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금리 비중 늘리려 도입했는데… 자취 감춘 커버드본드

최온정 기자 2024. 5. 6.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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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2014년 커버드본드 도입… 2019년엔 발행 ‘붐’
2020년부터 인기 시들… “은행채보다 비용부담 커”
‘예대율 규제 완화’ 예고에도… “발행 늘기 어려울 듯”

정부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에서 고정금리 대출의 비중을 키우기 위해서 도입한 원화 커버드본드(covered bond·이중상환청구권)가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을 마지막으로 원화 커버드본드 신규 발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은행채와 비교해 발행기관에 주어지는 혜택이 적어 발행량이 늘어나기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 2020년 이후 원화 커버드본드 신규발행 ‘뚝’

6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원화 커버드본드는 2020년 우리은행이 발행한 5000억원을 마지막으로 신규 발행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누적 발행량은 KB국민은행이 4조1800억원으로 가장 많고, 우리은행 8000억원, 신한은행은 5000억원 순이다. 하나은행은 원화 커버드본드 발행 실적이 없다.

은행 대출 창구 모습. /뉴스1

커버드본드는 금융회사가 보유한 주택담보대출 등 우량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장기(만기 5년 이상) 담보부채권을 말한다. 채권 보유자는 발행자에 대한 상환청구권과 담보자산에 대한 우선변제권을 동시에 가져 안정성이 높은 자산으로 평가된다. 약 250년전 처음으로 도입됐으며, 유럽을 중심으로 활성화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장기 주담대 활성화를 위해 2014년 도입됐다. 장기 주담대를 늘려 은행의 조달 위험을 낮추고, 금융 소비자들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발행기관에 주어지는 혜택이 부족한 탓에 실적은 저조했다. 2019년 1월까지 국내 은행의 발행 실적은 4건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모두 외화로 발행돼 국내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

정부는 2019년 1월 커버드본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발행 확대를 독려했다. 먼저 커버드본드 잔액을 원화예수금으로 인정해주는 비율을 1%에서 더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은행은 예대율(원화대출금÷원화예수금×100)을 100 이하로 유지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커버드본드를 발행한 은행에 대해서는 발행잔액을 대출이 아닌 예수금으로 반영되도록 해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커버드본드를 발행할 때 지불해야하는 발행분담금 요율(4bp, 1bp=0.01%포인트)도 면제해 은행의 부담을 줄여줬다. 당초 커버드본드의 발행분담금 요율은 일반 은행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분담금 요율이 면제되면서 발행비용 측면에서는 커버드본드가 은행채보다 유리해졌다.

정부가 혜택을 늘린 이후 은행들 사이에서는 커버드본드 발행 붐이 잠시 일었다. KB국민은행은 2019년 5월 5000억원 규모의 원화 커버드본드를 국내 최초로 발행했고, 그 해 총 6차례 추가로 발행해 잔액을 2조1200억원으로 늘렸다. 이를 시작으로 SC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도 커버드본드 발행에 나섰다. 그러나 2020년을 마지막으로 원화 커버드본드는 자취를 감췄다.

◇ 비용부담 작지 않고 금융 소비자 관심도 저조

커버드본드의 수요가 빠르게 식은 이유로는 두 가지가 꼽힌다. 우선 은행채와 비교해 금리 매력이 크지 않다. 커버드본드는 은행의 신용과 기초자산의 가치를 모두 고려하므로 이론적으로는 은행채보다 조달금리가 낮아야 한다. 그러나 은행의 신용등급이 최고등급인 AAA를 기록하고 있어 조달금리가 이미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기초자산의 가치를 추가하더라도 금리가 더 낮아지기 어렵다는 의미다.

지난 5일 서울의 한 은행 앞에 내걸린 대출 현수막. /연합뉴스

또 고정금리 대출기간을 늘리더라도 이자가 올라서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기가 어렵다. 시중은행에서 취급하는 고정금리 대출은 5년간 금리를 고정한 후 6년째부터는 변동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만약 커버드본드를 발행해 30년간 고정금리를 유지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면 대출이자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반영해 더 높아져야 한다. 이는 대출상품의 금리 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요를 더욱더 위축시킬 수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장기의 금리 방향성을 보고 상품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당장 지불해야하는 이자에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정부는 예대율 규제를 완화해 커버드본드 발행을 활성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신진창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지난달 23일 금융연구원이 주최한 ‘한국의 가계부채 관리’ 심포지엄에 참석해 커버드본드 발행 관련 규제비율 완화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는 “특히 예대율 규제를 합리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어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연기금이나 보험사가 커버드본드를 인수할 수 있도록 커버드본드의 만기를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과거 발행된 커버드본드의 만기는 대부분 5년이다. 그러나 보험사와 연기금은 주로 10년 이상의 초장기물을 선호해 시장에서 소화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만기를 장기화하면 투자 유인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런 제도로도 커버드본드 발행량을 늘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국내 시중은행은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면서 “장기물 발행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소비자가 원하는 수준에 맞게 대출금리를 낮춰야 한다면, 선뜻 커버드본드를 발행할 은행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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