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민주노총 들어선 ‘광주형 일자리’의 배신…‘사회적 대타협’ 공염불 되나

광주=김현지 기자 2024. 5. 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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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M 퇴사자만 200명 이상 추정…“부실 설계” “정치권 공적 쌓기” 지적도
근로자 “저임금·부당 노동행위 문제”…지역사회는  못마땅한 시선

(시사저널=광주=김현지 기자)

"무노조 합의 없었다, 노조 할 권리 보장하라." "희생만 강요하는 가짜 상생 필요없다."

국내 첫 지역상생형 일자리인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출범 5년 만에 위기를 드러냈다. GGM 노동조합이 2019년 사회적 대타협으로 일궈낸 약속을 뒤집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에 가입하면서다. 사용자와 근로자 위원 동수로 구성된 노사상생협의회가 각종 협상을 하기로 한 '신사협정'이 깨진 것이다. 올해부턴 민주노총이 임금 및 단체 협상을 맡게 됐다. '근로자의 날'인 5월1일 오전, GGM 노조와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구호가 광주광역시청 앞을 메웠다. 7월 첫 전기차 양산을 앞두고 노사 갈등이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

"터질 게 터졌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2014년 윤장현 광주시장의 제안으로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당시 정부와 광주시는 지역 일자리 유치를 위해 상대적 저임금을 내걸었다. GGM이 현대자동차의 차량을 위탁생산하는 대신, 35만 대 생산 전까지 '무(無)노조·무(無)파업'을 하자는 취지로도 약속했다. 이는 노·사·민·정(勞使民政) 대타협의 결과였다. 이와 관련해 "젊은 근로자들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제기됐지만 그대로 GGM이 출범했다. 실제로 그동안의 누적 퇴사자만 2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첫 지역형 일자리가 공염불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졌다.

광주 광산구 빛그린산단 광주글로벌모터스 공장 전경 ⓒ시사저널 김현지

GGM 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6월 단체교섭 '분수령'

4월29일 오전 11시경,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공기는 낮 최고기온이 30도까지 올랐던 전날과 달리 쌀쌀했다. 빛그린산업단지 내 광주글로벌모터스(GGM)는 빗줄기 속에 적막감만 감돌았다. 축구장 6개를 합친 넓이(1만4000평)의 본관 1층 조립공장. 이곳에선 현대자동차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 차틀과 부품 등을 옮기는 컨테이너 벨트가 쉼 없이 움직였다. 그 너머로는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들이 보였다. 이들은 자동차 부품을 본체에 조립하고 있었다. 좌석 시트를 고정하거나 문틀을 맞췄고, 부품을 옮겼다. 캐스퍼 차틀은 차체공장을 거쳐 도장공장에서 색이 입혀진다. 조립공장까지 거치면서 완성차로 변신한다. 이곳의 자동화율은 다른 공장(100%)과 달리 약 10%에 불과하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90%는 근로자들의 몫이다.

이날은 제1노동조합의 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입 투표 하루 전이다. 근로자들은 1~2월 차례로 1노조(광주글로벌모터스 노조)와 2노조(GGM 노조)를 결성했다. 2노조는 4월22일 금속노조 가입을 결의했고, 1노조만 남은 상황이었다. 노조의 요구는 회사의 부당 대우·저임금 등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1노조는 결국 4월30일 금속노조 가입을 결의했다. 온라인 투표 결과 조합원 중 92.3%가 찬성한 결과다. 조합원은 정확한 숫자가 공개되지 않고 있으나 절반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측은 "금속노조에 합류한 두 노조는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광주글로벌모터스지회로 통합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향후 단체협상 등은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맡을 예정이다. 이로써 법적 구속력은 없다지만 '무노조·무파업' 원칙의 신사협정이 파기됐다.

무색해진 신사협정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윤장현 광주시장이 광주형 일자리를 제안했다. 핵심은 이렇다. 회사는 상대적 저임금으로 근로자를 고용한다. 대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소득 부족분을 주거·문화·보육시설 등 공동 복지 프로그램으로 보전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독일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의 'AUTO(아우토) 5000' 프로젝트를 참고한 것이다. 독일은 2001년 당시 경기 침체로 자동차 생산량이 급감했다. 그러자 폭스바겐은 자회사 형태로 자본을 투자했다. 이를 통해 자동차 생산직의 80% 수준인 월급 5000마르크로 5000명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후보 시절 이를 공약으로 채택했다. 이후 2019년 GGM이 출범했다. 여기에 참여한 기업이 현대자동차다. 이용섭 당시 광주시장과 현대차는 2019년 1월31일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지속 창출을 위한 완성차 사업 투자협약서'에 합의했다. '노사상생발전 협정서' 등도 마련됐다. 여기에는 "신설법인 상생협의회 결정사항의 유효기간은 조기 경영안정 및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누적 생산목표대수 35만 대 달성 시까지로 한다"고 명시됐다. 쉽게 말해 '일정 기간 동안 무노조·무파업 하자'는 취지다. 현재 GGM의 차량 생산 대수는 누적 11만7000여 대에 불과하다.

