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민생지원금, 기본소득 실험 될까

주하은 기자 2024. 5. 7.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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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25만원 민생지원금이 총선 이후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인플레이션 우려부터 지급 대상 범위까지,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네 가지 쟁점을 토대로 민생지원금을 분석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17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경제 상황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여당의 참패로 끝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키워드는 ‘민생’이었다. ‘대파 한 단 875원’ 발언으로 상징되는 윤석열 정부의 민생 실책으로 정부 심판론에 불이 붙었고, 국민의힘은 108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총선이 마무리된 현재 정국을 주도하는 키워드 역시 민생이다. 먼저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한 쪽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다. 4월17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민생회복 긴급조치’를 공식 제안했다.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민생회복 지원금(민생지원금)’을 골자로 한다. 이 대표는 “말로만 민생 하지 마시고, 현장에서 고통받는 국민들의 삶에 진심으로 반응하고 대책을 강구하기 바란다”라고 정부와 여당의 협력을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민주당의 제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민생지원금은 ‘포퓰리즘’이며, 국가채무를 증가시켜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한다는 지적이다. 민생지원금이 물가를 자극해서 오히려 민생이 더 어려워질 것이란 비판도 나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민생지원금에 비판적 견해를 표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전 국민 지원’이라는 방식을 문제 삼았다. 일정 소득 기준 이하 국민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무차별적으로 모두에게 동일 액수를 지원하는 방식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생지원금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최초로 열릴 영수회담의 주요 의제로 논의되며 정국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의회 권력이라는 강한 뒷배를 가졌지만 정책을 실행할 행정적 수단이 없는 민주당과, 기존 정부 기조와 반대되는 정책임에도 총선 민심을 무시할 수 없는 정부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과연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 주장을 펴고 있을까. 네 가지 논점으로 나누어 살펴봤다.

■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는가

민생지원금을 둘러싼 주요 비판점 중 하나는 국가 재정 악화다. 민주당에 따르면 민생지원금 지급에는 총 13조원이 소요되는데, 재원 조달 방법으로는 국채 발행(정부가 돈을 빌린다는 의미)이 주로 제시된다. 구체적인 조달 방식에 따라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정부의 재정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불가피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국가부채 상승 부담을 이유로 들어 민생지원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4월19일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국가부채를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값)이 당장은 낮아 보이지만 앞으로 고령화에 따라 그 비율이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의 숫자만 보고 재정 상태를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라고 말했다.

2023년 국가 결산을 참고했을 때, 민생지원금으로 인한 추가적 정부지출이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정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36조8000억원이었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뺀다면 적자는 87조원으로 늘어난다. 대규모 세입 감소로 이미 재정적자에 빠진 상황에서 13조원 추가 재정지출은 적자 규모를 더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생지원금이 재정 부담을 더 늘릴 것’이라는 정부·여당 측의 주장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여당은 법인세·종합부동산세 감세 등 이른바 ‘부자 감세’로 재정적자를 자초했지만 감세의 기대 효과인 경기부양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나라살림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가 출범 1년간 단행한 세제개편으로 2028년까지 예상되는 세수 감소 규모는 89조원에 달한다.

민주당은 재정지출을 통해 종국적으로는 국세 수입이 늘어나는 ‘재정의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재정 확대로 경기를 부양하면 국민소득이 상승하면서 국세 수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민주당은 민생지원금으로 노리는 효과 중 하나가 ‘선순환’이라고 하면서도 이와 관련된 구체적 설명 자료는 내놓고 있지 않다. 예컨대 13조원을 일회성으로 지출한다고 해서 선순환이 이뤄질 것일지에 대해선 추상적 수준의 설명만 반복하고 있다.

