에서 규정 위반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전체 선관위 직원 3000명 중 약 10%나 되는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있었다. 점수 조작, 사전 내정, 특혜 부여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그 결과 선관위 내부에서도 선관위를 ‘가족회사’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선관위의 감시 감독 기능을 무기 삼아 지방자치단체에 자녀의 인사를 청탁한 사례도 여럿 있었다.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기도 했다고 한다. ‘조작, 내정, 특혜, 청탁, 인멸’이 감사원 발표에 사용된 표현이다. 복마전도 이런 복마전이 없다.

이런데도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워 1963년 설치 이래 감사원의 감사를 단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 이번 감사도 내부고발 등으로 문제가 불거지고야 마지못해 인사 비리에 한정해 동의해서 겨우 진행될 수 있었다. 전반적인 감사를 벌이면 더 많은 비리와 방만한 운영이 드러날 개연성이 크다. 예컨대, 선관위가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4.7%에 불과한 재외국민투표율을 62.8%라고 발표한 것도 재외국민 투표 관리를 명목으로 직원 22명을 해외 파견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함이라는 비판이 있다.

복마전이 된 선관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원의 정기적인 감사부터 받게 해야 한다. 선관위는 지금도 헌법재판소에서 외부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받으려고 한다. 그리고 재건축 수준의 조직 개편과 인력 물갈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회는 다른 모든 특검에 앞서 선관위특검부터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관리하는 주체가 이 지경으로 썩었는데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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