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인생 9년 만의 첫 승, 서의태는 반복 되는 일상에 지치지 않았다

심진용 기자 2024. 5. 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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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서의태가 4일 인천 SSG전 4회말 구원 등판해 2사 만루 위기에서 삼진을 잡아내고 기뻐하고 있다. NC 다이노스 제공


청량중 시절 서의태(27·NC)는 조숙한 괴물이었다. 중1 때 이미 키가 1m88까지 자랐고, 몸무게는 88㎏이 나갔다. 빠른공은 시속 120㎞를 넘었다. 또래 중에 상대가 많지 않았다. 류현진 같은 투수가 되고 싶었고, 언젠가 일본 무대에 진출해 이름을 날리고 싶었다. 그런 그가 프로 첫 승을 올리기까지 그토록 많은 시간이 필요할 줄은 미처 몰랐다.

NC 서의태는 4일 인천 SSG전 3-2로 앞서던 4회말 2사 만루 위기에 구원 등판해 추신수를 삼진으로 잡고 실점 위기를 막았다. 4시간이 넘는 접전 중에도 NC가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8-6으로 이겼다. 서의태가 0.1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프로 입단 9년 만에 거둔 첫 승이었다. 서의태는 “첫 승을 기대하긴 했지만 솔직히 실감은 아직 나지 않는다”고 웃었다.

프로 입단 9년, 야구공 놓았던 괴물의 첫 승


지난해까지 1군 등판이 겨우 1차례.

서의태는 프로 무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진 숱한 ‘괴물’과 ‘천재’들 중 1명이었다. 2016년 드래프트 2차 3라운드(전체 31번) 지명을 받고 KT에 입단했지만, 2년 만에 키움으로 트레이드됐다. 2018년 9월 23일, 프로 3년 차에 1군 첫 등판을 했다. 0.2이닝 동안 4실점하고 교체됐다. 그 후로 1군 등판은 없었고, 이듬해 방출됐다.

받은 기대가 컸던 만큼, 무너진 뒤의 좌절도 컸다. 야구를 그만둘 생각으로 현역 입대했다. 야구 할 때만큼만 열심히 하면 뭐든 해내지 않겠냐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운동 경험을 살려 헬스 트레이너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를 놓지 못했다. 프로 초년생 시절 신생팀 KT에서 함께 훈련했던 선배 고영표(33), 엄상백(28) 등이 이미 프로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TV 화면 속 그들과 같은 자리에 다시 한번 서보고 싶었다.

전역 후 본격적으로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과거 KIA·LG 등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김광수 54K트레이닝센터 대표가 그를 도왔다. 김 대표가 SNS에 올린 훈련 영상을 보고, 청량중 시절 은사였던 민동근 NC 스카우트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제대 한 달 만의 일이었다. 서의태는 다음 날 아침 기차로 창원에 내려갔다. 테스트를 받았고, 바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민 팀장은 “너 믿고 내가 도박 한 번 한다”고 했다.

방출 후 2년 만에 다시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2022년 7월 23일 퓨처스리그 경기에 등판했다. 1028일 만의 프로 복귀전이었다. 1이닝 무실점 피칭 후 서의태는 “내가 다시 몸을 만들어서 프로팀에 들어가, 오늘 같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났다. 프로 복귀의 감격은 흐릿해지고, 1군 무대를 향한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갈 법할 때였다. 서의태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지 않으려 했다. 매일 오전 6시 50분 일어나 2군 운동장으로 출근하고, 운동하고, 시합했다. 훈련 일과가 끝나면 2군 운동장 바로 옆 창원NC파크로 가서 오후 6시 30분 시작하는 1군 경기를 봤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서의태는 “2군 구장이 1군 구장 바로 옆이라 좋았다”고 했다.

반복되는 훈련을 놓지 않았고, 새로운 도전도 겁내지 않았다. 2022년 서의태는 평생 주 무기로 써왔던 포심 패스트볼을 버렸다. 이용훈 2군 투수코치가 그해 봄 어느 휴식일 “갑자기 생각난 게 있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투심 패스트볼을 던져보자고 했다. 포심이 구속이나 회전수에 비해 효율이 좋지 않으니, 투심으로 공 움직임을 극대화하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지난 시즌 퓨처스리그에서 39.1이닝을 던지는 동안 서의태는 단 하나의 홈런도 맞지 않았다.

NC 서의태가 4일 인천 SSG전 4회말 구원 등판해 2사 만루 위기를 막아내자 팀 선배 박민우가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NC 다이노스 제공


승부처가 오기를 기다렸다, 무조건 나가고 싶었다


지난해 겨울 그는 일본 도쿄에서 진행된 드라이브라인 캠프를 다녀왔다. 프로에서 보여준 것 하나 없던 그가 팀 내 핵심 유망주로 꼽히는 후배 신영우(20), 이용준(22)과 함께 훈련했다. 지난봄에는 프로 입단 9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전지훈련도 참가했다. 서의태가 성장하면서 구단에서 거는 기대도 커졌다. 올 시즌 그는 NC의 또 다른 야심작 중 하나였다.

돌이켜 보면 고마운 순간이 참 많다. 옛 은사 민 팀장의 전화, 투심을 장착해보자는 이 코치의 조언이 그랬다. 강인권 감독의 한 마디도 잊을 수 없다. 애리조나 투손 전지훈련 이틀째 날, 해외 전지훈련은 프로 와서 처음이라는 그에게 강 감독은 “예전 팀들이 보는 눈이 없었던 거지”라고 격려했다. 지나가듯 남긴 말일 수도 있는 그 한마디가 서의태에게는 많은 힘이 됐다.

다시 4일 SSG전 4회말, 한 명씩 쌓이는 주자를 보며 서의태는 우완 전사민과 함께 몸을 풀고 있었다. 상대에 따라 좌완이 나갈 수도, 우완이 나갈 수도 있는 상황. 서의태는 ‘제발 내가 불려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간 준비해온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날 전까지 올 시즌 7차례 등판, 승부처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졌을 때는 호투했지만, 접전 상황에선 부진했다. 서의태는 “빡빡한 상황이 오기만 기다렸다”고 했다.

고마운 이들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다.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고 21일 만에 1군 말소됐을 때도 그래서 실망하지 않았다. 부족한 점을 알고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고 있었다. 지난 1일 다시 1군에 올라왔고, 이날까지 3차례 등판해 모두 무실점 투구를 했다.

서의태는 거구다. 중학 시절보다도 훨씬 더 자라 지금은 키 1m 96에 몸무게는 120㎏이 나간다. 좋은 체격 조건을 살려 ‘싸움닭’처럼 타자들에게 맞서고, 위압감을 줄 수 있는 투수가 되고 싶다. 이런저런 사연 속에 지난 9년을 보냈지만 이제 겨우 27세다. 조숙했던 괴물, 서의태의 본격적인 야구 인생도 지금부터다.

NC 서의태. NC 다이노스 제공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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