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尹 "총리 추천해달라, 부부동반 만나자"... 유화 제스처에도 李 "위기모면용은 안돼"[영수회담 막전막후]
지난 2년 李 외면했던 尹 총선 참패 후 변화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정치 도움 없이는 안돼"
박정희 경부고속도로, 盧 한미 FTA 등 거론
"지지자 반대 극복해야, '역사 산책' 후 결심"
李, 'DJ 이후 강한 野 대표' "책임 무겁다" 공감
심판 넘어 국정 책임 지는 공치 필요에 '끄덕'
尹 "총리 추천해달라, 李 불편한 인사 안 써"
尹 "골프회동·부부동반 모임 제안, 李 번호도"
李, 아랫사람 아닌 "尹 근본 달라져야" 촉구
李 "이태원, 채상병 관련자 인사 조치 필요"
"이재명 대표에게 내 진정성을 전해달라. 남은 임기 3년 동안 정치를 통해, 국회를 통해 좋은 것을 남기고 싶다."
윤석열 대통령
"(총선 압승으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나는 준비가 돼 있다. 국정기조의 변화를 보여달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영수회담 성사를 위해 대리인(메신저)을 통해 주고받은 말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회담을 공식 제안했고, 이후 열흘 만에 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간 물밑 대화는 베일에 싸여 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0314070001104)
양측이 인정한 영수회담 메신저로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과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가 나섰다. 함 원장은 윤 대통령과 친분이 깊고, 임 명예교수는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다. 이에 한국일보는 2일 두 사람과의 인터뷰를 통해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영수회담에 앞서 구체적으로 어떤 조율과정을 거쳤는지 들어봤다.
이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3년 남은 정권의 성공이 간절했고, 이 대표는 총선 압승 이후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각자의 정치적 성과를 위해 상대방이 절실했다. 영수회담 이후 '채 상병 특검법'으로 서먹해진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양측의 발언을 재구성했다.
①尹의 결심 : "이 대표 도움 있어야 정권 성공"
"함 교수님, 좀 들어와 주세요."
윤석열 대통령
총선이 끝난 며칠 뒤 걸려온 윤 대통령의 전화가 시작이었다. 함 원장은 윤 대통령이 살던 서울 서초동의 이웃으로 오랜 연을 맺어왔다. 함 원장은 "이 대표와 평소 긴밀히 소통하는 임혁백 교수와 제가 막역한 사이라는 걸 알고 메신저로 낙점하신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를 만나야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윤 대통령은 작심한 듯 말을 꺼냈다고 한다. 취임 이후 2년간 8차례에 달하는 이 대표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을 때와 정반대로 달라진 태도였다. '답답함'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아무리 좋은 정책을 세워도 정치가 도와주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가 닿지 않는다는 걸 (이번 총선 결과를 통해) 깨달았다"고 했다. 강성 지지층과 참모들의 반대 때문에 그간 이 대표를 만나지 못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역대 대통령의 결단을 돌이켜보며 용기를 얻었다. 윤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 건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를 사례로 언급했다. 당장은 인기가 없고 지지층이 격렬히 반대하더라도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전임 대통령들과 역사적 산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윤 대통령은 강조했다고 한다. 의대 증원과 연금개혁 등을 거론하며 "남은 3년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이 대표와 국회, 정치의 도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진정성을 잘 전달해달라"고 당부했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영수회담 제안을 공식화한 것은 지난달 19일이다. 한국갤럽에서 발표한 대통령 지지율이 23%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지 불과 5시간여 뒤에 영수회담 소식을 들려왔다. 이를 두고 지지율이 추락한 윤 대통령이 떠밀려 회담에 나섰다는 해석이 파다했지만 함 원장은 "윤 대통령은 그전에 이미 이 대표를 만날 결심을 굳혔다"고 밝혔다.
②李의 책임감 : "YS, DJ 이후 막강한 野 대표, 무한 책임감"
이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총선 승리 민심을 제대로 받들고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과 만날 필요가 있었다. "YS와 DJ 이후 가장 막강한 야당 대표가 되시지 않았느냐"는 함 원장의 말에 이 대표는 "그렇게 느낀다. 무게감이 컸다"고 답했다.
임 명예교수는 "민주당(175석)을 넘어 범야권까지 합하면 192석을 안겨줬는데 이 대표나 저나 민심이 두렵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전했다. 그는 "큰 승리에는 그만한 큰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정권 심판으로 총선을 치렀지만 앞으로 정권심판만으로 표를 달라고 할수 있겠느냐. 위기에 빠진 민생을 챙기기 위해서는 공동으로 국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 대표도 동의했다고 한다.
