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부리딱따구리, 너 정말 멸종했니?

한겨레21 2024. 5. 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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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행성조사반][남종영의 엉망진창행성조사반] 미 정부·학계 80년간 오락가락 선언 번복… 사라져버린 동물들을 기억하기 위한 발버둥
1935년 찍힌 흰부리딱따구리 모습. 위키미디어코먼스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어요. “80년 전 멸종된 흰부리딱따구리가 미국에서 발견됐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나는 조직의 내부에 있는 사람입니다. 딱따구리는 ‘네스호의 괴물’과 연결돼 있어요. 혹세무민하는 거대한 사기극을 밝혀주십시오. 제보자 K.”

박제·깃털 장식… 동물 수난사

“이거 무슨 말이죠?”

“딱따구리와 네스호의 괴물이라니… 기이한 조합이군.”

홈스가 창문을 닫으며 말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어요. 6월에 시작한 마른장마가 벌써 두 달을 지나고 있었죠.

“우선 흰부리딱따구리부터 알아봐야겠군요.”

딱따구리는 딱따구리목 딱따구리과에 속한 240종의 새들입니다. 부리로 나무를 쪼아 벌레를 잡고, 나무를 두들겨 만든 구멍으로 나무 속에 둥지를 만드는 특징이 있죠. 그중에서도 흰부리딱따구리는 미국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새입니다. 멸종위기종의 대표 선수로, 언제 발견될지 기약이 없습니다. 흰부리딱따구리 개체수가 급격하게 감소한 이유는 19세기 들어 숲이 파헤쳐지고 무자비한 남획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19세기는 분류학의 시대였어요. 야생동식물을 발견해 기록하고 이름을 짓는 데 열정을 쏟았던 시대였죠. “잡은 것은 역사, 놓친 것은 수수께끼인 시대”였습니다. 수집가는 물론 중산층도 집안에 박제를 들여놓는 데 열을 올렸어요. 당연히 생물종이 희귀해질수록 수요는 더 늘어났죠. 지금으로 치면 미술 수집가들이 고흐의 작품을 모으듯이 희귀종의 박제를 모았다고 보면 돼요.

새들의 멸종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모자 깃털 장식이었죠. 나폴레옹과 후크 선장만 모자에 깃털을 꽂은 게 아니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에게는 아름답고 이국적이고 희귀한 새의 깃털을 모자에 꽂는 게 우아함과 기품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죠.

왓슨이 신나서 설명했습니다. “19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억 마리의 새가 인간에 의해 살해당한 거 아시나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라고 칭송받던 ‘극락조’도 그렇게 사라진 거라고요. 미국에서 으뜸은 흰부리딱 따구리였어요. 멸종 직전이라 깃털을 구하기 힘들었거든요. 이런 새들은 중산층이 하고 다니는 한낱 백로 깃털과는 품격이 다른, 모자 깃털계의 명품이었죠.”

“대통령 여사님이라면 디올 백 같은 명품 가방 대신에 흰부리딱 따구리 깃털을 수집하는 데 열심이었겠군.”

왓슨이 깜짝 놀라 홈스 반장에게 뛰어가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반장님, 가방이 아니라 ‘작은 파우치’예요!”

암컷이 돌아오면 수컷이 나가는 식으로 흰부리딱따구리는 둥지를 지킨다. 1935년 4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싱어 트랙트에서 아서 앨런이 찍었다. 위키미디어코먼스

공식 관찰 기록은 1944년… 잡히지 않는 생존 증거

흰부리딱따구리의 공식 관찰 기록은 1944년이 마지막입니다. 지난 80년 동안 목격담이 끊임없이 나돌았지만, 확인해보면 확실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어요. 최근까지 ‘목격담 전파 → 기대와 흥분 → 전문가 조사 → 증거 없음’의 루틴이 반복됐죠. 미국 정부는 결자해지하기로 해요. 2021년 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USFWS)이 멸종위기종 목록에서 흰부리딱 따구리를 제외하겠다고 발표한 거죠. ‘그간 충분히 노력했으니, 이제 멸종했다는 걸 받아들이자’는 뜻이었어요.

찬반이 엇갈렸어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흰부리딱따구리 조사를 위해 2030만달러의 연방 및 주 정부 자금을 지출했다. 이 돈을 다른 생태 보전 사업에 썼다면, 잘 알려지지 않은 멸종위기종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합리적이다.”

반대하는 쪽은 ‘그럼, 흰부리딱따구리를 찾아보자’고 나섰죠. 과연, 2023년 학술 전문지 <생태와 진화>에는 ‘흰부리딱따구리의 생존을 시사하는 여러 증거’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려요. 연구자들은 2012~2022년 조사의 검토를 통해 이 새가 간헐적이지만 반복적으로 관찰됐다며 “멸종을 선언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했죠.

결국 미국 정부는 후퇴했어요. 2023년 10월 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은 “의견의 상당한 불일치로 멸종 결정을 보류한다”고 밝혔죠. ‘오락가락 딱따구리 멸종사’를 다 들은 홈스 반장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가서 확인합시다. 멸종됐는지 안 됐는지.”

둘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한 숲으로 갔습니다. 딱따구리는 오래된 나무에 널찍한 둥지를 만들어요. 딱따구리가 먼 곳을 간 사이 다른 동물이 둥지를 차지하는 경우도 많죠. 그래도 딱따구리는 화내지 않고 이내 다른 집을 짓습니다. 자신을 숲의 주택공급자로 여기거든요. 둘은 딱따구리가 낸 구멍(둥지)을 하나하나 방문했습니다.

똑똑똑.

“흰부리딱따구리 아저씨 계십니까?”

“그 새는 할머니 적에도 없었던 전설의 새입니다. 난 빨간머리딱따구리요.”

