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평면의 미학, 은둔과 명상으로 펼치다

김여진 2024. 5. 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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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마틴 국내 첫 전시
8월 15일까지 강릉 솔올미술관
단색추상 대표 정상화 작품도
큐레이터에 전 테이트모던 관장
“아름다움과 순수의 완벽 추구”
로 아그네스 마틴 작 ‘아기들이 들어 오는 곳(순수한 사랑 시리즈)

“아름다움은 삶의 신비다. 그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 아름다움은 삶에 대한 확실한 감응이다(1989, 아그네스 마틴)”

강릉 솔올미술관 개관 후 두번째 전시가 현대미술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의 국내 첫 전시로 꾸며진다. 솔올미술관은 지난 4일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을 개막했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1912~2004)은 1950년대부터 미국 미술계의 주요 인물이 됐다. 절제된 방식으로 아름다움과 순수의 완벽성을 추구한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감동을 준다. 마틴과 미학적 대화를 나눌 한국 작가는 단색조 추상회화를 대표하는 정상화다. ‘In Dialog: 정상화’도 같은 기간 열린다. 마틴의 명상적 작업을 동양 사상에서 바라보고,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을 잇는 두번째 프로젝트다.

,객원 큐레이터를 맡은 프란시스 모리스 이화여대 석좌교수(왼쪽에서 두번째)가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전시를 설명하는 모습.

■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

옅은 색의 화면에 격자 무늬나 줄무늬가 고요하게 변주된다. 신비롭고 추상적이면서도 모호하다. 아그네스 마틴은 미니멀리스트로 불리지만 기계와 거리가 멀고, 수행하듯 손으로 만들어낸 작품 속 물성이 돋보인다.

솔올미술관은 마틴의 작품에 대해 “느리게 보는 기회를 선사한다”고 소개했다. 침묵, 부드럽게 흐려지는 테두리, 열정적 연필 자국 등 세심한 작업 과정을 고요하게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개인적 경험과 연결하는 것을 꺼리고, 음악을 듣듯 감상하기를 바랐다. 파도나 구름에서 느껴지는 반복·사색적이면서도, 시공을 초월하는 가운데 느끼는 행복. 이것이 마틴이 관객에게 ‘완벽의 순간들’을 선물하는 방식이다.

이번 전시는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국내 첫 미술관 전시인데다, 영국 테이트 모던 관장을 지낸 프란시스 모리스(Frances Morris) 이화여대 초빙석좌교수가 객원 큐레이터를 맡아 눈길을 끈다. 리움미술관, 일본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 미국 뉴욕 휘트니 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 및 해외 소장자들과의 협력으로 성사됐다.

전시작품 중에서 ‘어느 맑은 날에(On a clear day, 1973)’는 실크스크린 30점이 앙상블을 이룬다. 그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변해나갈지 알려주는 전환기적 작품이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까지 작업한 단색화 중 8점에서는 작품 크기와 색조, 질감, 기법 등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색과 선을 무한 반복·변주하며 화면의 ‘완벽함’을 추구한 마틴의 미학적 절정을 감상할 수 있다. 생애 마지막 10년 간 몰입했던 시리즈도 소개한다.

1999년 제작된 8점의 연작 ‘순수한 사랑’(Innocent Love)이다. 이들 주요 작품 54점과 함께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마틴의 글이 함께 하고, 별세 2년전 작업실에서 담은 메리 랜스의 다큐 ‘세상을 등지고(With my back to the world, 2002)’도 세미나실에서 상영된다. 은둔의 아이콘으로 불릴 만큼 작품에 대해 직접 설명한 적이 드문 작가로부터 “세상을 등지고 그림을 그린다”는 말을 직접 들을 수 있다.

정상화 작 ‘무제 017-10-25’

■ In Dialog: 정상화

대학 시절 선불교와 도교 사상을 접한 마틴이 순수한 정신성을 표현할 때, 한국에서는 아방가르드한 실험미술과 함께 단색화가 전개중이었고, 그 중심에 정상화가 있었다.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서 온 그의 기하학적 회화에서 마틴과의 미학적 유사성을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정상화 작품 중에서도 가장 절제된 ‘백색추상’ 대표작 등 13점을 선보인다. 하얀 고령토를 바른 캔버스를 주름잡듯 꺾은 후 금이 가면 뜯어 내 아크릴 물감으로 메우는 방식. 그 반복을 통해 무한대로 뻗어 나가는 정상화 고유의 평면을 볼 수 있다.

한편 이번 전시는 개관후 두번째 기획전이지만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의 미술관 위탁 종료에 따라재단의 마지막 기획전이 될 예정이어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개관전으로 현대미술의 아이콘 루치오 폰타나와 재일미술가 곽인식을 매칭, 진행한 전시에 2만 7000여명이 다녀가며 호응을 얻었다. 미술애호가인 방탄소년단 RM도 군대 휴가 중 방문해 주목받았었다.

 아그네스 마틴 작 ‘무제

김석모 관장은 “아그네스 마틴과 정상화라는 한국의 미술가가 미학적 소통을 하는 것이 솔올미술관의 정체성이자 전시의 핵심”이라며 “전시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가능한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한국 미술관의 새로운 지평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프란시스 모리스 교수는 “새로운 관객들에게 마틴의 작품을 처음 소개하게 돼 흥미롭다”며 “단순한 예술관 조망을 넘어 전시 타이틀처럼 핵심적 순간에 집중하면서 작품세계 본질에 다가가려 노력했다”고 했다. 이어 “마틴과 유사점이 매우 많은 정상화의 강력한 대화를 보여줄 수 있어 기쁘고, 청춘들이 작품을 잘 이해해 진가를 알아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여진·이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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