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의 난제 ‘나노입자 구조’…AI로 예측해 신약·신소재 만든다 [교과서로 과학뉴스 읽기]

원호섭 기자(wonc@mk.co.kr) 2024. 5. 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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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오픈AI의 챗GPT가 등장한 이후 인공지능(AI)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 와는 또 다른 상황입니다. 당시만 해도 AI 열풍이 1년을 채 가지 못했었는데, 현재 불고 있는 AI 바람은 좀처럼 꺼질 줄을 모릅니다. 이제는 단지 AI를 개발하고 선보이는 데서 나아가 새로운 산업으로 적용이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AI인 ‘알파폴드’를 개발, 과학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대 재료공학부 남기태 교수와 전기정보공학부 김영민 교수 공동 연구진이 나노입자의 입체구조를 예측하는 AI 알고리즘을 개발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네이처 머티리얼즈’ 최신 호에 게재됐습니다. 나노입자 분야에서 AI가 어떻게 활용될지 살펴보겠습니다.

“원하는 나노입자를 만들어라”
브로모클로로플로오로메테인의 두 거울상 이성질체 [그림=위키]
신소재 개발 분야에서 핵심 난제 중 하나는 나노입자의 입체구조 예측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나노미터(nm, 1nm는 10억분의 1m) 크기의 물질은 형태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가지게 됩니다. 구조가 어떻게 생겼느냐에 따라 빛을 반사하기도 하고 흡수하기도 합니다. 특히 이렇게 작은 물체의 구조는 빛의 ‘편광’ 상태를 제어합니다. 편광이란 빛이 반사나 투과될 때 나타나는 전기적, 자기적 성질을 뜻합니다. 빛을 제어할 수 있다면 다양한 소자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디스플레이’를 꼽을 수 있습니다.

또한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하는 특성 역시 나노입자가 가진 구조가 큰 영향을 미칩니다. 태양 빛을 더 잘 흡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효율 높은 태양전지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도체, 배터리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소자들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 나노입자를 만들 수 있다면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나노입자를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을 이용했습니다. 이 원자, 저 원자를 여러 기체와 섞어서 합성해보기도 하고 연소시키기도 하면서 다양한 화학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나노입자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후 나노입자를 관찰하면서 원하는 구조를 찾아 나갔습니다. 원하는 나노입자 구조를 유도한다기보다는, 나노입자를 만든 뒤 구조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실험이 ‘맨땅에 헤딩’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를 들어 ‘정사면체’ 구조를 가진 나노입자를 만들고 싶다면, 다양한 원자, 분자를 이용해 나노입자를 만들고 난 뒤 구조를 관찰했습니다. 100번, 1000번 실험해도 원하는 구조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미징 전문가, 신소재 전문가가 만나 개발한 AI
이번 연구에 참여한 연구진. 앞줄 왼쪽부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장동수 석사(공동 제1저자), 서울대 재료공학부 임상원 박사(공동 제1저자), 뒷줄 왼쪽부터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김영민 교수(공동 교신저자), 서울대 재료공학부 남기태 교수(공동 교신저자) [사진=서울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 연구진은 AI를 활용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김영민 교수는 3차원 구조 이미징 분석 전문가입니다. 남기태 교수는 신소재 분야 국내 전문가입니다. 연구진은 기존에 과학자들이 알고 있던 나노입자 구조를 비롯해 합성법 등을 데이터로 AI에게 학습을 시킵니다. 그리고 AI가 학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A라는 원자와 B라는 원자를 결합하면 어떤 구조가 나올지 예측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입니다.

연구진은 이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작은 나노 입자가 성장하는 과정과 함께 ‘거울상 이성질체’로 입체구조가 나뉘는 과정을 예측하는 데 성공합니다. ‘카이랄 구조’라고도 불리는 거울상 이성질체란 왼손과 오른손처럼 회전을 통해서 겹쳐지지 않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남기태 교수는 “기존에는 원자 단위에서 나노입자의 성장과 모양 변화 이해는 매우 어려웠으나 AI 적용을 통해 빠르고 효과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됐다”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연구진은 현재 단계는 상당히 초기 성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나노입자의 구조를 100% 정확하게 예측한다기보다는 “A와 B, C를 합성하면 정팔면체 구조가 될 수 있다” 정도의 답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AI가 구조를 예측하면 실제 실험을 통해 정확한 예측을 했는지 확인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도 맨땅에 헤딩하는 기존 나노입자 합성과 비교하면 상당한 발전입니다. 남기태 교수는 “향후 AI의 분석 정확도를 높일 수 있도록 더 많은 연구를 해 나가겠다”라며 “개발된 AI를 기반으로 나노입자의 입체구조를 예측하고 자동으로 검증하는 플랫폼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I는 과학적 방법론에 새로운 지평을 열며 산업의 구조를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딥마인드의 알파폴드뿐 아니라 엔비디아는 단백질의 구조 분석과 세포와의 반응을 예측하는 신약개발플랫폼 ‘바이오니모’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바이오뿐 아니라 신소재 분야에서도 AI를 이용한 혁신은 이미 현재진행형입니다. 국내 연구진의 이번 성과도 향후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봅니다. 추가 연구가 이뤄지고, 더 많은 데이터가 쌓일수록 AI의 예측 정확도는 높아질 것이고 신소재의 구조를 예측하는 기술도 고도화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나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개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학교 3학년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가져오란 말이야.”  과학을 담당하는 기자가 선배들에게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입니다. 맞습니다. 과학·기술 기사는 어렵습니다. 과학·기술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내용을 풀어가다 보면 설명은 길어지고 말은 많아집니다. 핵심만 간결히 전달하지 않으면 또 혼나는데 말입니다. 이공계 출신인 제게 “문과생의 언어로 써라”라는 말을 하는 선배도 있었습니다.  혼나는 게 싫었습니다. 중3이 이해하는 언어로 기사를 쓰고 싶어 과학 교과서를 샀습니다.  그런데 웬걸, 교과서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많은 과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기억 안 나시죠. 중3 수준으로 기사를 쓰면, 더 어려운 기사가 됩니다.  과학기술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챗GPT, 유전자 가위, 반도체, 양자컴퓨터 등 이름만 들어도 머리 아픈 최신 기술이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모르면 도태될 것만 같습니다.  어려운 과학·기술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 교과서를 다시 꺼냈습니다.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최신 기술의 원리를 교과서에서 찾아 차근차근 연결해 보려 합니다. 최신 과학·기술은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 않았습니다. 교과서에 이미 모든 원리가 들어있으니까요.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적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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