열흘 넘게 온갖 나무의 둥지를 두드려봤지만, 흰부리딱 따구리는 없었어요. 홈스 반장이 체념한 듯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무 둥지 하나만 더 확인해봅시다.”

둥지에서 나온 네스호 괴물 사진

똑똑똑.

이번 둥지에선 대답이 없었어요. 조심스레 둥지 안을 살펴보니, 필기도구와 공책, 작은 카메라 그리고 유에스비(USB) 메모리가 있었죠.

“누군가 여기에 두고 간 거 같은데요. 이 메모리에는 뭐가 저장돼 있을까요?”

홈스와 왓슨은 메모리를 노트북에 연결했습니다. 놀랍게도 메모리에는 사진 수백 장이 들어 있었죠. 최근 이 숲에서 ‘흰부리딱 따구리’라고 주장됐던 희끄무레한 사진 여러 장도 들어 있었어요. 왓슨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습니다.

“반장님, 그런데 이 사진들은 뭐죠?”

홈스와 왓슨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어두운 호수에 고개를 내민 공룡 형상의 동물 같았죠.

“이건 네스호에 사는 괴물, 네시 아닌가?”

며칠 뒤 영국 스코틀랜드의 네스호.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은 구불구불한 호숫가를 운전하고 있었죠. 안개 낀 호수와 언덕에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홈스 반장이 투덜댔습니다.

“내일도 또 비가 온다니… 네스호의 괴물을 보기는 글렀군.”

“그럼, 맑은 날씨에는 네스호의 괴물이 보이나요?”

1934년 영국 일간지 < 데일리 메일 >에 실린 네시 사진. 위키미디어코먼스

‘네스호 센터’(The Loch Ness Centre)에 도착했어요. 이 박물관에는 네시에 대한 목격담과 수색 작업의 역사가 전시돼 있었습니다. 1962년부터 1972년까지 정치인과 탐험가 등이 ‘네스호 현상 조사국’(Loch Ness Phenomena Investigation Bureau)을 결성해 네시를 수색했죠. 2003년에는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 등이 600개의 수중음파탐지장치를 사용해 조사에 나섰어요. 그 뒤에도 호수 물고기의 디엔에이(DNA)를 조사하고, 호수 밑바닥 지형을 매핑하고, 드론을 이용해 열화상 촬영도 했습니다. 결과는 매번 ‘확실한 증거 없음’이었습니다.

박물관 바깥에 나오니, 아주 작은 노란 잠수정이 있었습니다. 브로슈어를 읽은 왓슨이 아는 체를 했습니다.

“1960년대에 네시 탐사를 위해 만들어진 잠수정 ‘바이퍼피시’예요.”

“그런데 무슨 소리 같은 게 들리지 않나?”

울타리를 넘어 잠수정 안으로 들어가자, 아래에 바닥 문이 보였습니다.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자 사람 소리가 들렸습니다. 작은 지하실에서 여남은 명이 회의하고 있었습니다! 둘은 걸음을 멈추고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이번 흰부리딱따구리 작전은 완전히 성공입니다.”

“미국 정부가 움직였습니다. 100년도 전에 로버트 윌슨 박사가 창립한 이래 우리 비밀조직이 만들어낸 최대 성과입니다.”

뭉툭한 둔기가 홈스와 왓슨을 내리쳤습니다. 둘은 정신을 잃었습니다.

모두 멸종하면 지구의 미래도 ‘멸종’

“괜찮습니까? 무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홈스와 왓슨이 눈을 떠보니, 백발의 노인이 앞에 있었습니다. 박물관 전시물의 사진에서 자주 등장했던 사람으로, 거의 모든 네시 탐사 작업에 끼어 있었죠.

“우리는 비밀조직 ‘노란 잠수함’입니다. 이미 멸종된 동물을 마치 멸종되지 않은 것처럼 소문을 퍼뜨리고 이미지를 확산하는 일을 하고 있소. 바로 전설적인 네시 사진을 찍었던 외과의사 로버트 윌슨이 노란 잠수함의 창립자요.”

“지금까지 네시의 가짜 목격담과 사진을 퍼뜨린 게 당신들이었군요?”

“윌슨은 ‘무엇이 없다’고 믿는 순간 희망이 사라진다고 생각했소. 신은 없다고,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사랑이란 호르몬의 작용일 뿐이라고 모든 사람이 믿으면 지구의 미래는 없소. 동물 종 하나하나를 영원과 절대의 자리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윌슨은 생각했소.”

“네시 말고도 다른 동물에 대한 작업도 한 거군요?”

“히말라야의 설인 들어봤소? 아메리카의 빅풋은? 노란 잠수함의 옛날 사업 방식이었지. 지금 우리는 진짜 멸종위기종과 이미 멸종된 종에 대한 여론 사업을 벌이고 있어요. 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이니아호랑이, 중국의 강돌고래 바이지, 그리고 한국의 호랑이와 표범까지…. 소중한 동물을 잊지 않도록 목격담과 사진을 퍼뜨리는 것이지.”

“흰부리딱따구리도 마찬가지였군요?”

“미국 정부가 멸종 선언을 하고 나섰지만, 얻은 건 없고 잃은 것만 많은, 바보 같은 짓이었소. 그래서 노란 잠수함이 나선 거요. 루이지애나 숲에 가서 가짜 새를 날리고 사진도 찍고 그랬어요.”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은 노란 잠수함에서 나왔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며칠째 계속되던 비가 그치고 누런 햇살이 내리쬈습니다. 왓슨이 놀라 외쳤습니다.

“저기 네시가 있어요!”

검푸른 호수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습니다. 거기에 네시가 있었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네스호 방문자센터에 전시된 노란 잠수정 ‘바이퍼피시’. 남종영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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