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바둑, 10代 우승자 4년 넘게 ‘실종’
총 48명 중 10대는 10명뿐
10대(代) 세계 챔피언 시대는 끝난 것일까. 만 스무 살이 되기 전 세계 바둑 메이저봉(峰) 정상에 서는 ‘천재 소년’ 신화가 신진서를 끝으로 4년 넘게 감감 무소식이다.
4일 끝난 제5회 몽백합배서 우승, 통산 48번째 메이저 챔프로 등장한 리쉬안하오의 나이는 29세 3개월이다. 준우승자 당이페이 또한 내달 30번째 생일을 맞는다.
역대 세계 챔프 48명 중 10대 때 우승컵을 들어 올린 기사는 딱 10명이다. 이창호가 92년 제3회 동양증권배서 작성한 16세 5개월 29일이 역대 1호였다. 이 기록은 아직도 최연소 우승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별표 참조).
이창호에 이어 판팅위, 커제, 미위팅, 박정환, 박영훈, 셰얼하오, 이세돌, 구쯔하오가 16~19세 때 세계를 정복했다. 모두 천재 소년 소리를 들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거물이다.
이 영광을 이은 마지막 인물이 신진서다. 그가 2020년 2월 24회 LG배서 박정환을 꺾고 첫 정상에 오를 때 나이는 19세 10개월 26일. 이후 세계 대회 10대 우승자는 씨가 말랐다.
바둑은 나이와 상관관계가 큰 대표적 분야로 꼽힌다. 일찍 배워 어릴 때 입단하고, 10대 시절부터 국내외 타이틀을 쌓아가는 것을 최고 엘리트 코스로 여겨왔다. ‘10대 세계 제패’를 이룬 대가(大家)들이 실제로 이 과정을 밟았다.
이 패턴이 몇 년 전 무너지기 시작했다. 2017~ 2020년 구쯔하오, 셰얼하오, 신진서 등 3명을 배출한 이후 10대 우승자의 맥이 끊긴 것. 신민준 딩하오(이상 22세)로 높아지더니, 변상일(26세)과 리쉬안하오(29세)로 우승 연령이 급격히 치솟고 있다.
‘10대 챔프 실종 사태’는 왜 벌어졌을까. 김만수 8단은 AI(인공지능)를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창호·이세돌 등이 타고난 재능으로 독주하던 시대와 달리 요즘엔 AI의 힘을 빌린 20~30대 중견들의 정상권 잔류 기간이 대폭 연장됐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일각에선 영재들이 가치관 변화 속에서 다른 길을 택하는 비율이 높아진 탓으로 보기도 한다. 코로나가 남긴 폐쇄적 환경, 바둑계 전반에 몰아친 인프라 감축 등 여건 악화도 이유로 꼽힌다.
눈에 띄는 ‘뒷물결’도 별로 없다. 한국이 미래 자산으로 첫손에 꼽았던 한우진은 메이저 대회 본선도 몇 번 못 밟아보고 내달 20세 성년이 된다. 문민종은 이미 22세다. 2009~2011년 태어난 ‘병아리 프로’ 10여 명은 대부분 국내 대회 본선 구경조차 못 해봤다.
두꺼운 선수층을 자랑해 온 중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차세대 선두 주자로 꼽히던 왕싱하오와 투샤오위는 각각 2004년, 2003년생으로 ‘유통기한’을 넘겼다. 일본은 35세 이야마가 국내 3관왕에 복귀할 정도여서 10대 세계 챔프를 꿈꿀 처지가 못 된다. 바둑계 천재 소년 스토리가 현실 세계를 떠나 전설 영역으로 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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