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신간] 은밀한 양극화: 엘리트 문화집단의 두 얼굴

이지은 기자 2024. 5. 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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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계급론」
야망계급 소비문화
은밀해진 계급 격차
지식 수준과 문화 자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계급 '야망계급'이 탄생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와 달리 물질적 소비보다 정신적 소비로 자신의 지위를 구분하고 싶어 한다. 이는 물질적 재화가 더 이상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획일적 기준이 아니라는 생각과 맞물려 있다.

웬만한 이들도 고급 브랜드 하나쯤은 갖는 시대에, 화려한 물건을 사는 과시적 소비로는 차별성을 갖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따라 지식 수준이나 문화 자본, 사회적·환경적 의식 등을 드러내는 소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1899년 출간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쓸모없고 별다른 기능도 없는 물질적 재화로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과시하는 부유하고 게으른 집단으로서 '유한계급'을 비판했다. 하지만 베블런 시대 이후 사회와 경제는 극적으로 변화했고,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소비도 달라졌다.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저서 「야망계급론」에서 "베블런이 말한 지배적 유한계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과거 유한계급의 자리에 새로운 '야망계급(Aspirational Class)'이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의 주요 개념을 이어받아 현대의 소비문화와 계급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저자는 "과거의 유한계급과 달리 야망계급은 고학력, 전문기술, 문화 자본을 바탕으로 경제적 사다리를 오르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는 건 소득 수준이 아닌 문화 수준"이라고 말한다.

야망계급의 성원 대다수가 교육을 받고 지식을 쌓기는 해도 반드시 경제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며, 여기엔 소득이 높지 않더라도 충분한 교양과 문화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이 새로운 엘리트 문화집단을 관통하는 특징은 지식 습득과 그에 기반한 가치관에 있다." 저자는 야망계급이 비슷한 지식을 습득하고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며, 그를 통해 집단적 의식을 구현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문화평론 읽기, 최신 뉴스 따라잡기, 유기농 식품 섭취 등은 경제적 수준과 무관하게 서로 연결되는 방법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식과 문화 자본은 환경을 어떻게 대할지, 어떻게 더 좋은 부모, 더 생산적인 노동자, 더 식견 있는 소비자가 될지 등에 관해 결정을 내리는 데 활용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주제는 "단순한 과시적 소비 대신 비과시적 소비에 참여하는 야망계급의 소비문화가 과거 유한계급의 물질적 재화 소비보다 훨씬 더 은밀하고 심각하게 계급 격차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가의 물건을 사거나 긴 휴가 대신 교육과 건강, 은퇴, 양육에 쏟는 투자가 훨씬 큰 비용이 들며, 결국 어떤 물질적 재화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계급을 구분 짓는다고 지적한다.

특히 교육 지출을 늘리는 상위 소득집단의 성향은 좋은 일자리와 높은 소득, 더 나은 미래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계급의 재생산을 보장하고 있다며, 결국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유의미한 결과를 안겨준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오늘날의 불평등은 단순한 경제적 격차가 아니라 전례 없는 심대한 문화적 격차"라며, 양육, 지식, 환경 의식 등 모호한 규범을 둘러싼 문화적 차이에도 그 이면엔 경제적 위치가 자리한다고 주장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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