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김민기

기자 2024. 5. 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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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겐 다만 조금 귀찮은 존재였을 뿐/ 세상 무엇과도 아무 인연 맺지 못하고/ 버려졌던 그녀 삶에 무섭도록 소름 끼치는/ 우리의 이 무관심…// 말 한 마디도 없이 멀리 떠나 버렸네/ 딴 세상을 사는 듯 가까이 할 수도 없었어/ 절망 속에 살면서도 뭔가 꿈을 꿨지만/ 어디서 그런 아름다운 꿈을 찾을 수가 있었겠어.”

학전 소극장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인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나오는 ‘가버린 그녀’의 노랫말 일부다. 김민기(사진)는 독일 작품을 가져다가 상당 부분 다듬어서 서울로 옮겨 놨다. 그 주인공들은 서울에 온 연변처녀, 지하도 걸인들, 여자를 등쳐먹는 제비, 혼혈의 고아, 청량리 588의 창녀 등 한결같이 인생의 ‘뒷것’들이었다. 한 번도 빛나는 인생이었던 적이 없는 우리의 이웃들을 김민기는 따스한 마음으로 품에 안았다. 사이비 교주, 자해 공갈범까지도 그에게는 애린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상이었다.

1970년대부터 김민기는 공장 노동자, 기지촌 창녀, 혼혈아, 늙은 군인 등을 작품 속에서 보듬었다. 다른 이들이 모두 화려한 조명 속으로 달려갈 때 늘 조명 뒤에서 수줍게 웃을 뿐이었다.

‘학전의 농부’ 김민기 덕분에 설경구, 황정민, 장현성, 이정은, 안내상, 이종혁, 김대명 등 진정성을 가진 연기자들의 오늘이 있다. 김광석, 박학기, 장필순, 강산에, 김현철, 윤도현 등 사람냄새 나는 노래꾼들도 그의 영향력 아래 있다.

3부작으로 방송된 <SBS 스페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편을 보면서 진정한 거인의 모습을 봤다. “여러 갈래 길/ 누가 말하나/ 이길 뿐이라고”로 시작되는 ‘길’(1971년)을 통해 김민기는 일찌감치 자신이 걸어갈 길을 정한 듯하다. 그리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왔다. 그의 고향 같은 학전이 문을 닫았지만 그의 길은 앞으로도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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