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긴 키스신? 커튼콜만 43회? 골라 즐기는 '로미오와 줄리엣' [스프]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2024. 5. 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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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너무나 다른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나는 즐거움


로미오와 줄리엣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집안 간의 반목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연인의 사랑을 그린 셰익스피어의 비극입니다. 1597년 출간 이후 '햄릿'과 함께 가장 많이 공연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죠. 연극 외에도 음악, 미술, 영화, 뮤지컬,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형태로 공연되어 왔는데요, 이제 '로미오와 줄리엣'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연인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드라마 발레 대표작

'로미오와 줄리엣' 무용 공연 두 편이 5월에 나란히 개막합니다. 하나는 유니버설 발레단이 선보이는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인데요, '드라마 발레'의 거장 케네스 맥밀란(1929-1992)이 안무하고 1965년 영국 로열 발레단에서 초연한 작품입니다. 초연 당시 전설적인 무용수 마고트 폰테인과 루돌프 누레예프가 주역으로 춤췄고, 무려 43회나 커튼콜을 받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단숨에 로열 발레단 대표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프로코피에프의 발레 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안무한 수많은 발레 중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버전으로 꼽힙니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한국에서 공연되는 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유니버설 발레단이 2012년 공연권을 따내 한국에서 처음 공연했습니다. 한국 초연 때 '드디어 한국에서도 이 작품을 볼 수 있구나!' 감격하며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유니버설 발레단 40주년 기념 공연으로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는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한국인 최초의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서희, 지난해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자 강미선, 지난해 입단해 주목받는 신예 이유림 등이 출연합니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드라마 발레의 대표작입니다. 맥밀란은 '오네긴' 등을 안무한 존 크랑코와 함께 '드라마 발레'의 완성자로 불리는데요, 동화적이거나 환상적인 이야기가 많고 엄격한 형식 속에 춤의 향연을 펼쳐내는 고전 발레와는 달리, 드라마 발레는 현실적 이야기를 다루고 인물 간의 갈등, 심리 묘사를 중시합니다. 이름처럼 '드라마'가 중심에 있고 무용수들의 연기력이 중요하죠.

▲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 베로나 광장의 싸움 하이라이트 (영상 보기는 여기
[ https://youtu.be/OjwzFhbbCL4 ])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를 재현한 무대와 의상도 웅장하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프로코피에프의 발레 음악은 코리아쿱 오케스트라가 지중배 지휘로 연주합니다. 프로코피에프가 직접 대본까지 쓰면서 작곡한 52곡의 발레 음악은 이야기 진행과 착 붙는 명곡입니다. 따로 떼어 음악회에서 연주되기도 하는 레퍼토리죠. 프로코피에프의 음악 역시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5월 10일-12일)

▲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파드되 하이라이트 (영상 보기는 여기
[ https://youtube.com/shorts/BDe6MzzXldg ])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확실히 다르다

또 하나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매튜 본(Matthew Bourne)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안무가'(TIME)로 불리는 1960년생 영국인 안무가입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공연예술 시상식인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역대 최고 수상 기록(9회)를 갖고 있고, 현대무용가 최초로 기사 작위를 수훈받았습니다. ('킹스맨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인 영화 감독 매튜 본(Matthew Vaughn)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매튜 본은 1987년부터 자신의 컴퍼니 어드벤쳐스 인 모션 픽쳐스(2002년 이후 뉴 어드벤쳐스로 재창단)를 이끌며 수많은 히트작을 내놓았는데요, 가장 유명한 작품이 남성 백조가 등장하는 '백조의 호수'(1996년 초연)입니다. 매튜 본은 로열 발레단 스타였던 아담 쿠퍼를 주역으로 내세워 우아하고 가냘픈 백조 대신 근육질에 위협적이기까지 남성 백조가 등장하는 '백조의 호수'를 내놓고 전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유약한 왕자가 남성 백조의 매력에 매료된다는 설정입니다. 매튜 본의 작품들은 2003년 '백조의 호수' 한국 초연을 시작으로 8번이나 한국을 찾아왔고 15만 명의 관객이 봤습니다.