특히 이 대표는 협치(協治)를 넘어 '공치(共治)'가 필요하다는 임 명예교수의 견해에 공감했다. "대통령이 시혜적 차원에서 야당과 협력하는 협치를 넘어, 대통령의 고유영역인 국방과 외교영역을 제외한 모든 민생영역을 공동으로 통치하고 책임지는 공치 (공동통치)에 나서야 한다"(임 명예교수)는 취지다. 임 명예교수는 공치를 위해서 정권심판론과 민생은 분리해야 한다는 일종의 '정경분리론'을 강조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 실정을 겨냥한 '이채양명주'는 특검 등으로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고, 민생 공치를 확대시키는데 이 대표도 공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임 명예교수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간에 전국정상회의(National Summit Meeting)를 만들어 공치를 제도화해야한다"고도 주장했다.
③밀당의 고수들 : 尹 "총리 추천 해달라" 李 "의미 없다, 다른 신뢰 보여라"
윤 대통령은 '국정의 동반자' 이 대표에게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①국무총리 인사 추천 ②이 대표와 핫라인 구축 ③여야정 협의체 등 3가지를 먼저 꺼냈다. 특히 인사와 관련 "서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총리 인사를 하지 않겠다", "보수 지지층을 고려해 야권 내에서도 중도성향의 인사를 총리로 추천해 달라", "몇 분을 알려주면 미리 검증해 영수회담 테이블에서 결정해 보자" 등 폭넓게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표 반응은 시큰둥했다. '국정기조' 전환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처럼 그립이 센 분 밑에서는 허수아비 총리를 임명해 봤자 의미가 없다"는 취지였다고 임 명예교수는 설명했다. 차기 총리 인선은 자연히 뒤로 밀렸다.
윤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서) 이 대표에게 불편한 인사를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에서 배제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이에 이 대표는 "경쟁은 많을수록 좋다"면서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 맞붙었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에 대해서는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관련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이라며 난색을 표시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허심탄회한 속내도 전했다. "이 대표 수사는 결국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된 것 아니냐", "영수회담이 쭉 이어져 앞으로 더 자주 만난다면 골프회동도 하고, 부부동반 모임도 하자"면서 각종 유화 제스처를 보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국정기조 전환이 먼저이고, 그에 상응하는 신뢰 회복 조치가 있어야 총리 추천 등을 협조할 수 있다고 맞받았다. 특히 이태원 참사와 채 상병 순직에 연루된 내각과 대통령실 인사들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인사조치에 대해 윤 대통령은 아직 아무런 답이 없다.
④또 만날까 : 李 "이태원법, 회담 때 발표했다면 尹에 더 도움"
윤 대통령은 영수회담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회담 직후 이 대표는 "답답하고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이틀 뒤인 1일 여야가 이태원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회담 후 첫 성과가 나왔다.
함 원장은 그날 저녁 이 대표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협치의 결과물이 나와 다행이다. 대통령께서 '독소조항을 제거하면 동의하겠다'고 한 발 더 나아가 말씀 주셨다면, (영수회담) 그 자리에서 합의 발표가 됐으면 대통령한테도 더 좋지 않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윤 대통령 의중은 함 원장과 임 명예교수를 통해 재차 이 대표에게 전달됐다. 함 원장은 윤 대통령 지시대로 이 대표 직통번호를 받아왔는데, 윤 대통령 휴대폰에 이미 '이재명 후보'로 번호가 저장돼 있었다고 한다. 이에 윤 대통령은 이름을 '이재명 대표'로 바꾸고 "앞으로 핫라인으로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실제 핫라인 가동 여부가 주목된다.
후속 영수회담 전망을 묻자 임 명예교수는 "윤 대통령이 검찰 공화국 기조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 이상, 이 대표 입장에선 어떻게 국정 기조 변화를 느끼고 신뢰가 회복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대통령실이 부활을 예고한 민정수석에 검찰 출신 인사를 기용하려는 움직임을 겨냥한 것이다. 이 대표는 "영수회담을 통해 정치의 지평을 넓혀 놓을수록 좋다"며 대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채상병 특검 반대, 검찰 출신 민정수석 임명 등을 보면, 대통령이 단기적 위기모면용으로 협치를 제안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우려를 전했다고 한다.
이에 함 원장은 "이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떨어진 게 차라리 잘됐다고 하더라. 야당 대표로서 국정 경험을 더 쌓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면서 "나라 걱정하는 마음은 모두 다 한마음"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만날 결심'을 우여곡절 끝에 실천한 만큼, 이제 좀 더 양보하며 '달라질 결심'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당부였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이민석 인턴 기자 minseok10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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