사회적 대타협은 이제 무색해졌다. 절반 이상의 근로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독점적 협상권을 갖는다. 현재 노조 측은 정확한 조합원 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산업별 노동조합인 금속노조에는 현대차 등 400여 기업의 19만 명이 가입해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금속노조 관계자는 "'줄세우기' '내부 통제' 등 회사의 부당 행위 탓에 젊은 세대의 반발도 있었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상생협의회는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원칙 파기' 지적과 관련해선 "협정서 어디에도 '무노조' '무파업'이라는 단어는 없다"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노조 할 권리는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4월29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주글로벌모터스에서 열린 준공 기념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약속 파기" 지적에 "노조 할 권리는 당연한 것" 반박

이의 전조 증상은 있었다. GGM 측에 따르면 현재 근로자는 650여 명이다. 이는 GGM이 그동안 신규 채용한 근로자 872명(4월20일 기준)에 못 미친다. 확보 자료를 보면 신규 채용 현황은 설립 초기인 2019년 5명에서 2020년 140명, 2021년 456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2022년(140명)부터 2023년(73명), 2024년(58명) 등 감소세다. 이들의 약 80~90%는 광주·전남 출신이라고 한다. GGM의 지역 일자리 창출 효과는 이처럼 수치로도 엿보인다. 그러나 퇴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만 5년 새 200명이 넘는다. GGM 측은 "지난해 기준 퇴사율은 7.9%"라고 했다.

복잡한 속사정에도 회사 곳곳에는 '상생'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조립공장 벽면에는 "상생은 우리의 미래, 최고 품질은 우리의 자부심"이라고 적힌 파란색 현수막이 붙어있다. 회사 정문 입구에는 '상생의 일터'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온라인 투표 하루 전인 4월29일 오후 4시를 넘긴 시각, GGM 근로자들은 퇴근길을 재촉했다. 통근버스는 오후 4시30분을 넘기자 움직였다. 30분 이상을 가니 주거단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만난 김우영씨(가명·29)는 사회초년생이다. 김씨는 회사의 부당 행위를, 중간 허리급 연차의 다른 근로자는 광주시의 책임을 따졌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아래와 같다.

"회사의 목표는 5년간 35만 대 생산이다. 현재 11만7000대에 불과하다. 근로자들은 사정이 나아질 거란 약속을 믿었다. 주 44시간 기준 (입사 4년 차) 연봉은 3300만~3500만원 정도다. 다른 기업 대비 상대적 저임금에도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회사의 부당 노동행위도 문제다. 회사는 업무 중 안전상 문제를 이유로 휴대전화를 수거한다. 그러나 중간에 휴대전화가 없어지면 사유서를 쓰게 하고, 불합리한 조치를 한다. 광주시도 문제다. 근로자를 위한 주거단지 조성, 체육시설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회사와 시가 약속을 먼저 깼다."

광주광역시는 이를 반박했다. 시 관계자는 "주거단지 조성은 부지 선정 등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1~2년 내 불가능한 구조"라며 "초기부터 이를 설명했고, 대신 주거지원비 월 27만2000원(7월부터 30만원)이나 임대아파트 입주를 지원해 왔다"고 했다. GGM은 "앞으로 협정서를 준수하면서 직원들에게는 더 좋은 회사, 지역사회에는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회사가 되겠다"고만 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GGM은 현대차의 위탁생산 업체이기 때문에 물량을 자체적으로 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최초 지역상생형 일자리 기업인 광주글로벌모터스(GGM)의 조립공장 내부 ⓒ시사저널 김현지

전문가 "설계상 부실, 예고된 결과" 지적도

GGM의 변화를 지켜보는 지역사회의 시선은 따가운 편이다. 지역 일자리가 위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김상우씨(가명·28)는 "GGM을 현대나 기아 등 대기업 이직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경우도 물론 있다"면서도 "그러나 GGM 자체는 가뜩이나 지역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좋은 자리"라고 했다. 직장인 김성환씨(가명·47)는 "근로자들은 면접 때부터 이미 여러 조건을 인지하고 취업한 게 아닌가"라며 "지역 일자리를 위한 원칙을 깬 건 그들"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광주형 일자리 설계부터 부실했다는 것이다. 초기 논의 과정에 정통한 노동 전문가 A씨는 "GGM의 가치는 '연대·책임'"이라며 "그러나 젊은 근로자들이 이를 위해 상대적 저임금을 버틸 명분은 부족하다"고 했다. A씨는 "GGM은 현대차 위탁생산만을 담당하고, 나머지 광고·판매 등 전 과정은 현대차가 진행한다"며 "GGM이 스스로 비전을 추구할 역량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GGM 운영을 '약속 이행'에만 기대는 설계상 부실도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 B씨는 "독일 모델은 근로자도 지역 일자리의 필요성을 인식해 시작됐다"며 "반면 광주형 일자리는 지자체의 필요에 따라 제안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의 분수령은 오는 6월로 전망된다. 노조는 조합원 확대 이후 6월 단체교섭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GGM의 캐스퍼 전기차 양산(7월) 직전이다. 업계 안팎에선 현대차의 분위기도 주시하는 모습이다. GGM과 현대차는 매년 위탁생산과 관련한 계약을 진행한다. 노조의 움직임에 따라 계약 구조 변화, 현대차의 철수 가능성 등도 제기됐다. GGM 주주는 광주시 출자기관인 광주그린카진흥원(21%), 현대차(19%), 광주은행(11.3%), 산업은행(10.87%)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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