■ 인플레이션 대응인가, 악화인가

민생지원금의 취지 중 하나는 최근의 인플레이션에 대항하는 것이다. 현재 민생이 어려워진 결정적 이유가 바로 물가상승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실질’소득은 2022년 3분기 이후 하락하거나, 아주 작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이에 더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인상으로 인해 가계 살림은 더욱 어려워졌다. 실질 가처분소득(실질소득에서 이자·세금 등을 제외하고 가계가 실제로 사용 가능한 금액)은 실질소득보다 더욱 가파르게 떨어졌다(〈그림 1〉 참조).

민생지원금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이 정책이 오히려 물가상승을 부추겨 민생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 사용 기한이 정해져 있는 지역화폐가 민생지원금으로 지급되면 가계는 소비를 늘리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수요가 확대되면서 물가가 더 상승한다는 시나리오다.

민생지원금 등 정부지출은 크든 작든 물가를 올릴 수 있다. 정부지출로 경기가 부양된다면 그 효과 중 하나가 물가인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물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지출(예컨대 민생지원금)을 늘리면 안 된다’는 식의 정부·여당 측 논리는 자가당착적인 측면이 있다. 정부가 물가상승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는 기름값이 지나치게 오르는 경우, 유류세를 낮춰 시민들의 소비를 보조해주는 처방을 사용해왔다. 받아야 할 세금을 받지 않는 것은 엄연한 정부지출이다. 최근에도 정부는 사과 등 농산물 가격이 오르자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되고 이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 자금을 무제한·무기한으로 투입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즉, ‘민생지원금이 물가를 올릴 것이므로 불가하다’는 반대 논리로 충분하지 않다. 우선 물가가 어느 정도 오를 수 있는지와 관련해 구체적 데이터와 합리적 모델에 기반한 과학적 추정이 필요하다. 물가인상의 폭이 경제 전반의 안정성을 해칠 정도로 예측된다면, 이 정책은 차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물가상승 폭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엔, 민생지원금이 어느 정도의 물가상승을 감안하더라도 추진할 만큼 사회적 편익이 큰지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 역시 민생지원금을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구체적인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정부·여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3월25일 경남 김해시 유세에서 이재명 대표는 “저희가 코로나 때 13조원 정도 부족한 금액을 지원했는데 동네 경기가 많이 활성화됐다. 그때 물가가 폭등해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나”라고 물었다. 하지만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던 팬데믹 시기와 2024년 현재를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당시는 강도 높은 거리두기 정책으로 인해 물가가 급격히 하락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원금이 가져올 경기부양 및 소상공인 지원 효과도 팬데믹 시기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재난지원금을 나누어주던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는 한계소비성향(추가 소득이 생겼을 때 그중 어느 정도를 소비하느냐를 나타낸 비율)이 유달리 높았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의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시기 한계소비성향은 약 70%를 기록했다. 100만원이 더 생겼다면 그중 70만원을 소비했다는 의미다. 이는 평상시 한계소비성향이 15~20%에 불과한 데 비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우 교수는 “지금의 한계소비성향은 높아봐야 40~50% 정도에 그칠 것이다. 당연히 정책의 효과도 팬데믹 시기보다 낮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전 국민 지급인가, 일부 지급인가

민생지원금이 가져올 비용 대비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빠질 수 없는 논의점은 지원금의 지급 범위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지급할지, 일부에 한정해 지급할지에 따라 소요되는 예산부터 소비 진작의 효과까지 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당초 민주당은 ‘전 국민 지원’이라는 방식을 제시하긴 했지만, 이를 필수 조건으로 내세우진 않았다. 지급 범위에 주안점을 둔 것은 정부 측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민생지원금을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이라며 강하게 비판했지만, 영수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실에서 “선별 지원이라면 논의 여지가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이 선별 지원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관심이 쏠리자 민주당은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4월24일 〈시사IN〉과 한 통화에서 “정책 사안들에 대해 얼마든지 협의 가능하다. 민생지원금은 복지정책이 아니다. 복지정책인 것처럼 전 국민 지원이니, 선별 지원이니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범위, 규모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은 영수회담 의제를 그것에 국한시키려는 수작이다”라고 말했다.

