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농사 이런 일은 처음”…벌마늘 피해 확산일로

이시내 기자 2024. 5. 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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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전남·경남 남도종서 발생
전남에선 대서종도 피해 접수
따뜻한 기온·강수량 증가 원인
물가안정 빌미 대량 수입 우려
농업재해 인정·피해 조사 예정
2차 생장으로 줄기가 갈라진 벌마늘(왼쪽)과 정상적으로 자란 마늘. 벌마늘은 먹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상품성이 떨어져 헐값에 팔린다.

남도종 마늘을 중심으로 벌마늘 피해가 북진하며 확산 일로에 있다.

4월 제주에서 시작해(본지 4월29일자 6면 보도) 최근에는 전남 고흥·여수·해남·무안·신안 등은 물론 경남 남해까지 주산지 대부분에서 피해가 확인된다. 유례없는 상황에 농민과 산지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30년 넘는 농사에 이런 적은 처음”…농가 당혹=최근 찾은 해남·무안·고흥 지역 밭에선 원줄기 사이로 싹이 잔머리처럼 솟아난 마늘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속을 갈라 보니 마늘쪽(인편)에서 새싹이 자라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통상 6∼9개인 마늘쪽도 11∼12개씩 분화되고 있다. 벌마늘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벌마늘은 소비자들이 먹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상품성이 떨어져 헐값에 팔린다.

1만4876㎡(4500평) 밭에서 남도·대서 마늘을 재배하는 강기윤씨(64·해남군 송지면)는 “관리 조건은 모두 같았는데 평년에는 거의 없던 벌마늘이 올해는 30%가량이나 보인다”고 한숨을 쉬었다.

6611㎡(2000평)의 마늘농사를 짓는 장민수씨(66·무안군 해제면)도 “벌써 마늘밭 20∼30%에서 벌마늘이 보인다”며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비가 오니까 습해에 무름병까지 왔다”고 말했다.

남해도 마찬가지다. 8264㎡(2500평) 규모로 마늘을 키우는 정영범씨(58·남해읍)는 “30년 넘게 마늘을 재배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비가 자주 많이 온 데다 기온이 높아 지온도 올라가니 손쓸 도리가 없었다”고 한탄했다.

상황이 가장 안 좋은 곳은 제주다. 4월 중순 도 서남부에서 관측되기 시작해 동북부까지 도미노처럼 피해가 퍼지고 있다. 피해가 급속도로 확산하자 제주도농업기술원은 4월16∼17일 진행한 1차 조사에 이어 최근 추가 조사까지 했다.

3306㎡(1000평)의 마늘농사를 짓는 고윤화씨(78·제주시 구좌읍)는 “밭의 약 60%가 벌마늘 피해를 봤다”며 “주변 농가들도 올해 농사를 다 망쳤다며 아우성친다”고 전했다.

벌마늘 발생 원인은 겨울철 따뜻한 기온과 강수량 증가로 분석된다. 실제로 전남의 주요 시·군 평균 강수량은 2~4월 3개월간 평년(73㎜)보다 51% 증가한 110㎜, 일조 시간은 평년(183시간)보다 13% 감소한 159시간으로 집계됐다.

빠른 확산 속도…앞으로도 피해 늘 것=불과 1∼2주 전만 하더라도 제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농가와 산지관계자는 올해 평년작은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피해가 확산되면서 대처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앞으로 피해가 더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배정섭 전남서남부채소농협 조합장은 “제주와는 시차가 있을 뿐 5월초순이 되면 벌마늘이 더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가뜩이나 남도마늘 소비가 부진한 상황에서 품위 저하로 판매량이 떨어질까 걱정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전남도농업기술원은 전남 전체 마늘 재배면적 3443㏊ 가운데 약 20%에서 2차 생장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남해군농업기술센터 마늘팀 관계자도 “현재 2차 생장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향후 피해는 더 확산돼 30%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고 내다봤다.

제주도농기원도 2차 조사 결과 피해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도농기원이 1차 조사 때 추정한 도내 벌마늘 피해 발생률은 약 48%였다. 지금은 피해가 대부분 남도종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대서종도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전남도가 조사한 결과 전체 피해면적 중 15%가 대서종이다. 강기윤씨도 “벌마늘 피해가 남도·대서종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고 짚었다.

산지거래도 실종됐다. 마늘농사와 유통을 겸업하는 유대섭씨(74·고흥군 풍양면)는 “피해를 본 농가가 많은 데다 수확기를 앞두고 계속 확산되는 추세라 포전거래도 끊겼다”고 설명했다.

수입 늘까 노심초사…“재해 인정으로 농가 보호해야”=농가들은 물가 안정을 빌미로 마늘 저가·대량 수입이 이뤄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수입이 늘어나 가격이 더 떨어지면 농가는 생산량 감소에 가격 하락이라는 이중고를 고스란히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기윤씨는 “인건비·농자재 가격이 다 오른 상황에서 생산비를 아무리 줄이려고 노력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며 “가격이 받쳐주지 않으면 적자가 불가피해 농사를 접는 이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저가 마늘 수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농가 보조에 나서 달라는 것이다.

박대영 남해농협 조합장은 “마늘 소비도 잘 안되는 상황에서 벌마늘까지 확산세를 보여 농가소득에 큰 타격을 주지나 않을까 우려된다”며 “고령화로 재배면적이 주는데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는 점점 늘어나니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정광현 전남도 농축산식품국장은 “마늘 2차 생장이 발생해 생산량 감소는 물론 포전거래까지 이뤄지지 않아 농민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농민의 경영안정을 위해 신속한 피해 조사와 저품위 마늘 매입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농식품부는 3일 전남·경남·제주 지역의 벌마늘 생리장애를 농업재해로 인정하고 피해 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제주는 10일까지, 전남 경남은 15일까지 지자체를 통해 피해를 조사한다. 조사 결과에 따라 1㏊(3000평)당 농약대 240만원, 대파대로 1054만원 이상(보조율은 50%) 지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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