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ESG 공시 부실...경영 개선 갈 길 멀다

이승균 2024. 5. 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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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중견기업의 ESG 경영 현황을 분석한 결과 환경과 지배구조 부문이 고위험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ESG 경영 전담 인력과 비용이 부족해서다. EU를 시작으로 공급망 실사가 본격화되는 만큼 글로벌 공급망에 속한 중소·중견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 차원의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경ESG] ESG Now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중소기업 디지털전환(DX)과 ESG 대응 강화를 돕기로 했다. 사진은 2024년 1월 정책 브리핑을 하고 있는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중견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 공시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전환 등 환경 관련 공시는 더욱 부실했다. 유럽과 미국에 이어 한국도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어 규제 영향권에 놓인 기업의 공시 강화가 필요해 보인다.

〈한경ESG〉는 2023년 12월 기준 시가총액 5000억원 이하 코스피 상장사 535곳의 ESG 공시 현황을 블룸버그 터미널을 기반으로 조사했다. 전환 전략과 정보공개, 배출량 관리 및 감축 실적, 에너지절약과 재생에너지 사용, 자원 재활용 및 순환경제 등 4개 부문 20개 세부 지표를 살펴봤다. 평가 대상 연도는 2022년이다.

조사 대상 535곳 중 탄소중립 목표를 공시한 시가총액 5000억원 이하 기업은 9곳(1.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공시한 기업은 30곳(5.6%), 재생에너지 사용 목표를 수립한 기업은 3곳(0.6%)이다. 

온실가스 직간접배출량(스코프 1·2)을 공시한 조사 대상 상장사는 54곳(10.1%)으로, 타 지표와 비교할 때 공시 비율이 소폭 높았다. 아세아, 지역난방공사, 성신양회 등 온실가스목표관리제, 배출권 할당 대상에 포함된 기업 다수가 공시를 해서다. 공시의무가 없는 대부분 기업은 온실가스배출량을 공시하지 않았다.

환경 공급망 실사 체계를 수립해 공시하는 기업은 23곳(4.3%)으로 조사됐다. 주요 대기업과 거래하고 있는 기업이 공급망 환경 관리 여부를 공시했다. EU 이사회가 지난 3월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을 승인하고, 국내에서도 공급망 실사와 관련한 법안이 발의되면서 해당 항목에 대한 공시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공시가 유예되거나 관련 법규가 없는 지표에 대한 공시는 저조했다. 총외부배출량(스코프 3) 중 단 1개의 카테고리라도 공시한 상장사는 지역난방공사, SK증권, LX하우시스, HL홀딩스, 롯데하이마트, LG헬로비전 6곳이다. 생물다양성 정책을 수립해 공시한 상장사는 13곳(4.3%), 보고서 제3자 검증을 받은 상장사는 17곳(3.2%)이다. 

코스닥 상장사의 ESG 공시 비율은 더욱 떨어진다. 시가총액 5000억원 이하 코스피 상장사 중 탄소중립 목표를 수립하고 공시 사례는 없었다.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공시한 기업은 E1, LX하우시스, 지역난방공사, 삼양사 4곳이다. 스코프 1·2를 공시한 기업도 1곳에 불과하다. ESG 정보 공시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중견 상장사가 당장 ESG 정보를 공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ESG 공시와 관련해 2026년 이후로 연기했다. 구체적 의무화 시기는 추후 관계 부처 협의 등을 거쳐 결정하기로 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자산 규모 5000억원 미만 코스피 상장사라면 2032년부터 법정 공시를 시작하고 코스닥 상장사는 자율 공시하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공급망 실사법 등 규제가 다가오고 있어 중견 상장사의 ESG 경영과 공시를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SG 평가업계 관계자는 “상장사 전체가 ESG 정보를 공시할 필요는 없으나 자산 규모가 작더라도 해외 규제 영향권에 있는 기업은 자산 규모와 무관하게 자율적으로 관련 정보를 공시해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중소·중견기업 ESG 경영 평가 고위험 수준

국내 주요 수출 대기업과 연관된 중소·중견기업은 ESG 공시뿐 아니라 ESG 경영 개선도 시급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요 기업과 관련이 있는 중소·중견 기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과 현장 실사를 진행한 결과 대다수 중소·중견기업의 ESG 경영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상의 공급망ESG지원센터는 2022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공급망 내 협력사 1278곳을 대상으로 ESG 경영 실사를 수행하고, 지난 4월 그 결과를 발표했다. 대한상의는 고위험(0~2.99), 중위험(3~6.99), 저위험(7~10) 등 3개 구간으로 구분해 ESG 경영 수준을 진단했다. 이번 조사에서 종합 평점은 3.55점으로 나타났다. 환경은 2.45점, 사회는 5.11점, 지배구조는 2.70점을 기록했다.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ESG 경영 종합 평점은 고위험 구간을 탈피했으나, 환경과 지배구조 부문은 고위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환경 부문 중 평점이 가장 낮은 항목은 ‘재생에너지 사용량 측정’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수급이 아직 충분치 못한 데다 온실가스 측정 등 대기오염물질 감축에 관한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물다양성 보전 노력’도 매우 미흡한 항목 중 하나로 나타났는데, 생물다양성 보전에 관한 구체적 정보가 부족하고 생태계 온전성의 장기적 가치에 대한 인식 부족 등이 그 원인으로 분석됐다. 이 외에 친환경 ‘제품 및 서비스 관리’, ‘재활용 원부자재 사용량 측정’, ‘제품 함유 물질 모니터링’ 순으로 취약했다. 

환경·지배구조 고위험 구간 속해

특히 지배구조 부문은 윤리경영(윤리경영 이행 여부 모니터링)을 제외한 정보 공시, 관리 시스템(ESG 리스크 식별 및 관리), 감사(독립적 감사 조직, 보고 체계 보유) 모두 고위험 수준으로 조사됐다. 

중소·중견 협력사들은 만성적 인력 부족 및 비용 부담으로 ESG 경영 전담 조직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체계적 ESG 실천 전략을 수립하고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미흡한 경우가 많아 ESG 경영 리스크가 높다고 대한상의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실제 경기도 성남에서 통신장비 솔루션을 생산해 유럽연합(EU)으로 수출하는 한 제조업체 대표는 “EU에서 공급망 실사보고서 작성 및 탄소국경세 등 ESG 규제가 가속화되고 있으나, 가용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는 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법규 준수 및 점검을 위한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으로 반영할 만한 여력이 없다”고 호소한 바 있다.

기업 규모별로는 상장사(4.84점), 외감법인(3.96점), 비외감법인(2.85점) 순으로 기업 규모가 클수록 ESG 경영과 공시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상장사의 경우 기업의 성장성 등 상장 심사 종합 평가에 대비해 ESG 경영에 선제적으로 나서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사회 부문은 분쟁광물(분쟁광물 금지 정책 수립), 정보보호(정보보호 관리 체계 모니터링), 사회 공헌(사회 공헌 프로그램 운영) 부문이 고위험 구간에 포함된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안전, 인권, 고용, 근로환경 관련 항목은 중위험 구간에 속했다.

사회 부문은 고용·근로환경, 보건·안전, 개인정보보호 등 기업의 사회적책임에 관한 지표를, 지배구조 부문은 ESG 공시, 윤리경영 정책 수립 등 투명경영 및 내부통제·관리에 관한 사항이 주요 측정 대상이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EU 환경규제, 공시의무화 등으로 기업의 어려움이 크다”며 “기업의 중복 부담 해소와 정보 신뢰성 제고를 위한 국가 차원의 데이터 플랫폼 구축 등 수출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기업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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