2020년 5월 전북 전주시의 한 상가에 재난지원금 사용 안내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시사IN 조남진

그러나 민주당의 입장은 단 하루 만에 정반대로 변했다. 4월25일 정책조정회의 모두발언에서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선별지원론은 본말을 전도한 주장”이라며 “전 국민에게 지급이 이루어져야 그 경제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엔 또 바뀐 입장을 내놨다. 진 정책위의장은 5월2일 정책조정회의 모두발언에서 “보편이든 선별이든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복지정책이 아니라 민생정책·경제정책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전 국민 지급을 포기할 수 있을까. 민생지원금 이슈를 주도한 이재명 대표의 과거 정책 행보를 봤을 때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재명 대표는 재난지원금 논쟁 당시 전 국민 지급을 밀어붙여 관철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상공인 등 일부에 한정한 지원을 주장했다. 일견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사이에서 선별 복지를 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보편적 복지의 원칙은 ‘필요에 따라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은 ‘보편적 복지’의 원칙을 지향한 것으로 볼 수 있다(〈시사IN〉 제697호 “‘이건희 손자 공짜 급식’과 재난지원금의 차이” 기사 참조).

반면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이재명 대표의 주장은 보편복지론이 아닌, 기본소득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재명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다양한 방법을 통해 기본소득 정책을 도입하려 시도했다. 경기도지사 시절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이란 이름으로 모든 경기도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은 당연한 결론이었다. 전 국민 지급을 제시한 민생지원금 역시 이재명 대표의 기본소득론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이재명 대표가 직접 나서 민생지원금이 기본소득 정책의 일환이라고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경제 책사’ 역할을 해왔던 경제학자들 역시 민생지원금을 기본소득의 맥락에서 읽어낸다. 제20대 대선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 캠프에서 정책조정단장을 맡았던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민생지원금으로 13조원 투입을 한다면 한국 경제가 얼마나 살아나는가 검증하고 평가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처럼, 경제가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기본소득 정책을) 실험할 수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민생지원금이 기본소득론과 맞닿아 있다면, 이에 대한 판단은 단순히 효과에 대한 검증을 넘어선다. 한국 사회가 기본소득을 추구해야 하는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재난지원금에 이어 기본소득론에 두 번째 검증 기회를 줘야 하는지의 문제가 된다.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1라운드였다면, 민생지원금 논쟁은 기본소득을 둘러싼 2라운드가 되는 셈이다.

재난지원금 논란 당시와 유사하게, 민주당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는 존재한다. 3월27일 CBS 라디오에 출연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에 생각을 같이한다”라면서도 “전 국민 대상보다는 소상공인이나 취약계층 등 어려운 계층을 좀 촘촘하고 더 두껍게 보호하는 것이 경기 진작이나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서 더 좋을 것이다”라며 전 국민 대상 지급에 사실상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 민생지원금, 지금 해도 괜찮을까

민생지원금 지급에 찬성한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논점은 남는다. 2024년 2분기 현재가 민생지원금을 지급하기에 적절한 시기냐는 의문이다. 먼저 근원물가가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는 점은 민생지원금 찬성 측에 설득력을 더한다. 경제 전반의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높지만, 변동성이 큰 식료품 및 에너지 품목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그림 2〉 참조). 이상 기온, 중동 분쟁 등 외생적 요인으로 인한 물가상승을 제외한다면 한국 물가는 꽤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생지원금이 물가를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높일 것이라는 우려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반대로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 갈등으로 인해 유가가 불안정하고, 환율이 치솟고 있는 상황은 민주당에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만약 민생지원금 지급 이후 외부 요인이 급변해 물가가 급격히 상승한다면 물가상승에 대한 화살이 전부 민생지원금에 돌려질 수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친 요인에 대한 대략적인 분석은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 민생지원금이 물가 불안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정치적 공방에서 민주당이 ‘덤터기’를 쓸 가능성도 있다.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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