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이 만든 핏빛 무덤… 종교인 학살 희생자 1700명 여전히 운다

서보범 기자 2024. 5. 7.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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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北 ‘종교인 학살’
70여 년 추념 없이 잊혀가
6·25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과 지방 좌익 등의 종교인 학살을 목격했던 이동문씨가 지난 2일 전남 영암군 상월교회 내에 세워진 순교자 추모비를 가리키고 있다. 그는 “여덟 살이던 그때, 죽창 들고 돌아다니는 빨치산과 마주칠까 봐 벌벌 떨었다”고 했다. /서보범 기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최근 6·25 전쟁을 전후로 북한 인민군, 좌익 세력 등에 의해 종교인 1700여 명이 학살된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반공 성향이 강하다는 이유로 희생됐다. 북한이 종교의 자유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탓도 있다. 본지는 학살 현장을 찾아 생존자와 유족의 얘기를 들었다. 이들은 “종교를 가졌단 이유만으로 무참히 학살당했던 70여 년 전 과거가 아직도 생생하다”며 “더욱 슬픈 건 아무도 이런 학살을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6시 충남 당진 합덕성당에서 만난 김태부(83)씨는 “6·25 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이 함락되면서 세상이 뒤집혔다”고 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1950년 9월 인민군 퇴각 당시 좌익 세력에 의해 살해당했다. 당시 아홉 살이었던 김씨는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버지 시신을 마주했던 당시가 생생하다”며 “마을 인근에 있던 ‘옷박골’에는 두 구덩이에 시신 70여 구가 널브러져 있었다”고 했다. 김씨 아버지의 시신은 구덩이 가장 안쪽에 있었다. 퇴각하던 인민군은 김씨 아버지를 비롯한 천주교도를 집단 학살했다고 한다.

그래픽=백형선

지난 1일 오후 1시쯤 찾은 전북 김제 수류성당에서는 빨치산에 의해 신도 50여 명이 학살당했다. 당시 열 살이었던 주민 손영일(84)씨는 “종교인들은 빨치산의 주적이었다”며 “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을 불태우고, 닥치는 대로 끌고 가 두들겨 팼다”고 했다. 손씨는 “빨치산은 저녁이면 산에서 내려와 자기들 세상인 양 민가를 태워버리고 곡식과 소, 닭 등 가축을 약탈해갔다”며 “주민들을 끌고 본인들이 사는 산에 데려가 노역을 시킨 뒤, 쓸모없어지면 죽이는 일도 많았다”고 했다.

지난 2일 오전 11시 영암군 상월교회에서 만난 이동문(82)씨는 “당숙네 일가족 18명이 하룻밤 새에 죽창에 찔려 학살당했다”고 했다. 이씨는 “하지만 이런 학살을 기억해주는 정부도 기관도 없다”며 “순교비도 마을에서 알아서 세우고, 별도 추모 사업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끼리 ‘이럴 거면 차라리 우리 군·경에 의해 죽었다고 하는 게 낫겠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전남 영광군은 전남 지역에서 종교인 피해가 가장 컸다. 본지가 입수한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결정서에 따르면 빨치산은 1950년 영광군 법성면 법성교회 목사 김모씨를 살해했고, 그의 장례를 치러준 가족들도 죽창으로 찔러 학살했다. 그해 염산면에선 달구지에 아이들을 태운 뒤 인근 저수지에 데려가 몸에 돌을 달고 수장시킨 일도 있었다고 한다. 전북 고창 선운사에선 1952년 국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주지였던 진병근씨가 빨치산에 의해 희생됐다.

하지만 이들 희생자에 대한 국가적인 추모는 없었다. 인민군·좌익 등에 의한 희생자 추모 사업은 주로 자유총연맹이나 지자체에서 산발적으로 해왔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종교인 집단 학살 확인을 계기로 국가 차원의 추모 사업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은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현행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는 6·25 전쟁 관련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배·보상 조항이 없다. 이 때문에 희생자·유가족은 우리 정부를 대상으로 민사 소송을 걸어왔는데 북한·좌익에 의한 희생은 모두 패소했다. 학살 주체가 북한이기 때문이다. 북한·좌익 희생자 구제를 위해서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은 지난 2022년 진실화해위에 ‘보상심의위원회’를 둔 뒤, 가해 주체를 가리지 않고 희생자 배·보상 문제를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야의 무관심으로 법안은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다. 통일부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진행한 뒤 북한 정부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도 있다. 하지만 통일부는 “배·보상 관련 법령을 제안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은 “6·25 전쟁 당시 적대 세력에 의해 학살된 종교인에 관한 조사가 마무리된 이후 보고서를 주무 부서인 통일부와 행정안전부 등에 발송하고 피해 구제 등을 권고할 예정”이라며 “공권력에 대한 희생과 마찬가지로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자에 대한 피해 보상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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