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요금 싸길래 질렀는데”…수수료가 더 비싸네, 이게 무슨 일 [Books]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5. 6.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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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패턴의 비밀 / 헤리 브리그널 지음 / 심태은 옮김 / 어크로스 펴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이 이용객으로 붐비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이승환 기자]
‘온라인 사기꾼’의 눈속임이 당신 지갑을 기만하고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여름휴가지를 결정할 시기가 왔다. 해외 출국을 원해 호텔 예약 사이트를 이용키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검색해보니 바다가 보이는 근사한 방이 1박에 99달러. 가성비가 좋다고 판단해 ‘2박’을 결정한 당신은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결제창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최종 결제액으로 200달러 남짓이 아닌, 무려 400달러가 뜬다. ‘이건 뭐지?’ 싶어 작은 글씨를 들여다보니 서비스 수수료 86달러, 처리 수수료 4.95달러에 청소비 70달러까지 붙었다. 도시세나 환경세는 그렇다 쳐도 수수료가 이렇게 높다니. 호텔 예약 사이트들은 죄다 이 모양이다.

처음 제시된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당신 탓일까. 아니면 당신이 기만을 당한 걸까.

신간 ‘다크패턴의 비밀’은 온라인 세계의 ‘기만적인 눈속임’을 정면으로 까발리는 책이다. 지난 2010년, 아무도 온라인 웹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횡행하는 ‘기업의 기만술’을 주목하지 않았던 때부터 이 문제를 연구한 저자의 책이다.

다크패턴이란 ‘사용자의 자율적 의사결정이나 선택을 방해하도록 설계된 인터페이스’를 뜻한다. 이제 다크패턴이란 용어가 통용되지만 저자는 이를 ‘거지 같은 디자인(asshole design)’으로 부르기를 원한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편향된 사고로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오류의 행동과학을 눈부신 기술발전과 결합해 ‘악용’하는 상술 때문이다. 사례들을 함께 살펴보자.

책에 따르면, 세계 최대 언론사인 N사는 온라인판 해지가 어렵기로 악명 높다. 버튼 클릭 몇 번으로 구독은 쉽지만, ‘구독 해지’를 누르면 ‘고객 서비스 번호’로 전화하라고 안내됐다. 전화를 걸어야 하나 싶어 채팅으로 해지하려는데 구독 해지에 ‘17분’이 걸렸다고 책은 전한다. N사 채팅 상담원은 이 과정에서 구독 해지 사유를 물었고, 마음을 돌리기 위한 대화를 시도했다. 저 상담원이 뭔 죄가 있겠는가. 매뉴얼대로 했을 뿐이니. 그래도 듣는 입장에선 ‘짜증’이 난다.

명저 ‘블랙 스완’를 쓴 나심 탈레브는 2020년 전기차로 유명한 T사에 항의 메일을 보냈다. 차량 업그레이드는 모바일 앱 구매가 가능한데, 앱 버튼이 잘못 눌려 결제가 돼버려서다. 탈레브는 환불을 요청했다. 그러나 ‘결제 화면에 업그레이드 환불 불가 문구가 있지 않느냐’는 답변을 받았다. 탈레브는 “사용자가 알아보기 매우 어렵게 작은 글씨로 돼 있었다”고 항변했다. 앱 결제는 ‘실수’로 누를 정도로 쉽게 해놓고, 정작 취소는 어렵게 해 시각적으로 방해한 대표 사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이럴 때 빠질 수 없다. 그의 캠프는 지난 대선후보 선거자금 모금 과정에서 환불 요청을 가장 많이 받았다. 지지자들은 결제 당시 ‘일시 후원’을 생각했는데 ‘매월 후원’으로 결제되도록 화면이 설계돼 있었다는 것. 매달 후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뒤늦게 인지한 후원자들이 거세게 항의했고, 그 결과 환불금은 1억2200만 달러였다. 조 바이든 캠프 후원금 환불액의 6배였다.

S사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할인가로 제품을 판다. 할인가가 적용되니 마치 당장이라도 사야할 것만 같은데, 자세히 보면 ‘할인가 적용 기한’이 없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그냥 할인가로 계속 파는 제품을 마치 특별히 할인해주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우리가 별 의심없이 접하는 또 다른 다크패턴도 있다. ‘000명의 사람들도 이 제품을 원합니다’, ‘같은 기간 이 지역의 숙소에서 숙박을 예약한 사람은 000명입니다’ 등의 홍보 글귀다. 따지고 보면 저 숫자는 진위 확인이 불가능하다. 또 별로 알 필요도 없다.

다크패턴은 현재 세계적인 화두다. 미국 연방통상위원회(FTC)는 다크패턴의 기만성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FTC는 “기업은 구독 서비스에 가입하는 것만큼 해지하는 것도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기조를 세웠다. 뉴스를 몇 초만 검색해보자.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도 같은 입장이다. 다크패턴 규제는 앞으로 더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인간의 지각을 ‘뻔뻔하게’ 조정하려드는 얄팍한 세태를 째려보는 이 책 ‘다크패턴의 비밀’은, 리처드 탈러가 제안했던 ‘넛지’와는 구별된다. 넛지는 타인의 행동을 부드럽게 유도하는 행동, 이를 통해 소비자의 구매를 이끌어내는 전략 뜻한다(넛지 마케팅). 저자는 다크패턴과 넛지를 구분하는데, 넛지는 인간 행동을 올바른 쪽으로 유도하지만 다크패턴은 사용자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점, 이로써 비이성적 선택을 내리게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원제 ‘Deceptive Patterns(기만적인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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