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칭·비대칭의 미묘한 공존…두 시대 조각가의 특별한 조우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신진 작가 차현욱 개인전도
시간을 거스른 두 조각가의 특별한 조우가 펼쳐진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다양한 매체를 두루 섭렵했던 한국의 1세대 조각가 문신(1922∼1995)과 1990년대 후반부터 사진 조각과 같은 매체 실험으로 이름을 알린 권오상 작가(50)의 2인전 ‘깎아 들어가고, 붙여나가는(Carving in, Modeling out)’을 통해서다. 6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서로 다른 두 시대의 작가가 공통적으로 추구한 조각의 물질성과 공간성에 대한 실험적인 태도를 살펴보는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 드로잉 등 작품 총 49점을 선보인다.
두 작가의 교류는 1층과 지하 1층뿐만 아니라 3층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문신이 1960년대 ‘인간이 생활할 수 있는 조각’을 꿈꾸며 조각과 건축의 관계를 놓고 작업한 드로잉·조각 작품 옆에 권 작가의 소파·조명 등 조각 가구 시리즈가 놓였다. 이를 통해 두 작가는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조각의 다양한 공간감과 사람이 실제 사용하거나 생활을 할 수 있는 조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조각 주변에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구멍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권 작가는 다양한 구멍을 발견한 일상 풍경들을 촬영해 조각에 입혔다. 권 작가는 “조각 주변의 빈 공간도 작품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지난해 권 작가가 집 근처의 한 경매사 뷰잉룸에서 문신의 작품을 직접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각종 문헌자료를 뒤져가며 문신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고, 그의 작품 세계와 철학에 푹 빠지면서 이번 2인전으로 이어졌다. 권 작가가 문신의 작품을 오마주한 또 다른 작품 ‘문신의 우주를 향하여’(2024)는 문신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권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여성의 얼굴을 한 ‘리사이클링 피규어’(2024) 등 브론즈 와상·두상 조각도 처음으로 선보인다.
차 작가의 독특한 작업 방식도 눈길을 끈다. 두꺼운 한지 위에 선을 긋는 대신 압으로 여백의 선을 만들고, 여기에 수성 물감인 안채(한국화 안료인 분채를 아교·천연 전분과 혼합해 만든 물감)와 호분(조개 껍질 등 천연 석회로 만든 재료)으로 마른 붓질을 쌓아 채색한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도상이지만 구도를 정해놓고 스케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느낌을 따라 일필휘지로 선을 만들고 채색하길 반복한 것이다. 다양한 색의 화려한 조화는 신비롭고 동화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화면 안에 드문 드문 작가 자신의 모습이 등장할 때도 있다. 어딘가로 휙 달려가거나 연인의 손을 잡고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 준다.
차 작가는 “태어난 곳은 부산인데 초등학교 때 대구로 이주해 대학까지 나왔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는 서울로 옮겼다. 스스로 고향을 떠나 이주 생활을 했던 이방인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며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많은 요소들이 과거의 어느 때에 형성됐을 텐데 딱 퍼즐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난제를 풀듯 이런 기억의 조각들을 재조합해 장면을 그린다”고 설명했다. 전시 제목인 ‘저공비행’ 역시 젋은 숲을 낮게 비행하며 풍경과 가까이 스치는 듯한 모습을 묘사하는 단어로, 작가가 이런 부유하는 삶 속에서 경험한 어려움이나 좌절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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