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은행이 토해낸 2.1조원, 과연 박수 칠 일인가

박병원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한국고간찰연구회 이사장 2024. 5. 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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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엔 앞다퉈 들어가지만
세계적 은행들, 한국선 잇단 철수
지난해엔 돈 많이 벌었다며
정부가 2.1조 토해내게 만들어
어떤 기업이든 돈 많이 벌어야
세금 많이 내고 일자리 창출
은행이 돈 버는 것 마땅찮아하면
우리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은행과 증권사들이 모여 있는 여의도 금융가 모습./조선일보 DB

은행들이 작년에 돈을 너무 많이 벌었다고 사면초가로 비난을 받았다. 소상공인들에게 대출금 2억원을 한도로 4% 초과분 금리의 90%를 되돌려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1.5조원, 그 외의 은행별 소상공인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약 6000억원, 합계 2.1조원에 달하는 이익을 포기해야 했다. 저축은행, 상호금융, 여신전업사 등 ‘이자 장사’를 하는 다른 중소금융사들도 유사한 ‘이자 반환’을 실시했다.

이와 같은 금융권의 민생금융지원방안은 은행 등이 자발적으로 시행한 것이라고 하는데 주주들이 은행장 등을 배임으로 고발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제도권 금융으로부터 대출받지 못해 훨씬 높은 이자의 사금융에 의존하는 더 어려운 사람들을 방치한 것도 형평에 맞지 않는 일이다.

어떤 기업이 돈을 많이 벌었느냐를 들인 밑천을 고려하지 않고 순이익 총액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상식 밖의 일이다. 은행들은 2007년에 15조원의 이익을 냈고 ROE(자기자본이익비율)는 14.6%였다. 2023년에 21.3조원의 이익을 냈지만 ROE는 7.9%에 불과했다. 자본금이 2007년 103조원에서 2023년 269조원으로 2.6배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추가로 투입한 밑천 166조원은 6.3조원, 3.8%의 이익밖에 내지 못한 셈이다.

이익이 난 해만 보는 것도 참 무식한 일이다. 은행권의 ROE는 2013년에는 2.69%까지 떨어졌고 2014년에 약간 회복되었지만 2015년에는 다시 2.08%로 떨어졌다. 은행이 제대로 돈을 벌고 있는가는 이런 부진한 해를 포함해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국제비교를 해 보면 2013~2022년 평균으로 한국 은행들의 ROE는 5.2%로 미국의 10.2%, 싱가포르의 10.8%의 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만 길고 넓게 보면 한국의 은행들은 돈을 못 버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반도체, 자동차 등 제조업은 물론 증권, 보험 등 다른 금융업에 비해서도 고질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는 주가가 그 증거다. 주가이익비율(PER)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거래소 100대 기업 평균의 반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특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늘어난 주식투자자(펀드를 통한 간접투자까지 감안하면 이제 주가는 전 국민의 관심사다)를 의식한 것인지 정부 여당은 총선 직전부터 주가 띄우기에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배당 촉진, 자사주 매입 및 소각 장려 같은 방법보다는 주가의 근본인 기업의 수익성을 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부터 실천에 옮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민생금융지원방안 2.1조원의 25% 정도는 정부가 세금으로 거두어 갈 돈이지만 나머지는 주주의 돈이다. 이 돈을 주주의 동의도 받지 않고 소상공인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한 한국 주식의 저평가는 오래갈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이 은행이 돈을 버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이런 풍토 때문에 우리는 더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무릇 경제정책의 최종 목표는 좋은 일자리 창출이고 그것은 오직 국내외 투자 유치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금융권의 일자리는 비교적 좋은 일자리로 인정받고 있다. 2000년대 초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을 동북아 국제금융중심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우리나라에는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들이 새로 들어 오기는커녕 적지 않은 기업이 철수하였다. 소매금융만 보더라도 HSBC, RBS, BBVA, Barclays, UBS, CITI 등이 한국에서의 영업을 접었다. 한국에서 은행업을 해서 다른 어느 나라에서 하는 것 못지않게 돈을 벌 수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같은 시기에 MENA(중동, 북아프리카)의 국제 금융중심을 표방한 두바이는 세계 20대 은행 중에 17개, 10대 자산운용사 중에 5개, 10대 보험사 중에 5개, 10대 로펌 중에 4개를 새로 유치하였다. 금융 중심을 만들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교통, 교육, 의료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기까지 하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면 싱가포르, 아일랜드처럼 금융 등 고급 서비스산업에서의 외국인투자 유치로 세계 1, 2위를 다투는 부국을 이룬 나라들도 있다.

벌써 20년 가까이 이 나라는 젊은이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 창출에 실패하고 있고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해서 나라가 소멸 위기에 있다. 어떤 기업이든 돈을 많이 벌면 세금을 많이 내고 일자리를 만든다. 경제, 금융을 좀 안다는 경제신문들이라도 돈 버는 기업 편을 들어주면 좋겠다.

박병원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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