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주 울린 ‘쪼개기 상장’이 경영진 성과로…재벌 불신 더 키운다

이재연 기자 2024. 5. 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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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가 손실을 볼 때 대표이사의 보수는 반대로 오른 경우가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회사가 주주의 이익과 관계없이 경영진 보수를 인상하는 행태는 ‘대리인 문제’의 관점에서 작지 않은 함의를 지닌다. 주주의 대리인으로서 주주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경영진이 이를 등한시할 여지를 키우는 탓이다. ‘쪼개기 상장’이라는 성과를 내세워 더 많은 보수를 받은 경영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결국 회사가 스스로 임원 보수와 총주주수익률(TSR) 간의 관계를 명확히 밝혀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에스케이(SK)㈜ 사업보고서를 보면, 최태원 대표이사 회장이 2021년 받은 보수 40억9천만원은 기본급과 성과급으로 나뉜다. 기본급은 전년보다 30.4% 뛴 30억원, 성과급은 9.0% 늘어난 10억9천만원이었다. 사업보고서에 나온 기본급 산정 근거는 직책과 직위, 리더십 등이었고, 성과급 산정 근거는 2020년 매출과 영업이익, 이해관계자 행복 제고 등이었다.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묻자 회사 관계자는 “2020년 에스케이바이오팜 기업공개(IPO)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 보수 인상의 발판이 된 ‘성과’의 뒤편에는 일반주주들의 눈물이 있었다는 얘기다. 에스케이바이오팜은 2011년 에스케이㈜에서 물적 분할된 뒤 2020년 상장한 회사다. 모회사·자회사의 중복 상장은 통상 모회사의 주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시장에서도 에스케이그룹의 연이은 ‘쪼개기 상장’으로 모회사 소액주주들이 손실을 볼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던 차였다. 실제로 에스케이바이오팜이 상장한 2020년 에스케이㈜ 총주주수익률은 -5.5%를 기록했다.

엘지(LG)화학도 비슷한 경우다. 물적 분할한 배터리 자회사의 상장 계획을 공식화한 2021년 엘지화학 총주주수익률은 -23.9%를 기록했다. 2021년도 재무성과를 바탕으로 이듬해 신학철 대표이사 부회장의 보수가 40.0% 뛴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회사는 2021년 매출과 영업이익, 사업 포트폴리오의 고도화 등을 고려해 신 부회장의 성과급을 산정했다고 밝혔다.

한국 재벌의 특성을 고려하면 주주-경영진 이해관계 불일치의 해소가 더욱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리스크가 대리인 문제를 둘러싼 불신을 키우는 탓이다. 현대모비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자동차그룹 순환출자 고리의 핵심에 위치해 있지만, 정의선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향후 승계 작업을 염두에 둔 현대모비스 경영진이 기업가치 제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시장에서 꾸준히 제기된 배경이다. 이는 현대모비스의 주식 저평가 현상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모비스의 10년 총주주수익률은 -6.3%에 그친다. 현대모비스 주식에 10년 전 100만원을 투자했다면 지금 93만7천원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보수 공시의 불투명성은 이런 불신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사업보고서에서 정 회장의 성과급 산정 기준·방법을 알리는 칸에 ‘2023 성과 인센티브’라고만 적었다. 회사 관계자는 “지속적인 미래 성장을 위한 경쟁력 강화 성과 등을 포함한 다양한 성과 지표를 통해 성과 인센티브를 산정하고 있는데, 세부적인 지표는 공개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통적 재벌로 분류되지 않는 회사들도 비슷한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 하이브의 박지원 대표이사는 지난해 1년 전보다 59.7% 늘어난 15억2천만원을 받았다. 성과급 산정 방법에 대해서는 “2022년 경영성과에 대한 보상위원회 평가에 따름”이라는 짤막한 설명만 공시했다. 이 회사의 2022년 총주주수익률은 -50.3%였다.

결국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임원 보수와 총주주수익률 간의 관계를 상세하게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주요 기업들은 장·단기 총주주수익률을 동종업계와 비교·분석해 공시하고 이를 경영진 보수에 반영하고 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국내 대기업 경영진은 자사 총주주수익률이 어느 정도인지 아예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다”며 “그만큼 주주와 경영진의 이해관계가 괴리돼 있다는 뜻으로, 기업의 근본적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 어떻게 분석했나

한겨레는 지난해 말 기준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민간회사 30곳을 선정해 대표이사 등 임원 보수와 배당금 등 10년치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했다. 성과급 이연지급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금융회사는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 상장 기간이 2년 미만이거나 임원 보수 공시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에코프로머티리얼즈와 에이치엠엠(HMM)을 제외한 대신 31·32위인 케이티(KT)와 대한항공을 포함했다.

회사가 전년도 실적을 바탕으로 임원 성과급을 산정하는 경우에는 총주주수익률(TSR)도 전년도 숫자를 적용했다. 보통주 총주주수익률 계산에는 액면분할 등이 반영된 한국거래소 수정주가와 각 사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연도별 배당 규모를 활용했다. 퇴직금과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부여, 스톡옵션 행사 이익 등은 보수 집계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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