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집권 보수당 참패... 11개 시장 자리 중 겨우 1석 건져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4. 5. 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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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가운데)가 5일 영국 중부 맨스필드에서 열린 지방선거 후 집회에서 새로 당선된 이스트 미들랜즈 시장 클레어 워드와 함께 연설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영국 집권 보수당이 2일 벌어진 지방선거에서 40여 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중대 위기를 맞았다. 이번 선거에서 11개 직선 광역 단체장 중 보수당은 한 곳만 얻어 열 개를 차지한 노동당에 참패했다. 107개 지방의회 선거에서는 473석을 잃으며 의원수가 기존 989석에서 513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는 노동당(1140석)은 물론 자유민주당(521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보수당이 지방의회에서 제3당으로 밀려난 것은 1996년 이후 28년 만이다. 보수당은 득표율에서도 역대 최저 수준(25%)으로 노동당의 34%에 크게 밀렸다.

윈스턴 처칠·마거릿 대처 등 세계적 지도자를 배출하며 자유주의의 요람으로 명성을 떨치던 정당으로는 전례를 찾기 힘든 굴욕적 패배라는 평가 속에 ‘보수당 위기론’도 확산하고 있다. 대승을 거둔 노동당은 보수당 당수인 리시 수낙 총리를 겨냥해 “조기 총선을 실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영국 매체들은 보수당의 선거 참패 요인으로 경제·이민 문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역효과, 당내 분열과 추문 등을 꼽으며 “누적된 불만이 향후 총선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의 문제점을 고치지 않을 경우 정권을 내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픽=송윤혜

①물가 급등, 의료 개혁 실패

보수당의 몰락 원인으로 예외없이 지적되는 것이 먹고사는 문제다. 신종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약 2년간 영국 경제는 8~10%대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전기·가스 요금이 두 배 이상 폭등했고, 먹거리 물가도 급등했다. 물가 상승률은 올 들어 3~4%대로 떨어졌지만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연 5%대 고금리 상황도 계속되면서 국민의 생활고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장바구니 민심’의 악화를 피해가지 못한 셈이다. 의료 개혁 실패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국민 건강 서비스(NHS)는 간단한 진료도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보수당 정부는 벌써 수년째 “의사와 간호사를 대폭 충원하고 의료 시설 개선에도 대대적 투자를 하겠다”고 공언해왔지만, 여전히 가시적 성과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영국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영국의 의료 문제 연구소 너필드 트러스트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난해 영국 제약 회사들이 발표한 의약품 재고 부족 경고가 1643건으로 나타나 2020년(648건)의 2.5배가량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②보수당이 이끈 브렉시트의 역효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시절인 2016년 국민투표로 브렉시트가 결정되고 유럽연합(EU)과의 지루한 협상 끝에 보리스 존슨 총리 임기이던 2020년 말 탈퇴 절차를 마무리했다. 보수당 정권이 어렵게 브렉시트를 완결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중도층 지지를 크게 잃었다. 보수당은 “영국이 EU의 규제 때문에 수많은 경제적 기회를 놓치고 있다”며 브렉시트의 당위성을 주장한 바 있다. 무역과 산업 등 경제정책에서 영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일각에선 동유럽 EU 국가에서 밀려온 이민자들이 영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영국은 브렉시트 후 한국·일본·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과 독자적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글로벌 투자 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얻지 못했다. 영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은 여전히 EU다. 동유럽 이민자들이 떠난 자리는 결국 인도·파키스탄, 아프리카 등 구(舊)식민지 출신이 채웠다. 오히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민자는 더 늘어난 상황이다.

③보수당 내 분열과 지도부 불신

최근 보수당 정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보수 정권은 도덕적이고 유능하다는 통념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우선 존슨 전 총리의 이른바 ‘파티 게이트’를 시작으로 보수당은 심각한 내분과 함께 국민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파티 게이트’는 존슨이 총리 재임 중이던 2021년 코로나 봉쇄 기간에 총리실 직원들과 함께 술판을 벌여 놓고도 “나는 몰랐다”며 거짓말로 부인하면서 벌어진 스캔들이다. 이로 인해 보수당은 브렉시트 강경 보수파를 중심으로 한 존슨 지지 세력과 현 총리인 수낙 총리를 중심으로 한 개혁파로 갈라지며 갈등이 표면화했다. 파티 게이트 파문으로 물러난 존슨의 뒤를 이은 리즈 트러스 총리는 무리한 감세안 추진에 따른 금융시장 대혼란을 초래하며 결국 49일 만에 사퇴,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가 됐다. 이는 보수당에 대한 실망이 더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④수낙 총리의 인기 하락

영국 역사상 첫 비(非)백인 총리로 중도층과 젊은 유권자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았던 수낙의 개인적 인기마저 급속히 쇠퇴했다. 2022년 10월 총리 취임 직후 수낙의 지지율은 30%대 후반을 기록, 이미 20%대로 추락했던 보수당 지지율보다 확연히 높았다. 하지만 이후 수낙 총리의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하락, 현재는 당 지지율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밑돌고 있다. 인권유린 논란 속에서도 망명 신청자를 아프리카 르완다로 보내는 정책, 2009년 이후 출생 세대는 담배를 사지 못하게 하는 강제 금연 정책, 과다 비용을 이유로 런던과 맨체스터 간 고속철도 노선을 일부 취소한 결정 등 논란의 정책들을 밀어붙이면서 지지율 하락을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런 측면이 인도계 총리에게 부정적이었던 보수적 백인 유권자들을 더 돌아서게 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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