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병 앓는 초능력자라니...그 어떤 슈퍼히어로물보다 신박하다('히어로는')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5. 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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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는 아닙니다만’, 평범한 천우희가 초능력자들의 구원자가 된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미역국이 그럭저럭 먹을 만해서 말해주는 건데 우리 가족은요, 초능력 가족이에요. 근데 병을 얻어서 그만 능력을 잃어버렸어요. 현대인의 질병요." 할아버지가 끓여놓은 미역국을 초대받아 온 다해(천우희)가 데워 내주자 이나(박소이)는 선심이라도 쓰듯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세상과 단절한 듯 사는 사춘기 아이가 던지는 말이니 다해는 농담으로 그걸 받아들이지만 사실 그건 JTBC 토일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가 가져온 신박한 세계관이다.

이들은 이나 말대로 초능력 가족이다. 하지만 저마다 병을 얻어 능력을 잃었다. 잠에 집착하는 할머니 복만흠(고두심)은 예지몽 능력자지만 불면증에 걸렸다. 잠을 자야 꿈을 꾸고 꿈을 꿔야 미래를 보는데 잠을 못자게 되었다니. 이나의 고모 동희(수현)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비행능력자지만 비만 때문에 몸이 무거워져 날지 못하게 됐다.

이나의 아빠인 귀주(장기용)도 마찬가지다. 그는 눈을 감고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슬립 능력자지만 아내가 사고로 사망한 후 우울증에 걸려버렸다. 더 이상 어떤 과거도 행복하게 느끼지 못하는 그는 타임슬립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이나는 이 초능력 집안에서 아직까지 그 능력이 발현되지 않았다. 엄마가 죽고 아빠 또한 우울증에 빠지자 능력은커녕 스마트폰에만 빠져들다 중독이 됐고 눈도 나빠져 두꺼운 안경을 끼고 산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초능력자들이 능력을 잃었다는 그 기막힌 설정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왜 이 설정은 그저 우스꽝스러운 게 아니라 어딘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을 줄까. 그건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가 '현대병'이라는 데서 찾아진다. 불면증에 비만, 우울증 그리고 스마트폰 중독이 그것이다. 초능력자로 설정되어 있지만 드라마가 말하려는 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능력자들조차 능력을 잃게 만드는 그 현대인의 질병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들의 구원자(혹은 사기꾼)로 등장한 다해가 마사지샵에서 그곳을 찾은 복만흠의 마음을 얻는 장면에 나오는 대사는 그래서 더 의미심장해진다. "좋은 오일이나 제품도 많지만 저는 손만한 도구가 없는 거 같아요. 저는 손으로 기운을 불어 넣는다고 생각해요. 여기 다 지치고 기운이 바닥나서 오시는 분들이니까요.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산으로 바다로 일부러 찾아다녀요. 좋은 기운 받아서 이렇게 제 손으로 직접 전해 드리려고요." 이 대사는 이 드라마가 지치고 기운이 바닥난 현대인들에게 기운을 전하는 이야기가 될 거라는 암시 같다.

물론 다해는 목욕탕 패밀리인 백일홍(김금순), 그레이스(류아벨) 그리고 노형태(최광록)과 함께 돈 많은 귀주네 집안을 털어먹으려고(아마도 결혼 사기 같은 걸로) 의도적으로 만흠에게 접근한 것이지만, 그 사기가 사랑이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또 다해가 사기칠 때 참 잘 먹히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과 닮았다는 이야기가 진짜 거짓말일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그 생명의 은인이 이렇게 털어먹으려 접근했던 귀주였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그래서 초능력을 갖고 있는데다 부자라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저마다의 아픔으로 그것이 병이 되어 능력을 잃고 불행의 늪에 빠져 있는 가족을, 초능력자도 영웅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다해라는 인물이 변화시키고 궁극에는 구원해내는(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이야기로 보인다. 그리고 그 초능력 가족의 구성원들이란 사실상 누구나 하나쯤 그런 병을 갖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대한 은유가 아닐 수 없다.

시청자들은 그래서 이들이 블랙코미디적인 웃음을 주지만 동시에 이들에게 연민을 갖게 되고 그들이 구원받기를 내 일처럼 바라며 다해가 이들을 고쳐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런데 초능력자들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이 평범한(아니 평범 그 이하처럼 보이는) 다해가 가진 능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누군가에 대한 깊은 배려나 진실된 마음 같은 것들이 아닐까. 시작은 사기로 시작했지만 어떤 변곡점을 통해 다해가 그런 능력(?)들을 시전하게 되고 그것이 이들 가족에게 변화를 일으킬 그 과정들이 못내 기대된다. 현대병을 앓는 초능력자라니. 최근 본 그 어떤 슈퍼히어로물보다 신박한 작품이라는 예감이 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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