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 통화 자동녹음' 칼 빼든 정부…아직 넘어야 할 산 있다
민원인·공무원 통화 녹음, 개인정보 영향평가 거쳐야
과거에도 도입 시도했다 '개인정보 침해' 우려로 무산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관계 부처 협조 최대 관건
[세종=뉴시스]성소의 기자 = 정부가 민원인의 갑질 행태를 뿌리 뽑기 위해 범정부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지만 남은 후속 절차를 고려하면 실제 시행되기까지 시일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원인과 공무원의 통화 자동 녹음의 경우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 등 관계 부처의 협조 여부가 최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5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행안부는 민원공무원에 대한 보호 조치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에 착수했다.
앞서 행안부와 인사혁신처 등 17개 관계 부처는 지난 2일 악성 민원을 방지하고 민원공무원에 대한 기관 차원의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민원 공무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3월 도로 보수공사 항의 민원에 시달리던 김포시 소속 9급 공무원이 사망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가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민원인이 욕설·협박·성희롱 등을 하면 공무원이 전화를 끊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과 행정기관에 걸려오는 내용을 자동 녹음하도록 하고, 민원인이 위법행위를 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고발을 의무화한 내용 등이 담겼다.
공무원 노조단체들은 이번 대책이 현장의 요구를 대부분 반영했다며 빠른 시행을 촉구하고 있지만, 후속 절차를 고려하면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시행되기까지 시간이 다소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행정기관에 걸려오는 전화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동 녹음하도록 바꾸기 위해서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의 개인정보 영향평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개인정보 영향평가는 공공기관이 개인정보 파일을 운용하는 새로운 정보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기존에 운영 중인 개인정보 처리 시스템을 변경할 때 개인정보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조사해 검토하는 제도다.
통화 내용 자동 녹음의 경우 민원인과 공무원 간 대화 내용을 행정기관이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정보 영형평가 대상이 된다.
개보위가 지정한 영향평가기관에 평가를 의뢰하면, 평가기관은 그 사업(조문)에 대한 개인정보 침해 요인을 분석하고 개선 계획을 수립해 영향평가서를 작성하게 된다.
평가 결과 개인정보 침해 요인이 도출되면, 기관은 이를 제거한 계획을 세워서 다시 제출해야 한다.
민원인과 공무원의 전화 내용을 전부 자동 녹음하는 것이 개인정보 침해 요소가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행안부는 개선 계획을 세워서 다시 조문을 평가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적어도 3~4개월 걸려, 빨라야 하반기에 시행될 수 있다고 한다.
최악의 경우 자동 녹음 도입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과거에도 정부가 민원인과 공무원의 통화 자동 녹음을 도입하려 했다가 개인정보 침해 우려에 따라 무산된 전례가 있다.
행안부는 지난 2022년 민원처리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민원인과 공무원의 통화 내용을 녹음하도록 하는 조문을 삽입하려 했다.
당시 조문 초안에는 통화 자동 녹음이 가능하도록 작성됐지만, 개인정보 영향평가 수행기관에서 개인정보 침해 우려를 나타내면서 '폭언, 폭행 등이 발생했거나 발생하려는 때에 증거수집 등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녹음을 할 수 있다는 문구가 조문에 추가됐다.
민원인의 '폭언'이나 '욕설' 등을 하거나 그럴 기미가 있을 때에만 녹음이 가능하도록 단서가 달리게 된 것이다.
민원공무원 보호 필요성에 대한 전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번 대책이 마련된 만큼, 개보위의 입장이 이전보다는 유연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결국 민간(개보위가 지정한 평가기관)에서 개인정보 영향평가를 수행하는 만큼 자동 녹음 도입 허용 여부를 100% 장담할 수는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행안부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시행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평가기관에서 도입해선 안 된다고 하면, 방법을 다양하게 바꿔서 계속 시도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령 개정 절차도 남아있다. 종결 가능한 민원 범위를 확대하고 온라인 민원 시스템을 통해 악의적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민원인의 시스템 이용을 제한하도록 한 내용 등의 경우 민원처리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는 다음 국회가 꾸려진 뒤에야 개정을 추진할 수 있어 올해 안에 국회 통과가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7월 정도에나 국회 상임위원회가 정해지고 그때부터 국회가 돌아갈 텐데, 최대한 노력하더라도 연내에 개정을 완료한다는 약속을 드리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o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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