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보수 대통령’으로 당당했으면
구차한 해명 말고 정공법으로
보수가 부끄럽지 않게
보수 대표로서 당당하라
남은 기간 능동적으로
그래도 국민 시선 차갑다면
자리에 연연하지 말아야
4·10 총선은 우리에게 새삼 많은 것을 일깨워 줬다. 좌·우의 극명한 대결, 지역의 망국적 갈등, 온갖 범법 혐의자들의 금의환향, 그리고 김준혁과 양문석류(類)의 생환으로 상징되는 괴기한 선거였다. 평자(評者)들은 4·10 총선이 윤석열 정권의 실책과 윤 대통령의 불통에 대한 심판이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선거란 원래 상대적 심판이다. 많은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실망했다는데 그렇다면 그의 잘못이 범법자들과 그 아류들의 그것보다 더 심각했다는 말인가?
선거라면 으레 집권 세력이나 집권자를 비판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비판이 곧 민주주의의 정석이고 심판이 민주주의의 표현이라는, 교과서적 논리가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정책의 옳고 그름을 사리(事理)로 판단하기보다 행위, 말, 주변 상황 등에 휩쓸리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번 윤 정부에 대한 비판도 정책의 분야가 아니라 부인의 문제, 경제정책보다 대파값 같은 것에 휩쓸리는 것을 보였다. 이것을 좌파 의식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이번 총선에서 또 하나의 두드러진 현상은 지역 갈등 내지 지역 대립이다. 이번 선거는 유독 호남의 승리 또는 호남의 선택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호남 출신인 이낙연, 박용진, 임종석 등은 배제되고 경상도 출신인 이재명, 조국 등이 선택된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이런 지역적 쏠림 현상이 계속되는 한,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심각하게 변형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금’이고 ‘앞으로’다. 윤 대통령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를 지지했던 보수·우파 국민들은 허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기저기서 한탄-개탄의 소리가 들린다. 윤 대통령을 겨냥한 모욕적인 언사와 노골적인 분풀이(조국)가 다반사다. 보수층에서도 윤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있다. 여당에서조차 대통령의 무게가 가벼워진 분위기다.
윤 대통령은 보수 정권의 대통령이다. 사람들은 일단 대통령이 됐으면 국민의 대통령이지 어느 한쪽의 대통령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윤 대통령 자신도 당선된 뒤 ‘모두의 대통령’으로 행세하려고 협치(協治) 운운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좌파가 그를 협치의 상대로 받아준 적도 없다.
야당과 좌파의 공세에 대해 이런저런 구실과 핑계를 대며 무엇을 설명하고 해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듯한 언행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보수 대표로 보수가 부끄럽지 않게 당당했으면 한다. 예를 들어 그는 해병대 사건 특조위 문제에 무슨 설명을 한다는데 부디 구차하게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 ‘해명’에 매달리지 않고 정공법으로 맞서 받을 것 받았으면 한다. 윤 대통령이 수동적으로 변명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전체 국민 앞에 보수의 대표로서 당당한 자세를 보여줄 때 그는 좋은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법리(法理)를 잘 내세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문제에도 법과 절차를 따지고 법률가 출신답게 법리를 내세우는 데 익숙한 것 같다. 그가 오늘날 여러 역경을 겪는 주된 요인 중 하나는 의료 파행 사태에서 보았듯이 늘상 법리에만 치중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법치에만 매달리기보다 정리(政理)에 따라 정치를 해야 하는 자리다. 문재인 정권의 좌파 정치와 차별화를 위해 법치를 내세웠지만, 이제는 정치를 잃으면 법치도 가져올 수 없는 세상이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과 공동 패자(敗者)다. 엄밀히 따지면 이번 총선에서 심판받은 당사자는 대통령이라기보다 국민의힘이다. 그런 처지에 내부 총질이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번 총선에서 진 것이 대통령의 책임인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아직도 ‘친윤’ 어쩌고저쩌고하는데 솔직히 검사 이외에 공직 경험이 없는 윤 대통령은 친윤밖에 믿을 것이 없는 처지였다. 민주당이 사법적 리스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당대표를 위해 기꺼이 아스팔트에 나서며 반대투표를 하고 총알받이를 하는 것을 보고 윤 대통령은 그를 부러워했다는 얘기도 있다.
윤 대통령이 앞으로 남은 기간 능동적으로 그 ‘무엇’을 했음에도 국민의 차가운 시선이 거두어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나가야 한다. 대통령이면서 대통령 대우를 받지 못하고 야당의 모멸이 계속된다면 국정은 위험하다.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야당과 좌파의 파괴 공작이 계속되면 앞으로 3년은 암담하다. 긴박한 세계의 진화(進化) 속에 우리만 3년을 그렇게 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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