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 유치 위한 최소조건 … K칩스법 연장해야" 87%

김정환 기자(flame@mk.co.kr), 홍혜진 기자(honghong@mk.co.kr) 2024. 5. 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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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현안 긴급설문
반도체·2차전지 핵심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 뿌리는 경쟁국
韓, 재정부담에 도입 지지부진
국내외 투자 역차별 해소 시급
산은 통한 저리대출·지분투자
정책금융으로 우회로 뚫어야

◆ 상경대 교수 설문조사 ◆

상경대 교수들은 차세대 산업 유치가 경제 안보의 핵심 축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반도체, 2차전지 등 핵심 기술에 대한 투자 지원이 늦어질 경우 국내 산업 경쟁력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국, 일본을 비롯한 경쟁국이 반도체·2차전지 투자분에 대해 공격적인 보조금 지원에 나서며 투자금을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일몰을 맞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연장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했다. K칩스법은 반도체·2차전지·전기차 등 국가전략기술에 시설투자를 하면 15~25%의 세금을 돌려주는 제도로 올해까지만 적용된다.

5일 매일경제가 주요 4년제 상경계열 대학 교수 110명을 대상으로 기업 경영 현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교수 10명 중 9명(87%)은 "K칩스법 일몰 연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K칩스법 연장이 필요 없다는 의견은 12%에 그쳤다.

재계에서는 K칩스법을 첨단 기업 투자를 국내에 붙잡아두기 위한 최소 요건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전략 산업에 대해 설비투자액의 5~15%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투자액의 25%도 공제해준다. 일본은 투자액의 3분의 1을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실제 최근 미국은 텍사스주 테일러시 반도체 공장 건설에 4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삼성전자에 인텔, TSMC에 이어 역대 3번째로 많은 64억달러(약 8조9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일본도 구마모토에 1~2공장을 짓는 TSMC에 각각 4760억엔(약 4조2000억원)과 7300억엔(약 6조5000억원)의 보조금을 줬다. 반면 한국은 K칩스법 외에 별도로 지원하는 보조금이 없다.

문제는 미국, 일본을 비롯한 경쟁국이 첨단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액공제 혜택에 더해 막대한 보조금까지 지원하며 한국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는 점이다. K칩스법 일시 연장만으로는 글로벌 산업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미국은 주 정부까지 나서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과 용지를 과감하게 제공하고 있다"며 "첨단산업 유치 경쟁이 격화하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도 반도체 보조금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반도체 경쟁력을 잃으면 국가적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보조금을 비롯한 여러 지원책을 폭넓게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과거에는 국제사회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안에서 정부 보조금을 지양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제 그 질서가 사실상 무너졌고 각국에서 자국 산업을 키우기 위한 여러 형태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한·미·일 첨단산업 지원 정책을 비교한 결과 정부 구상대로 올해 K칩스법 일몰이 연장된다 하더라도 보조금에 준하는 인센티브가 없다면 국내외 투자 역차별은 더 심해질 것으로 분석됐다.

한경협은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표 기업이 지난해 한국에 투자한 몫(설비투자 추정액·66조원)만큼 미국과 일본에 투자했다면 한국에 투자했을 때보다 11조2000억~13조7000억원의 지원금을 더 받았을 것으로 추산했다.

만약 K칩스법이 올해 일몰된다면 이 격차는 더 커진다. K칩스법 폐기 시 한국과 미국·일본 간 첨단산업 지원 격차는 17조2000억~19조7000억원으로 벌어진다. 안 교수는 "기업의 장기적인 투자계획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면 K칩스법 연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K칩스법 3년 연장을 추진하며 첨단산업 특화단지 기반시설을 구축할 때 국비 지원율을 5~10%포인트 올리고, 내년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바이오를 비롯한 4대 첨단산업 연구개발(R&D) 예산을 10% 증액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직접 보조금 지원에는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다. KDB산업은행 증자를 통해 반도체 등 첨단산업 기업에 저리 대출해주거나 지분 투자를 하는 방식의 우회로를 뚫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학계에서는 반도체 R&D 강화와 고급 인력 양성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병태 KAIST 경영학부 교수는 "근본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R&D 투자를 강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역설했다. 안 교수는 "반도체업계에서는 박사급 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정부가 나서서 장학금을 지원하는 방식 등으로 고급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이 해외로 나가기보다 국내에서 R&D에 힘쓸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정환 기자 /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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