매튜 본은 뛰어난 안무가이며 연출가이자 스토리텔러입니다. 백조의 호수 외에도 매튜 본의 작품들은 낯익은 작품을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풀어내는 게 많습니다. 그의 출세작인 '호두까기 인형!'은 화려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중산층 가정 대신 춥고 음울한 고아원에서 시작합니다. '카 맨'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과 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인데요, 1960년대 미국 중서부를 배경으로 한 치정 복수극으로 '댄스 스릴러'라고 할 만합니다. '신데렐라'는 프로코피에프의 발레 음악을 모티브로 1940년대 전쟁 속 사랑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원작 새로 쓰기 - 셰익스피어도 그랬다

한국 초연을 앞둔 '로미오와 줄리엣'도 셰익스피어의 원작과는 많이 다릅니다. 멀지 않은 미래, 어른들에 의해 '문제아'로 분류된 청소년들을 모아놓은 교정시설 '베로나 인스티튜트'가 배경입니다. 얼핏 학교 같기도 하고 정신병원 같기도 한 이곳은 경비원들의 통제와 감시의 눈길이 번득이는 억압적인 곳입니다. 이곳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운명적으로 만나고, 감시자의 눈을 피해 사랑을 이어나갑니다.

매튜 본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핵심이 '젊은 세대의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가 새로 쓴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쩌면 원작보다 더 비극적이고 더 처절하고 강렬한 사랑 이야기가 됐습니다. 약물, 트라우마, 우울증, 학대, 성 정체성 같은 민감한 문제들이 거침없이 묘사되며, '로미오와 줄리엣'이 오늘날 10대들의 이야기로 다시 탄생했습니다. 이야기가 원작과는 많이 달라졌고 충격적이기까지 한데, 매튜 본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원작을 저렇게까지 바꿀 수 있느냐, 원작에 대한 '불경'이다, 이런 불만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의 '원작'이라는 것도 과거의 작품들을 개작해 쓰인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술은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만들어 내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다시 쓰기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1530년대 루이지 다 포르타, 1550년대 마테오 반델로가 쓴 이탈리아 소설로 이미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1559년에 나온 프랑스어 버전은 두 연인이 무덤에서 짧은 재회의 순간을 누렸던 이전 버전의 설정을, 로미오가 줄리엣이 깨어나기 전에 죽는 것으로 바꿔 놨습니다. 1562년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로메우스와 줄리엣의 비극적 이야기'라는 장편 시집으로 펴낸 영국의 시인 아서 브루크는 이 프랑스어 버전을 따랐고, 셰익스피어는 아서 브루크의 장편 시를 바탕으로 자신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썼습니다.

연인의 결별, 둘의 사랑을 반대하는 부모,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수면제 등의 요소는 훨씬 이전인 로마 시대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에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로 등장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이 이야기도 알고 있었고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슷한 시기에 쓴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시키기도 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또 '로미오와 줄리엣'이 14세기 영국 시인 초서의 작품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 홈페이지를 참고했습니다.)
 

"무용 역사상 가장 긴 키스"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그 유명한 '발코니 파드되(2인무)'가 있습니다. 무도회에서 줄리엣을 만나 한눈에 반한 로미오가 (발코니가 있는) 줄리엣의 집을 찾아가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이죠. '베로나 인스티튜트'에는 발코니가 없습니다만, 무용수들은 무대 세트를 오르내리면서 발코니의 '효과'를 충분히 만들어냅니다.

'무용 역사상 가장 긴 키스신(영국 텔레그라프)'이 포함된 이 장면은 뉴욕타임스로부터 '위대한 발코니 장면에 버금가는 강렬함을 선사한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두 무용수는 수없이 키스하고, 때로는 입술이 맞닿은 상태로 구르고 돌면서 계속 강렬한 춤을 이어갑니다.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두 16세기 사람들이죠. 처음 느끼는 사랑에 수줍어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느낌이 있고 키스도 살짝 합니다. 정제된 춤 동작과 고난도의 테크닉 속에 감정의 파고를 드러냅니다. 하지만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현대의 10대들입니다. 일단 감정을 확인한 후에는 거침없이 오랫동안 키스를 나눕니다. 정돈되지 않고 날것처럼 생생한 춤사위는 감시당하고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 더욱 간절하고 뜨거운 사랑을 유감없이 표현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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