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는 '초보 감독' 이범호, 왜 크로우 교체 한 박자 빨랐나
[스포티비뉴스=광주, 김민경 기자] "내일(5일) 비 소식이 있어서 빠른 타이밍에 크로우를 내리고, 이번 주 등판이 적었던 불펜진을 투입했다."
이범호 KIA 타이거즈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첫해부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KIA는 4일 현재 시즌 성적 23승12패 승률 0.657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나성범, 최형우, 소크라테스 브리토, 김선빈, 김도영, 박찬호 등이 버티고 있는 타서는 리그 최강이고, 올해는 심혈을 기울여 영입한 외국인 원투펀치 윌 크로우-제임스 네일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KIA는 4일 광주 한화 이글스전에서 10-2로 크게 이겼다. 한화가 2군에서 재정비 시간을 보내고 있는 문동주를 대신해 베테랑 불펜 이태양을 오프너로 기용했는데, KIA는 1회 5득점, 2회 4득점하면서 시작부터 무자비하게 한화 마운드를 폭격했다. 이태양은 ⅔이닝 5실점에 그치면서 패전을 떠안았고, 한화 2번째 투수로 나섰던 장지수도 1이닝 4실점에 그치면서 고개를 숙였다.
눈에 띄는 건 선발투수 크로우의 교체 타이밍이었다. 크로우는 5이닝 75구 2피안타 1사사구 6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5승(1패)째를 챙겼다. 투구 수를 고려하면 1이닝, 길게는 2이닝 더 던질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이 감독은 이미 한화와 거리가 꽤 벌어진 만큼 크로우에게 조기 퇴근을 허락했다.
크로우는 직구(21개)와 슬라이더(19개), 스위퍼(15개), 투심패스트볼(12개), 체인지업(7개), 커브(1개) 등 다양한 구종을 섞어 한화 타선을 요리했다. 직구는 제구가 흔들리긴 했지만, 크로우의 스위퍼와 슬라이더에 한화 타자들이 거의 대응하지 못했다. 스위퍼는 15구 가운데 14개가 스트라이크였고, 슬라이더는 19구 가운데 14개가 스트라이크일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체인지업도 볼이 단 1개뿐이었다. 직구와 투심패스트볼의 최고 구속은 151㎞까지 나왔다.
보통은 외국인 투수가 등판한 경기에서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으면 보통 외국인 투수를 더 길게 끌고 간다. 불펜 소모가 컸던 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또 외국인 투수들은 못해도 6이닝 이상은 던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감독은 왜 5이닝 만에 크로우를 교체했을까. 이 감독은 "크로우가 타자들의 득점 지원을 받으면서 5이닝을 완벽하게 막아줬다. 투구 수 관리도 잘됐다. 점수 차이가 있었고, 내일(5일) 비 소식이 있어 빠른 타이밍에 크로우를 내리고 이번 주 경기 등판이 적었던 불펜진을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5일 경기가 비로 취소되면 경기가 적었던 불펜의 휴식일이 더 길어지니 크로우보다는 불펜 컨디션에 맞춰 내린 결정이라는 뜻이었다.
KIA는 6회부터 최지민(1이닝)-전상현(1이닝)-김건국(1이닝)-정해영(1이닝 2실점)을 차례로 마운드에 올려 승리를 지켰다.
이 감독은 3일 한화전에서는 선발투수 황동하를 너무 늦게 교체한 것 같다며 자책했다. 0-1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5회에도 황동하를 올렸다. 한화의 타순은 황영묵-최인호-정은원으로 이어졌다. 황동하는 선두타자 황영묵을 유격수 땅볼로 잘 잡아놓고 최인호에게 우전 안타를 맞은 뒤 정은원에게 우월 투런포를 허용했다. 여기서 0-3으로 벌어지는 바람에 KIA는 2-4로 석패했다. 황동하는 프로 데뷔 첫 5이닝(3실점) 투구를 했으나 패전을 떠안았다.
이 감독은 "더 좋게 가려면 4이닝 던지고 바꿔줬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본인이 기분 좋게 내려왔을 것 같기도 하고, 본인은 5이닝 던진 게 기분 좋을 것도 같다. 4회에 바꾸면 우리는 좋았겠지만, 본인(황동하)은 5이닝을 던져봤기에 여러 면에서 좋은 경기가 됐으리라 생각한다. 5회까지 구속을 유지했고, 1구부터 100구까지 유지할 스태미너를 지닌 건 좋다고 생각한다. 구위가 좋아 1이닝씩 던질 수 있는 중간 투수는 언제든 만들 수 있지만, 선발투수는 어렵다. 선발투수 한 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감수하고 가야 한다. 5이닝 투구를 봐서는 점점 좋아질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황동하는 칭찬하되 감독 본인은 반성했다. 5회 1사 1루 정은원 타석을 앞두고 정재훈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나섰던 장면을 설명하다 자책했다.
이 감독은 "정재훈 코치와 9번(황영묵) 1번(최인호) 2번(정은원)이 왼손이라 한 명만 출루하면 (곽)도규로 바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두타자가 나가면 바꿀 마음이 있었는데 선두타자를 잡았다. 그리고 그다음 타자(최인호)가 나가서 그러면 도규를 쓰면 한 명만 상대하고 바꿔야 하니까. (정)은원이까지 가고 (장)현식이로 바꾸자 했는데 은원이가 홈런을 칠 줄은 몰랐다. 정 코치와 같이 생각한 상황에서 투런 홈런이 나오니까. 정 코치와 머리가 복잡해졌다. 우리가 상황을 2~3개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이 아쉽다. (한화 선발투수) 산체스의 구위를 보고 불펜을 빨리 가동하려는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그런 게 아쉽다. 생각하고 준비를 다 한 상태에서 앞뒤 타자가 바뀌면서 2~3개 상황을 더 생각 못한 게 아쉽다"고 반성했다.
이 감독은 현재 팀을 1위로 이끌고 있으나 경기를 운영하면서 스스로 부족한 점을 매일 깨닫는 듯했다. 아쉬움에서 그치지 않고 반성하고 복기하면서 이 감독도 팀과 함께 발전하는 과정에 있는 듯하다. 이 감독은 4일 경기는 한 박자 빠른 투수 교체를 선택하면서 승리와 불펜 감각 유지라는 2가지 목표를 모두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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